[공동성명] 금융회사 대표이사의 금융사고 방지책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대법원의 손태승 판결, 지배구조법의 형식논리에만 집착하여 금융 규제의 기본 구조 망각

내부통제기준의 ‘마련’과 ‘준수’를 억지로 구분하는 것은 편협한 법해석에 불과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적격성 심사와 관련한 금융감독 당국의 재량권을 인정해야

대표이사의 금융사고 책임에 면죄부 부여하는 금융위 TF 논의도 재고해야

지난주(12/15) 대법원은 DLF 사태에서 내부통제에 실패함으로써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 경고를 받았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당시 우리은행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취소청구 소송에서 손태승 회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22두54047 판결).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되어야 하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이상 그 내부통제기준을 일부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표이사를 문책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대표이사의 감시 의무와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적격성 심사에 관한 법리를 망각한 채 「금융사지배구조법」의 문언을 지나치게 편협하게 해석함으로써 ▲이 법의 입법 취지나 금융감독 이론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렸다는 점과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운영실태나 금융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보다 적극적이고 보완적인 법률 해석을 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크게 개탄한다. 우리들은 ▲금융회사 대표이사의 금융사고 방지 책임을 강화하고,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적격성 심사의 실효성을 제고함으로써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본질적인 제도개선을 촉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T/F」가 검토하는 개선방안은 금융회사 대표이사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논의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지탱하는 논리적 축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내부통제기준과 관련한 회사의 의무는 본질적으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와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사지배구조법”)은 이 중에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만을 규정하고 동 기준의 “준수” 의무는 배제했다는 법 해석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감독당국의 임원에 대한 제재는 침익적 행정처분이므로 그 적용 범위는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범위로 한정해야 한다는 법 해석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 두 논리적 축은 이사의 의무, 금융회사 대표이사의 적격성에 관한 법리나 금융사지배구조법의 입법 취지, 그리고 금융감독당국이 보유한 재량권의 범위에 관한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잘못된 것이다.

상법상 이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회사의 적법한 운영을 감시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이 감시 의무에는 실효적인 내부통제기준을 구축하고, 운영하고 이를 통해 회사 업무 전반을 감시, 감독할 책임이 포함된다. 이는 지난 2021.11.11. 대법원이 2017다222368 판결을 통해 이미 판시하였다. 이 의무는 단순히 내부통제기준을 “구축” 또는 “마련”한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중대한 위법행위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대표이사가 이를 인지하지 못해 미연에 방지하거나 발생 즉시 시정조치를 할 수 없었다면,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이를 이용하여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 감독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내부통제기준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여 회사 업무 전반을 적법하게 운영하는 것은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이사의 감시 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이며, 여기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와 이를 “준수”할 의무를 각각 별개의 의무로 분리하여 살펴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대법원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이를 회사 업무 전반에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이사의 감시 의무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고 판단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사의 감시 의무에 관한 기본 법리에서 내부통제기준의 “마련” 의무와 “준수” 의무는 별개의 의무로 구분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손태승 판결의 보도자료 제3쪽 하단과 제4쪽 상단에서 “현행 법령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파악했다. 그렇다면 금융사지배구조법의 입법 취지가 이사의 의무에 관한 일반적인 법리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와 금융회사 이사의 경우에는 그 책임을 특별히 감면해 주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 구체적으로 금융사지배구조법은 상법상 이사가 내부통제와 관련하여 부담하는 불가분의 의무를 억지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와 “준수” 의무로 의도적으로 분리한 후, 금융회사는 일반적인 상법상 회사와는 달리 내부통제기준과 관련한 의무 중에서 기준의 “마련” 의무만 부담하면 되고, 기준의 “준수” 의무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이것은 말이 안되는 억지 법해석이다. 금융회사는 상법상 회사보다 더 강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내부통제기준을 규정한 금융사지배구조법 제24조 제1항 역시 금융회사의 의무를 강화하려는 입법 취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는 목적이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라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번 손태승 판결에서 우리나라의 하급심 법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법원까지 금융사지배구조법 제24조 제1항은 내부통제기준의 “마련” 의무만을 규정하고 “준수” 의무에 대해서는 면책을 해 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일 이런 법원의 해석이 타당하다면 이 법의 입법 취지가 ‘법령을 준수하기 위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꼭 하되 준수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내용 자체가 모순일 뿐만 아니라 실체적으로도 이것을 입법 취지로 이해할 수는 없다.

금융사지배구조법의 입법 취지가 금융회사에게 내부통제기준의 마련 의무만을 부여하고 준수 의무를 면제해 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은 금융사지배구조법의 조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제25조 제1항은 “내부통제기준의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내부통제기준을 위반하는 경우 이를 조사하는 등 내부통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준법감시인을 두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회사에 준법감시인을 두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부통제기준의 준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서”이다. 즉 금융사지배구조법 제25조는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이를 준수해야 하는 점을 전제로 하여, 준수 여부를 점검할 사람을 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손태승 판결에 나타난 대법원의 편협한 법해석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기만 하고 준수할 의무는 없지만, 이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점검할 준법감시인은 꼭 두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기준을 준수할 의무가 없는데 그 준수 여부를 점검할 감시인을 반드시 두어야 하는 이유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법원의 판결은 말이 되지 않는다.

금융사지배구조법의 입법 취지가 금융회사 및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관련한 의무를 분리하여 일부를 면책해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입법 단계에서 작성된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표 1> 내부통제기준 관련 조항의 입법 취지에 대한 구기성 수석 전문위원의 평가

자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 검토보고서」, 2012.9., 제128쪽

위 <표 1>을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의 금융감독 당국들이 내부감시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구체적으로 내부통제체계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할 것을 권고하였고, 이에 부응하여 법률안에서는 준법감시인의 지위를 강화함으로써 내부통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을 입법 취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준법감시인의 임무는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만일 대법원의 판단처럼 현행 법령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면 그 준수 여부를 점검할 준법감시인의 권한을 강화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금융사지배구조법이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만을 규정하고 그 준수 의무는 규정하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법해석은 법리와 입법 취지 모두에 반하는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왜 이런 식의 편협하고 타당하지 않는 법 해석에 집착했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금융감독당국의 임원에 대한 제재가 침익적 행정처분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침익적 행정행위란 대략 공권력을 보유한 행정부가 행정행위를 통해 국민의 보편적 권익을 침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행위는 자칫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를 통해 국민의 권익을 과도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령에 근거를 두고 명확한 이유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령의 근거에 대한 해석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한 국민 권익 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도 이번 손태승 사건에서 하급법원은 물론이고 대법원이 내부통제기준에 관한 재판부의 해석이 대단히 편협하고 심지어 타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판단을 견지한 배경에는 ‘침익적 행정처분과 관련한 법해석은 소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금융업의 영위나 금융회사의 경영을 위해서는 감독기구가 규정한 적격성을 충족해야만 한다는 금융감독적 고려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충분하고 부적절한 것이다. 금융업을 영위하는 것은 적격성을 보유한 일부 회사에 한정해서 허용된 특권이다. 어떤 회사가 금융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해야 하고 적절한 전문성과 사회적 신용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측면을 심사해서 금융업의 영위를 허용하는 것을 인허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금융회사의 임원이 되어 금융회사를 경영하는 것 역시 적격성을 보유한 일부 사람에게 한정해서 예외적으로 허용된 특권이다. 금융회사의 임원이 되려는 자가 적절한 적격성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 적격성 심사(fit and proper test)이다. 적격성을 구비하지 못하거나, 적격성을 일시적으로 보유하기는 했으나 어떤 사유로 적격성을 훼손하거나 상실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정도에 따라 적격성의 훼손을 경고하기도 하고 적격성의 회복을 요구하기도 하고, 적격성의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적격성을 박탈하기도 한다. 이것이 금융감독당국이 금융회사 또는 금융회사의 임원에게 내리는 제재의 기본 성격이다. 따라서 금융감독당국의 제재는 침익적 행정처분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금융감독당국이 적격성의 유지를 조건으로 예외적으로 허용한 금융업 영위, 또는 금융회사의 경영이라는 특권을 회수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시각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감독당국의 재량성과 관련한 부분이다. 제재를 침익적 행정처분의 시각에서 이해할 때에는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에서 근거 법령을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처분권자의 재량권을 최소한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제재를 적격성을 상실한 자에 대한 특권의 회수라는 시각에서 이해할 때에는 적격성의 유지 혹은 상실 여부에 대한 감독당국의 재량권을 훨씬 더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적격성의 유지, 훼손, 회복, 상실이란 개념은 금융시장의 특성, 해당 금융사고의 내용, 피해 보상의 신속성과 충분성, 감독당국에 대한 적극적 협조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금융회사 대표이사가 직면한 적격성의 상실이라는 사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전통적인 행정법 이론에 경도된 타성을 타파하지 못한 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남은 문제는 이런 경직된 사법부의 시각 하에서 앞으로 어떻게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금융사지배구조법을 개정하여 금융회사의 “준수” 의무를 추가하자고 하지만, 우리는 이런 땜질식 처방이 금융회사의 적법한 운영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데 대단히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금융회사와 금융회사 대표이사의 추상적 의무를 적격성 요건에 명기하고, ▲개별 현안에서 과연 당해 금융회사 혹은 그 대표이사가 이 추상적 의무를 충족하였는지를 입증하도록 하고, ▲금융감독당국은 충분한 재량권을 가지고 그 입증을 통해 적격성의 유지, 훼손, 복원, 상실 등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더 공정하고 현실 적합성을 가진 금융환경을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 단순히 외삽적이고 분절적으로 부과된 몇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것만으로 금융회사와 그 임원들이 모든 의무를 다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끝없는 법령의 사각지대만을 양성할 뿐이고, 법률기술자들만 판치는 금융시장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T/F」가 검토하는 개선방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 방안은 금융회사 대표이사에게 포괄적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명시적 면책 사유를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T/F가 발표한 개선방안은 ▲중대 금융사고가 아닌 한 대표이사 면책, ▲중대 금융사고인 경우에도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고 관리했다면 대표이사 책임 감경 또는 면책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우리는 T/F가 이런 면책 사유 명문화 시도를 포기하고 ▲대표이사가 금융회사 운영의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금융사고가 발생한 경우 대표이사가 적격성의 유지 여부를 금융감독당국에 입증하도록 하고, ▲적격성이 훼손되거나 상실된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금융감독 당국이 사안의 경중을 판단하여 그에 합당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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