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23-07-18   887

[위기의 가계부채 ⑤] 숫자로 읽을 수 없는 채무자들의 괴로움

수원 세 모녀 사건 재발 않도록 과도한 채권추심 막아야

김남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를 넘은 지 오래이고, 국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200%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즉 전 국민이 1년간 버는 돈보다 빚이 더 큰 상황입니다. 부채의 질도 좋지 않습니다. 연소득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대출자 수가 약 300만 명에 달합니다. 취약차주(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 채무자)의 대출이 증가하고 부실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오마이뉴스 연속기고를 통해 가계의 부채 팽창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올해 1분기 기준 가계부채 총액이 1845조 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가계부채 총액이 국내총생산 대비 100%를 넘고, 이런 수치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이런 숫자는 우리에게 익숙해 위기감을 주지 못합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빚에 억눌린 사람들의 삶이 숫자에 담겨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어마어마한 숫자 속에는 우리 이웃들의 고달픈 삶이 들어 있습니다.

많은 빚을 진 사람들은 주민등록이 된 곳에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권추심 회사에서 찾아올까 걱정되어 주소를 다른 곳으로 해 놓은 것이죠. 빚 독촉 연락이 올까 봐 핸드폰도 남의 명의로 된 것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후불식 교통카드조차 자기 명의로 만들지 못하고, 철저히 없는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고도 채권추심회사에서 따라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지하철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곧바로 내리거나 다른 칸으로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채무자도 있었습니다. 가계부채 2000조 원 시대에 이런 채무자들이 더 늘어났겠지만, 그들의 삶은 숫자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사망한 수원 세 모녀도 채권 추심을 겁내 죽어가면서도 끝내 실제 거주지에 주민등록을 못 했다고 합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채무자들이 이렇듯 주민등록이 된 주소에 살지 않기에 공공복지의 도움이 절실할 때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파산신청자 중 약 49% 우울증 증세

채권추심회사는 억울하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채권자가 그럼 빚 갚으라고 찾아가지도 못 하냐’, ‘전화도 못 하냐’, ‘돈 빌려가서 못 갚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 ‘누가 폭행이나 협박 같은 불법 행위를 했느냐’며 항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채권추심회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채무자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약화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채무자들에게 ‘합법적’인 정도의 추심 행위도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빚에 눌려 있는 상태에서 반복해서 채권 추심에 노출되면,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채권추심에 의해 채무자들은 위축되고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마련입니다.

인천광역시 소상공인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가 파산을 신청한 5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이 49%에 이르고, “죽는 게 낫겠다 또는 자해하려 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44%로 나타났습니다. “거의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고 답한 비율이 12%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원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과도한 채권추심으로부터 채무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채무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지 않게 되고 복지 사각지대로 숨어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만, 채권금융기관에도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 없고, 채권자와 채무자 양측의 권리 보호의 균형이 필요하므로 사회적으로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채무자 보호 제도는 사회적으로 균형점에 있을까요? 채무자를 과도한 추심으로부터 보호하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파산신청자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비율을 보면, 아직 채무자 보호가 더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채권추심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권리를 남용하거나 불법적인 채권 추심을 하는 채권 추심자로부터 채무자 또는 관계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채권 추심자는 폭행⋅협박, 불공정한 행위를 할 수 없고, 채무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한 경우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제도 자체는 충분히 채무자를 보호할 수 있고, 보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법을 뜯어보면, 조문별 제목은 그럴듯한데 본문엔 별 내용이 없거나 실제 적용되기 어렵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법에 채무자를 야간에 방문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지만 적용 요건이 너무 까다롭습니다. 단순히 야간에 방문한다고 금지되는 행위가 아니라 정당한 사유가 없어야 하고, 이에 더해서 야간에 채무자 등을 방문함으로써 채무자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쳐야 금지되는 행위가 됩니다. 단순히 채권추심자가 야간에 채무자의 주거를 방문해서 초인종을 눌렀다고 해서 이 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만약 채무자가 야간에 방문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했다면, 출동한 경찰은 법 위반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불안감을 유발했는지, 사생활의 평온이 심하게 해쳐졌는지 출동 경찰이 현장에서 종합적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정채권추심법에는 채무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연락하면 안 되도록 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미흡합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허점은 채권추심회사와 대부업체 등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작 채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그림의 떡’ 같은 제도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에는 채권추심자가 추심할 때 준수해야 할 사항과 채권금융회사가 채권 추심을 위탁할 때 준수해야 하는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채권추심자는 일정한 경우 채권의 추심이 제한되고, 채무자에게 연락하는 횟수가 제한되며, 추심할 때 준수할 내부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이 기준을 감시할 보호감시인을 선임해야 합니다. 채권금융회사는 추심을 위탁할 때 채권추심회사에 대한 평가를 하여야 하고, 위탁에 대한 관리 책임을 부담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는 채권추심자가 7일에 7회를 초과해서 추심 연락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고, 그 외에는 채권추심회사 등이 내부적으로 그 기준을 정하도록 위임되어 있습니다. 직접 규정된 내용은 적고 위임된 내용이 많아 실제 채무자를 과도한 추심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채권추심회사 등이 스스로 내부 기준을 정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실효적인 기준이 수립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외 채무자 보호 제도에서 배울 점

미국에도 ‘공정채권추심법(Fair Debt Collection Practices Act)’이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채권추심자가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가 7일에 7회로 제한되는데, 같은 부채에 대해 전화통화 후 7일 이내에 다시 전화로 추심하는 것은 법 위반으로 간주됩니다. 오전 8시 이전, 오후 9시 이후에 전화하는 것 또는 채무자가 불편한 시간이나 장소로 전화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미국 채무자는 채권추심자에게 주말이나 직장과 같은 시간이나 장소에서 추심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통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채권추심자는 그 시간 또는 장소로 채무자에게 연락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대부업자나 채권추심회사라도 제한 없이 변호사를 채무자 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대응할 수 있습니다.

호주는 소비자법(ACL)에 의하여 채권자에게 연락할 수 있는 횟수나 방법 등의 제한이 미국보다 더 강력합니다. 전화로 연락할 수 있는 횟수는 주 3회 또는 월 10회로 제한되고, 요일별로 전화를 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습니다. 채무자를 방문해서 추심할 수 있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인정됩니다. 직접 방문하는 것은 최후 수단인 경우에만 허용되므로, 전화나 서면으로 채무 상환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채무자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가계부채가 세계 최악의 상황이므로, 채무자를 보호하는 해외의 선진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합니다. 관련 제도가 도입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사이에 비극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현행 제도 아래서도 채무자 보호를 위해 행정력을 적극 투입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지방자치단체가 원팀을 이뤄 불공정한 채권추심 행위를 합동 단속하고, 나아가 이자제한법 위반 고리대 사채, 무등록 사채 등까지 단속 대상 행위를 넓혀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원문보기 >

[위기의 가계부채 ①] 국가는 모르는 일, 각자 대출 받아 해결하세요

[위기의 가계부채 ②] 전세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

[위기의 가계부채 ③] 폐업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지금 자영업자의 현실

[위기의 가계부채 ④] 코로나19 이후 쌓인 빚, 출구를 마련해야

[위기의 가계부채 ⑤] 숫자로 읽을 수 없는 채무자들의 괴로움

[위기의 가계부채 ⑥] 가슴속 돌덩이 ‘감당 못 할 빚’, 여기로 오세요

[위기의 가계부채 ⑦] 윤 정부, 가계부채 축소 전략과 정책에 집중하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