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채무자의 죽음,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 부족, 잇따른 채무자 참극으로 이어져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대출 실행하고, 고리대·불법추심 유인 없애야

사회적 재기 위해 개인회생·파산 채무자의 주거권, 직업 보호해야

그제 울산에서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경매로 넘겨야만 했던 한 전직 대기업 직원이 아내와 미성년 자녀를 살해 후 자살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참극이 일어났던 아파트 현관문에는 퇴거를 요구하는 문구가 선명히 붙여져 있었다. 서울 송파에서도, 수원과 인천에서도, 완도에서도 빚 부담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했던 일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약탈적 대출의 시대’가 낳은 비극은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언제까지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어야만 하는가. ‘빚 권하는 사회’의 뒷감당은 오직 서민 채무자들의 몫으로만 내던져지고 정부의 방관 속에 과도한 대출의 폐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반면에 채무자의 빚 청산과 사회적 재기를 위한 제도적 지원은 부실하기만 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 이 현실을 지켜만 보고 있지 말고, 가계부채 규제와 한계채무자 재기지원을 위한 정책·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자살자 12,906명 중 경제적 문제로 인한 자살이 약 24%에 달한다(통계자료). 이들의 경제적 문제에 빚이 연루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연간 약 3,000명이 달하는 이들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고 있다. 빚 상환부담이 당장의 삶을 압박하는 것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도 침식해버리는 현실에서, 막다른 곳에 ‘홀로’ 몰린 채무자에게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따라서 이들이 ‘홀로’ 벼랑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회안전망, 특히 부채 부담으로부터의 긴급구제가 필요하다. 특히 가계 금융 빚이 약 1,900조원에 육박하고 취약차주의 대출연체율이 높아지는 등 가계부채의 질 악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오늘날, 이는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현재의 가계부채를 이대로 방관하면 국민 다수의 가정 파탄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 경제와 사회질서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임은 자명하다.

고액 채무의 대출원리금 혹은 일시상환에 직면한 채무자들의 숨통을 틔어주고 재기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명목상으로만 불법사금융과 추심을 근절하고 채무청산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할 뿐 이를 이한 대책 마련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 노력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다. 일례로 그제 채무자 일가족 비극이 발생한 울산에는 채무자 지원을 위한 지역자치단체 차원의 금융복지상담센터가 부재했다. 그러나 이는 울산만의 문제는 아니며, 금융복지상담센터가 존재하는 다른 지역자치단체 역시 서울과 경기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그 규모가 작고 소수의 전문인원만이 상주해있을 뿐이어서 한계채무자들의 벗이 되고 효과적인 지원자가 되기에 한계가 있다(현황자료). 막막한 상황에 놓인 채무자들이 적절한 채무조정과 복지시스템을 연계받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적절한 개입과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야 정치권은 말로만 ‘불법사금융과 불법추심근절’, ‘파산과 채무조정’을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예산을 투입해 실행해야 한다. 정부도 대통령이 불법추심 근절을 주문했지만, 이런 비극을 막지 못했고, 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이에 신속하게 범정부 차원에서 불법추심 근절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회의 입법 활동에 대해서도 매우 아쉽다. 이번 정기국회를 지나면서도, 취약차주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되는 법안은 개인채무자보호법 1개뿐이다. 금융소비자시민단체들의 청원과 몇몇 국회의원들이 뜻을 모아 발의한 법안들은 모두 제21대 국회에서 외면받고 있다. ▲불법사금융 대출의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상환도 금지하는 대부업법 개정안, ▲대출 실행 시 상환가능 범위를 넘어선 과잉대출이 실행되지 않도록 하는 불공정·과잉대출규제법 제정안, ▲과도하고 불공정한 추심으로부터 채무자 보호를 강화하는 채권추심법 개정안, ▲파산자의 직업차별 조항을 삭제하는 각 상임위 법안들, ▲개인회생채무자의 주거권 보장과 신속한 빚 청산과 사회적 재기를 위한 채무자회생법 개정안 등 현재 계류된 법안들이 모두 처리되고 ‘채무 발생-보유-청산’ 각 단계에서 지원 제도가 잘 완비되면, 지금도 극단적인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가족들의 삶을 지킬 수 있다. 강제집행에 따라 주거를 잃는 채무자들에 대한 긴급주거지원 정책도 절실하다.

그러나 역대 정권을 막론하고 그 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대체로 ‘빚내서 집사라‘고 부추기기만 했을 뿐, 그 위험에 대한 안전망 구축과 재기지원 방안 마련에 있어서는 채권자의 눈치만 보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왔을 뿐이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가 더 크다. 제21대 국회 임기 동안 상기한 법안들이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역시 재정 아낄 생각만 하지 말고 채무자와 사회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하라!

※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로 인해 삶을 마감한 고인과 희생된 가족들께 삼가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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