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미국 집단소송제 폐해 설득력 없어

최근 우리나라에 도입된 증권집단소송제와 관련해 마치 원산지인 미국에서조차 폐해가 많아 고치고 있는 제도를 무분별하게 도입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최근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통과시킨 집단소송 개선법안을 논거로 삼고 있는데 26일자에 실린 존 퀸 미국 변호사의 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집단소송 개선법안이 집단소송법의 폐해를 줄이려는 법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법의 입법과정에서 논의된 집단소송의 폐해들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미국과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법은 주법과 연방법의 이중 구조로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방법과 주법이 같이 적용될 수 있는 사건에서 원고 측 변호사에 의한 관할 쇼핑의 문제가 항상 있어 왔다. 주법원 하급심의 경우 대부분의 판사가 해당 주민들이 선거로 뽑도록 돼 있다. 따라서 판사들은 정치적인 판단을 할 여지가 있으며 표를 의식해 다수의 피해자들로 구성된 원고 측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연방 판사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역의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담당 변호사는 그 피해자가 여러 주에 걸쳐 있는 경우 원고에게 가장 우호적인 주법원을 고를 수 있다.

그 결과 실제로 온통 나라를 흔들 정도의 큰 사건이 아주 초라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의 법정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집단소송 개선법안은 이러한 관할쇼핑을 규제하고 있는데 일원적인 법체계와 사법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예 관할쇼핑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디스커버리(discovery)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 피고가 보유하고 있는 각종 정보에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뿐 아니라 모든 관련자들을 사전신문 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같은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원고 측이 피고 측에 비해 제한된 자료만을 가지고 열악한 조건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소 제기시 청구원인을 명확히 주장해야 하므로 막연한 주장만 가지고 소송을 제기했다가는 소송허가 단계에서부터 봉쇄될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채 우리나라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폐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미국 집단소송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 간과하는 것이 있다. 왜 그렇게 폐해가 많은 제도를 굳이 미국에서는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고 그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집단소송이다.

집단소송은 기업들에 비리나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억제 기능이 여타 제도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억제효과로 인해 미국의 기업이나 투자자, 그리고 소비자들이 누리는 효과를 계산한다면 아마 기업이 치르는 비용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자본시장은 집단소송을 비롯한 많은 제도적 장치들로 인해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돼 있고, 미국 기업과 시민들은 이처럼 발달한 자본시장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국이 집단소송제도를 제한적으로나마 도입한 것은 대단한 모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 모험은 보다 선진화된 사회, 보다 투명한 사회를 위한 값진 모험이 될 것이다.

* 이 칼럼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이지수 (미국 뉴욕·뉴저지주 변호사,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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