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7-03   1883

[16회 판결비평-좌담회] “지방자치에 대해 전복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

“아쉽지만 지방자치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이해한 소수의견이 나왔음에 주목”

[편집자 주 : 지난 6월 27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울산 북구청 공무원 승진임용 직권취소처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되짚고, 지방자치의 현실과 문제점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지방 기초단체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과 권한의 한계를 결정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곱씹어본 자리였다. 참석자들의 주요 좌담내용을 소개한다]

○ 장소 및 일시 : 참여연대 강당, 2007년 6월 27일 오후 7시30분부터

○ 사회 :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건국대 법학)

○ 토론 : 이국운 교수(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법학), 김광수 교수(명지대 법학), 이은우 공동대표(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심재옥 최고위원(민주노동당 지방자치위원장)

한상희(사회자): 공무원 노조설립을 위해 파업에 참가했던 공무원들을 징계조치하라는 행정자치부와 울산광역시의 지시를 거부하고, 이후 정기인사에서 이들을 승진시킨 울산 북구청장의 인사처분이 문제되었습니다. 상급관청인 울산광역시는 이러한 울산 북구청의 승진조치를 취소하였는데, 다시 울산 북구청이 이에 ‘취소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소송을 냄으로써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법관들은 이 사건이 본질적으로 기초자치단체 자치권의 침해인지, 혹은 상급행정기관이 갖는 지휘감독권의 정당한 행사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중앙정부의 권력이 강력했던 우리의 국가주의 체제에서 생활정치, 지방자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의 행정 체제와 미래의 체제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국운 : 지방자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 상황을 소위 ‘2할자치’라고들 합니다.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지방자치의 본뜻에 비출 때, 재정에 있어서나, 결정권과 자율권에 있어 20% 정도의 자치만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20%가 점점 늘어나면서 100%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20%도 지켜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죠. 참여정부가 지방자치를 국정의 제1목표로 내걸었지만, 중앙이 나눠준 이권을 가지고 지방 정부와 시민, 대학 등을 경쟁시킴으로써, 자치와 혁신이 오히려 뒷걸음치는 것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8대 5로 중앙정부의 권한이 기초단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결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2할자치’의 지방자치 현실을 사법적으로 정당화해준 판결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섯 명이나 되는 대법관들이 소수의견을 통해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단단한 법적 논리 속에서 세웠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다만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그리고 중앙정부의 당적이 다르다는 점은 떼어놓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번과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법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판결에서 8명의 다수의견은, 지방자치행정이 국가 통치질서의 한계 내에서만 허용되며, 그 한계를 벗어났다면 국가의 법질서에 의한 통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소수의견은, 지방자치를 국가의 통치권, 입법권, 행정권의 잉여에 국한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국민주권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법률에 의거한 권리가 아니라 주권재민의 원리라는 정치적 기본권에서 곧바로 도출되는 고유한 권리로 보는 것이죠.

문제가 된 지방자치법 157조 1항은 두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위임사무’에 대한 규정이고, 후문에 ‘자치사무’를 규정합니다. 핵심은 ‘법령위반’과 관련해 ‘자치사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겁니다. 소수의견은 ‘법령위반’의 범위를 ‘재량권의 일탈, 남용’과 관련시켜 해석합니다. 좁은 의미의 법령위반이 있을 때만 국가가 기초단체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치사무는 헌법에 보장된 주권재민의 원칙에 기초한, 주민의 고유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국가가 가능한 침해하지 못하도록 지방자치법 157조에 위임사무와 구분하여 규정해 놓았다는 논리입니다. 헌법의 시각에서 157조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다수의견은 보충의견을 통해, 소수의견이 ‘법령위반’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지방자치는 어디까지나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보장된다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보충의견에도 만족하지 못한 분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양승태 대법관은 국가도 잘못할 수 있고, 지방기초단체도 잘못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럴 경우는 재판을 통해 시정될 수 있는데, ‘소수의견의 논리를 따르면 대법원에서 판결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 그래서 이는 매우 위험한 견해’라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것을 ‘사법적 초집권주의’라고 봅니다. 국가의 사무가 행정이나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재판을 통해, 사법을 통해 관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양승태 대법관은 ‘국가가 부당한 간섭을 할 경우’에는 이를 시정할 방법이 있지만, ‘지자체장의 재량권 일탈, 남용’이 있을 때엔 적절한 시정방법이 없기에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만, 저는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것이라 봅니다. 양승태 대법관의 주장과 달리, 시정할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통해, 그리고 최근 통과된 주민소환제나 주민투표제를 통해 시정할 수 있는데, 어째서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다수의견은 법리적으로도 문제있어”

김광수 : 우선 지방자치법 157조의 ‘법령의 범위 안’이라는 조문의 위헌인지 살펴야 합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를 합헌이라고 결정했으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도 ‘위임사무’와 ‘자치사무’를 구분하고 있는데요, 자치사무에 관한 상급기관의 통제는 위법에 한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량의 문제를 지방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위법이 일반적인 의미의 법령위반인지 여부가 다시 문제되겠지요. 많은 행정법학자들은 재량권의 일탈, 남용도 위법에 포함된다고 보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행정소송법에 ‘재량권의 일탈, 남용이 있을 시에는 법원이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위법의 범위 내로 두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견해가 나옵니다. 바로 이번 판결에서 소수 보충의견을 내놓은 이홍훈 대법관의 견해인데요, ’재량권 일탈, 남용이 전통적으로 위법의 범위 안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방자치사무에 대한 통제문제와 관련, 국민이 국가로부터 기본권을 침해받고 이를 시정해달라고 청구했을 때에는 다르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을 때에는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경우, 이를 취소해야겠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치사무에 있어 재량을 일탈, 남용했을 혐의가 있을 경우에는 그 혐의가 명백하지 않는 한 통제해선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이번 울산 북구청 사건이 ‘재량의 일탈, 남용’논리에 해당되는지의 여부입니다. 그런데 다수의견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울산광역시장이 징계를 요구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계대상자를 정기인사 때 승진임용한 것이 인사권의 일탈, 남용이라는 것인데, 이를 문제 삼으려면 ‘징계권의 불행사’를 문제 삼았어야 합니다. 다수의견의 논리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이번 승진 대상자 여섯 명에게는 아직 징계가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울산광역시와 대법원은 먼저 징계권의 행사부터 문제 삼았어야 했습니다.

또한 징계의 발단이었던 공무원 노조 파업 참가가 없다는 가정에서 이들 여섯 명의 인사고과 등 사실관계를 대법원이 충분히 참고했는지 여부입니다. 문제의 사건이 없었다면 이들이 정기인사에서 승진할 인사고과가 없었는데 단지 구청장의 정치적 견해를 순종함으로써 특혜를 받았는지 여부, 그리고 이들의 승진임용으로 다른 직원들이 불이익을 보았는지 여부가 판단에 선행되었어야 했는데, 다수의견에는 이런 것이 없어 논리적으로 미흡하다 할 것입니다.

“지방정부를 중앙정책의 집행기관 정도로 이해하는 시각이 문제”

한상희 : 미국 수정헌법 2조는 국민들이 총기를 보유할 권한을 규정해 놓았는데요,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를 연방정부로부터 지키기 위해 무기를 소지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헌법의 규정대로라면, 미국민들이 소유한 총구의 끝이 향하는 곳은 소련이나 북한이 아니라 연방정부라는 겁니다. 우리 헌법 1조 2항에서도 ‘모든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지방자치는 ‘자기지배의 원칙’에 입각해 이해할 수 있으며,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우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국운 : 이번 판결에서 이홍훈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국가와 사법이 상위에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그 아래 위치한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헌법을 꼼꼼히 보면 지방자치단체와 국가는 수평의 관계이며, 서로의 분명한 영역이 있다는 것이죠. 지방자치법의 해석도 헌법적 틀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주목할 만한 헌법적 이해입니다.

이은우 : 이는 비단 울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국가는 지방정부의 권한과 자치권을 왜소화시켜왔습니다. 그것이 제도적이지 않더라도 각종 개발계획이나, 재정지원으로 지방정부의 공무원들이 스스로 중앙정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입은 자의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택에선 얼마 전 개인비리로 징계를 당한 공무원을 승진시킨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러한 일탈행위를 한 공무원의 인사에 울산에서와 같은 국가와 광역의 개입은 없었습니다. 반면 부단체장의 인사에 대해선 광역과 중앙은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경북과 충남에서는 부단체장을 기초단체장이 임명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한상희 : 이런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일 기초단체장이 부하직원에게 뇌물을 받고 부당한 인사를 일삼을 때 광역과 중앙은 넋 놓고 바라만 봐야 하느냐는 건데요, 이것이 양승태 대법관을 비롯한 다수의견의 우려라고 생각됩니다.

“지방자치를 위해 기초단체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심재옥 : 이번 판결이 우리 지방자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자치행정권을 얼마나 제약할 것인지, 중앙정부의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얼마나 정당화할 것인지 우려합니다. 법령에 의해 만들어진 사무가 약 4만개인데,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는 약 1만개 정도입니다. 또한 중앙정부와 예산 비율도 8대2정도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업을 추진하는데 행정 권한이나 예산 재량에 있어 중앙정부의 허락이 없이는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렇듯 지방은 중앙에 거의 장악되어 있고, 실제 자치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자치입법권이라 해서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허용함으로써 실제로 법이 위임하는 사무라고 명시하지 않으면 조례를 만들 수 없다는 태도가 만연해 있습니다. 법률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기에, 법률이 금지하고 있지 않은 영역에서 얼마든지 지방자치조례를 만들 수 있음에도, 현재의 여건은 이를 공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방자치의 경우 단체장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지방자치의 3주체로 단체장, 의회, 주민을 꼽을 수 있는데, 단체장의 독선과 전횡을 제어하기에 의회와 주민의 힘이 미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의회가 단체장을 견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단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 의원으로 지방의회가 채워져 있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의회와 주민이 단체장의 잘못을 바로잡을 만큼 성숙한다면, 중앙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지침을 내릴 필요 또한 사라지겠죠. 지방의회의 권한 강화,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법제 개선이 필요합니다.

또한 행자부장관이 공무원노조 파업에 대해 지침을 내리고, 울산광역시가 이를 근거로 징계하라는 요구한 것이 정당한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법률에 터 잡은 것이 아니라, 장관의 ‘지침’에 의해 이루어진 부당한 간섭입니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부당한 행태를 대법원이 사법적으로 정당화한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이은우 : 지역의 경우 수많은 조례 입법 청원들이 법령과 지침의 제약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역의 특색, 문화와 복지에 터 잡은 조례의 다양성이 행자부가 요구하는 기준 아래에서 표준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판결이 정책의 획일화, 인사의 획일화를 불러오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라 봅니다.

중앙정부는 간섭뿐만 여러 회유책도 동시에 사용합니다. 평택이나 새만금의 예에서 보듯이 지방 조직에 현장기구를 늘려서 공무원들의 승진기회를 확대해줍니다. 이를 통해 지방 공무원들이 중앙정책의 하위 전달자 역할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심재옥 : 이처럼 지방과 중앙이 갈등을 빚을 때, 중요한 것은 지자체장의 의지입니다. 행정수도이전의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서울특별시는 수년 간의 투쟁 끝에 헌재의 승소를 받아냈죠. 정책과 법령으로 강제하는 것도 되돌릴 수 있을 만큼 지방 정부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조직화된 저항이 미약한 실정입니다.

이은우 : 그것은 광역과 기초에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역은 예산이나, 조직, 재량권에서 저항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초는 현실적으로 예산이나 지도감독권 때문에 저항이 불가능합니다.

이국운 : 누구나 기초에서 살지만, 저처럼 수도권 이남의 광역도 아닌 기초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구분해야 됩니다. 서울특별시는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자치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상희 : 서울민국 대한시라는 말도 있죠.

김광수 : 이국운 교수가 언급한 ‘보충성의 원리’는 인간의 자율성에 기초한 원칙입니다. 인간은 자유가 주어지고 내적인 동기가 발생했을 때, 가장 활발하고 창의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합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인간의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 지방자치제이죠.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중앙의 간섭과 통제와 간여를 억제하고 지방의 활동을 보장한 것입니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개발의 문제도 지방자치를 살릴 때 해결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상희 :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규제완화 차원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하도록 한 법률에 따라 지방정부에 이양하려고 해도 지방에서 이를 가져가지 않는다는 푸념도 들립니다.

이국운 : 그 문제는 지방의 시각에서 보면 다릅니다. 권한은 주는데, 그 권한을 집행할 수 있는 돈과 인원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의 사례를 들어보죠.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됐지만, 재정지원의 면에서 나아진 것이 전혀 없어서, 버림받은 느낌이라는 푸념도 들립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집권주의의 논리를 전복시켜,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 국가의 틀을 새로 짜자’는 논의가 나와야 해결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승태 대법관의 보충의견을 보면 구국의 일념이나 가부장적 사고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체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한다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입니다.

지방을 통제하기만 하는 행자부의 존폐여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있어

한상희 : 신자유주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중앙정부는, 한편으로 자치를 내세우면서 지방자치단체를 시장에 던져놓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개발을 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만, 결국에는 중앙정부를 찾아가 보조금과 지원을 더 받아가려는 노력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자치, 자율’을 허용해준다면서 지역을 시장에 던져놓고는 다시 중앙정부에 종속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사실 있을 이유가 없는 대표적인 부처가 행자부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치이념에 충실하다면 행자부는 중앙정부의 공무원 관리를 맡는 ‘행정자치국’정도에 그쳐도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심재옥 : 지방자치가 꽃을 피우려면, 예산을 골고루 분배해서 자치재정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공동세를 신설해서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하는 것도 좋은 경우라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행자부는 지방교부세 분배를 통해 지방을 통제하면서 여러 불법적인 지침을 남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행정자치부를 해체하려는 과감한 노력이 있어야 지방자치가 존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행자부의 지방자치국장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지방정부에 대한 행자부의 고루한 시각을 알기에 충분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하고 방침을 이행하는 수직적인 하부구조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행자부와 사법부는 공통적으로 지방자치에 대해 매우 중앙집권적인 정치논리를 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에 대해 지역이 자립기반을 만들고 정치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은 의미있다고 봅니다. 나아가 기초의회에도 정당공천제를 실시해서 책임정치가 가능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폐지된 지구당 복원도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김광수 : 기초단체선거에마저 개입하는 중앙정당 공천제도 지방자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중앙정당의 공천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5년 지방자치특위에서 통과되어서인데요. 이는 정당을 매개로 한 중앙정부의 개입을 확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번씩 선거바람이 불때마다 지방의 시민단체는 완전히 와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지방선거의 예를 들어볼까요? 어느 정당에서는 중앙정부 심판론을 들고 나왔어요. 그래서는 매니페스토, 즉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는지 평가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죠. 지방선거에서는 중앙공약이 나오고,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지역개발공약이 나오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실제 한 선거구에서 두 명씩 뽑는 중선거구제 때문에 주요 2당 외 소수정당이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지역에서마저 풀뿌리 정당은 존립하기 어려운 형편이죠. 정당공천의 문제는 지역 행정에서도 나타납니다. 공무원들의 줄서기를 조장해서, 공무원들이 지역민을 보면서 공무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만을 바라본다는 것이죠. 지방자치의 본래취지가 퇴색되는 것입니다.

중앙과 지방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한 때

이국운 : 저는 다수의견이 취하고 있는 수직적 관계, 그리고 소수의견이 취하는 수평적 관계를 넘는 또 다른 형태의 수직적 관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충성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초자치단체가 가장 중요한 단위라는 것이죠. 기초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기위해 광역단체가 필요하며, 광역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기위해 중앙정부가 있는 것입니다. 지방자치가 먼저고 지방자치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중앙정부가 존재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합친 것이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행 헌법을 그렇게 읽을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보충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자치를 기본권으로 생각하는 헌법의 이해가 나와야 국가주의와 자치주의 간에 균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헌법 117조에서 문제되는 ‘법령의 범위 안’에 지방자치 단체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법률 외 행정부 수장과 장관들의 명령도 ‘법령’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이번 판결의 소수의견이 ‘법령의 범위’라는 문제를 제쳐놓고 ‘재량권 일탈, 남용’에만 천착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재량권 일탈, 남용’의 법리는 법문에 쓰여진 조항이 아니라, 해석법학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동원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는 해석법학 중심주의 아닌가하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치 단위의 문제라고 봅니다. 플라톤은 철인국가, 이상국가를 얘기하면서 정원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자치가 가능한 단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 정도의 규모를 가진 선진국가의 예를 살피면, 500만정도로 준국가 형태의 자치단위를 설정해 국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합니다. 연방의 형태를 취하는 독일과, 미국, 그보다는 느슨한 2단계 행정구조를 갖고 있는 프랑스와 일본이 그 사례입니다. 국가는 광역을 관리하고, 광역은 다시 중앙의 눈치를 보며 기초를 경쟁시키는 우리의 3단계 행정구조로는 풀뿌리 지방자치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이미 김영삼정부시절 최형우 내무부장관이 이미 구상했던 문제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치 단위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입니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그래도 아직 법에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섯 명이나 되는 대법관들의 소수의견이 가능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방자치라는 것이 중앙정부의 선물 정도가 아니라, 시민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본권이라는 점을 비록 소수의견으로나마 천명한 것이죠. 이러한 소수의견을 다수화하기 위한 투쟁과 설득의 과정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상희 : 지방자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하는, 자기지배의 문제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자치의 권리인데, 우리 국가체제는 이를 부인해왔던 것이죠. 이번 판결은 우리가 갖고 있던 부당한 통념에 충격을 주는 충분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변혁의 동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로 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의 논의들이 풀뿌리 지방자치를 일궈내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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