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03-08   2102

[판결비평] 전교조 시국선언, 엇갈리는 판결들

지난해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이 잇따랐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을 주요 내용으로 주로 대학교수・학생들이 선언의 주체가 되었지만, 작가・승려・법조계 등 광범위한 층위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졌지요.
 
2009. 6. 18. ‘6월 민주항쟁의 소중한 가치를 기리는 정진후외 16,171명의 교사’ 명의로 발표된 시국선언은 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발표한 것으로, 검찰은 이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66조의 ‘집단행위의 금지’ 위반을 들어 기소했습니다. 이에 대한 판결은 지난 2010. 1. 19 전주지법을 시작으로, 현재 4건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되었으며, 70여 건이 전국 12개 법원에서 진행 중입니다.

이 사건들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피고인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로서, 이들의 행위가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행위’에 해당하는가입니다.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으므로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하여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로 축소해석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4건의 판결들은 이러한 기존 판례하에서 ‘공익의 범위’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등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실관계를 두고 전주지법과 대전지법은 무죄를, 인천지법과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판결을 선정하여 비평칼럼을 받고 있습니다. 2010년 첫번째 판결비평은 ‘전교조 시국선언의 엇갈리는 판결’에 대한 것입니다. 장철준 교수(한동대)가 비평칼럼을 써주었습니다.

같은 주제로 진행되는 판결비평 좌담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좌담 일시 및 장소 안내

시국선언(時局宣言)의 정치학
장철준 교수(한동대 법학부)

‘시국’을 논할 자격

“교수”라는 호칭이 아직 몸에 길들지 않은 새 옷처럼 느껴지기만 하던 지난여름, 처음으로 시국선언이라는 것에 참여해 보았다. 대법관 한 분께서 결격 요건으로 점철된 이력에 불구하고 굳이 자리를 보전하시겠다는데 그만 하시라 용퇴를 촉구하기가 인간적으로 좀 씁쓸하였지만, 명색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정점에 서 있는 대법원의 구성 멤버라면 가급적 덜 ‘정파적’인 사람이어야 이 땅의 정의가 바로 설 것이라는 신념에서 나온 나름 호기를 부린 서명이었다.

하지만 임용 반년도 안 된 초짜교수가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던 그 호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 국립, 사립을 막론하고 교수라는 지위에서 천명한 나라 걱정에는 정부도 학교도 어찌 해 볼 수 없는 튼튼한 헌법적 보호막이 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내가 밥벌이로 늘상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헌법상의 ‘기본권’이요, 구체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내가 누렸던 그 자유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 속에만 있던 기본권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을 무렵, 내용은 달랐지만 우리가 했던 주장과 거의 비슷한 맥락의 시국선언을 주도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그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교수, 교사이기 이전에 같은 나라에 함께 사는 시민으로서 나와 그 분들이 무슨 다른 것이 있기에 머릿속의 ‘정치적’인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는 같은 행위를 이렇게 달리 취급하는 것일까?

사건에 관하여 상반된 결론을 내린 법원의 두 판결을 읽으며 바로 이 ‘정치적’이라는 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태도가 문제의 발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을 뿐더러 실제로 정치 생활을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이라는 말에는 염증을 느끼는 바로 그 태도 말이다.

시국을 논할 자유와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이들 사건 시국선언을 주도하였던 교사들은 모두 전교조 간부인 전임자들이다. 전교조는 2009년 6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기로 결의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조합원, 비조합원 서명자를 모집하여 “6월교사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에는 공권력의 남용에 의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를 야기한 정권의 독단적 태도를 지적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기 위한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이 전주지법과 인천지법의 재판에서 공통적으로 기소한 쟁점은 이들 교사들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금지한 이 조항 표현이 상당히 광범위한 까닭에 공무원의 다른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컸으므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판례로써 이 조항을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하여 직무전념의무를 태만히 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만을 금지하는 것이라 그 의미를 한정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사의 시국선언 발표행위가 이렇듯 국가공무원법상 금지되는 집단적 행위인지를 가려야 한다. 두 사건 모두 공무원이 관련된 국가공무원법에 관한 판결이기는 하지만 교육의 문제에 관하여 행한 ‘교사인 공무원’의 행동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우리 헌법상의 교육에 대한 기본원칙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헌법이 말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과연 무엇인지 해석하여야 하는데, 흔히 학계에서는 교육에 정치적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과 함께 교육 또한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의 ‘정치적인 교육’이란 교육의 기회를 통해서 일방적인 특정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라는 설명 또한 덧붙이고 있다.

시국선언 교사들에게 유죄를 선언하였던 인천지법 판결문에서도 시국선언 내용의 “정부정책에 관한 부분은 정파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필연적으로 특정 정파의 주장과 일치하게” 된다는 이유를 드는 것을 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일방적 사상의 주입’을 회피한다는 맥락에서 이해하면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이번 시국선언에서 ‘일방적 사상의 주입’이라는 멍에는 비교적 쉽게 벗길 수 있을 듯 싶다. 선언문이 전교조 자체의 이름이 아니라 참여한 모든 교원들의 명의로 행하여졌고 여기에는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교원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참여한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목표로 일방적인 생각을 주입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선언이라는 형식을 통하였기 때문이다.

인천지법 판결은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능력이 아직 미숙한 초·중·고교 학생들의 경우 타인의 정치적 주장 등을 여과 없이 수용할 가능성이 크고 특히…교사들이…표현하는 경우…오늘날 인터넷 등 대중매체의 전파력 등을 고려할 때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체를 통한 주장을 일방적인 주입방법과 동일하게 보는 것도 억지스럽거니와 이를 이유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다음으로 시국선언의 내용이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인가를 규명하여야 한다. 보통 시국선언이라 하면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부나 다수당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치무대의 주류에 대한 비판은 체질적으로 정치집단인 야당에서 늘상 하는 일이며 정부정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이익집단, 운동단체 또한 비판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만약 공무원이나 교원의 정부비판 내용이 조금이라도 이들 정파의 주장과 같으면 정파적 이해관계에 가담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런 해석은 공무원, 교원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절대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정부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고 시키는 대로만 묵묵히 따라오라는 압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공무원이든 교원이든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헌법상의 기본권이다.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다른 어떤 표현보다도 더 큰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몸의 피를 돌게 하는 가장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인천지법 판결에서 몇 가지 더 위험한 내용을 읽을 수 있는데, 시국선언 표현이 “다소 단정적이고 과격한 점” 때문에 유죄이고, 교사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가장 신중히 행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기준이다. “과격한” 언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중히” 행사하는 정치적 의사표현이란 무엇일지, 부족한 내 상상력만 탓하게 된다.

헌법적인 기본권 제한

물론 기본권은 제한될 수 있다. 다만 국가는 가장 ‘헌법적’인 방법으로 제한하여야 한다. 그래야 국가권력에 의한 제한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의 증진이라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제한의 형식은 반드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여야 하며, 제한하더라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는 손댈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확보되어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면 전주지법의 판결대로 제한은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교육 관련법에 의하여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될 위험에 있다면, 손쉽게 “정파적”이라 덧칠하여 정당화 할 것이 아니라 기본권을 먼저 살리는 데 법원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이념이다.
 
전교조 교사들을 처벌하는 대신, 차제에 정부정책에 찬성하는 교사들도 시국선언을 한 번 하시면 좋겠다. 여러 주장이 등장하는 가운데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고 민주주의가 이루어 질 수 있다. 다만, 비판이 아니니 상대적으로 ‘과격하지 않을’ 정부지지 시국선언도 “정파적”이어서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을 위해 처벌하라는 판단을 내릴지 법원의 태도가 궁금할 따름이다.

판결비평 원문
JWe201003080a.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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