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9월 2018-09-01   959

[만남] 나는 학교 민주주의를 감행하고 싶다 – 김원태 회원

나는 학교 민주주의를 감행하고 싶다

김원태 회원 

 

월간 참여사회 2018년 9월호 (통권 258호)

 

페이스북 접속, 컴퓨터 화면에 마우스를 대고 한참을 스크롤 해 내려갔다. 2014년 2월 6일, 무려 4년 전 게재한 내용이다. 

 

잠자리에 누워 시사인을 보다 깜놀!!!

경기도교육청이 ‘더불어사는 민주시민’이라는 교과서를 펴냈단다. 올해부터 경기도내 초중고에서 수업에 활용한다고…

내용도 생각보다(?) 무지 진보적이다.

학생인권부터 시작해 반값등록금 원전문제 복지문제 대북식량지원 등 핫 이슈들을 모두 다룬단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교과서에서 ‘노동문제’을 다루고 있다는 것!!!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근로계약서 작성하기 등등.

평소 언론의 많은 기사들을 보고 놀라지만 이런 방향으로 이렇게나 감격스럽게 놀라보기도 첨인듯 하다.

경기도를 떠날래야 떠날수가 없게 만드는 참 교육자가 내곁에 있다는 사실에 흐뭇한 밤이다^^

 

오늘 난, 4년 전 나를 놀라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의 주인공을 만나러 간다. 

 

전두환 밑에서 내가 공무원을 해?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저자를 만나기 전날 고등학생, 초등학생인 딸들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배워?” 두 녀석 모두 고개를 저었다. “배운 적 없어, 단 한 번도!” 그래서였다. 질문들로 가득한 종이를 손에 쥐고도 뇌보다 입 근육이 먼저 움직였던 건. 왜 학교에서 이 교과서 안 가르치나요?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현 교육부 장관)이 그거 만들어 놓고는 그 직후에 교육감을 그만두었어요. 만든 이가 어떻게든 제도화까지 했어야 하는데, 어쨌든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누가 어느 시간에 가르쳐야 한다고 명확히 하지 않으면 실행이 어려우니까요. 그 책을 쓴 저도 사회 선생이지만 솔직히 한 학기 동안 딱 두 시간 써봤어요.”

 

교사들의 선의에 호소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교과화하고 담당교사도 따로 두어 제도화해야 한다는 그의 차분한 설명에도 나는 내심 좀 화가 났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배울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 무참히 짓밟힌 공교육 혁신에 대한 나의 기대, 교과서를 만드는 데 들어간 세금….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도 인터뷰는 지속되어야 한다. 평생을 교사로 사셨는데 그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대학 때 전공이 행정학이었어요. ‘대한민국에선 공무원이 최고다’라는 아버님의 뜻을 따랐던 건데, 사실 전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부전공으로 교직과정을 이수했죠. 근데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이었어요. 이런 행정 시스템에서 그것도 전두환 밑에서 내가 공무원을 해? 그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숨 막혀 죽을 거 같아서.” 

 

교사가 된 사연 몇 마디만 들어도 그의 기질이 짐작 갔다. 그리고 곧 교직생활은 무탈했을까 하는 염려가 뒤따랐다. 

“교장 되는 것만 포기하면 그냥 평생 평교사로 지내면서 누구하고도 맞장 뜨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각오였어요. 돌아보면, 원 없이 상급자한테 대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행복한 삶이었죠.”

 

교사로서 살아온 30년 세월. 그 긴 시간을 갈무리하며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런 미소를 지켜보는 건 내게도 행복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회한의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한테 그렇게 따뜻하고 정감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몇몇은 제가 정의롭게 수업하는 거 같으니까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말 자신들을 예뻐한다고 생각해서 따르는 아이들은 적었죠. 여러모로 아쉬움이 커요.”

 

교무실 액자의 문구가 바뀌다

키를 낮추고 앉아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때론 애정이 담뿍 담긴 말 한마디를 건네는, 그가 어렸을 적부터 꿈꾸었던 것은 분명 그런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88년부터 전교조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어요. 당시 사립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던 저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지요.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제 뒤를 따라 함께 일어서 줄 사람들을 찾아야 하고, 그때는 그런 일들에만 정신이 팔려있었어요. 그러다 96년에 참여연대에 가입했는데 마침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는 중이었어요. 그걸 학교에서 돌리다 또 이사장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한때는 ‘성남시민모임’이라고 지역운동에도 관심이 있었고, 전교조 합법화된 이후엔 분회장도 맡아 하고, ‘전국사회교사모임’이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리는 공부 모임에 참석하고. 다시 선생하면 그런 거 안 하고 정말 애들하고 하루에 한두 번씩 상담하고 아이들 얼굴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잘 따라오고 있는지 두루두루 살피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다정하진 못했으나 그는 신념과 소명의식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사회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더 넓고 깊이 있는 관점을 키워주기 위해 교과서 밖의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들려주었다. 

“사회 교사로서 사회를 개혁하고 바꿔나가는 데 책임의식을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아이들하고 같이 ‘NGO 탐구반’ 같은 것도 만들고 그랬죠. 사회 과목을 가르치면서도 참고서보다는 「참여사회」나 「한겨레 21」의 내용을 더 많이 참고했고요.”

 

인터뷰 전 그가 직접 작성해서 보내온 참고자료 목록을 받았다. 그의 경력부터 저서, 연구 발표물, 기고문, 성명서, 언론 보도 등의 내용이 A4용지 8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직접 만나지 않고 이 목록만 보았다면 난 그를 허영심 가득한 사람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눈 후 다시금 그 종이들을 펼쳐보았을 때, 그 긴 목록을 한 줄 한 줄 눈으로 따라 읽는 내내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여덟 장의 종이, 그것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꿔보려 한평생 몸부림쳐 온 자의 분투기였다.

 

“교무실 벽에 교육지표가 적힌 액자가 있어요. 그전엔 보통 ‘선진조국 창조’ 뭐 이런 거였는데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고 나서 그 문구가 바뀌었어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창의적인 민주시민 육성.’ 그걸 보는데 기분이 막 날아갈 거 같은 거예요. 오랜 세월 등짝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게 사라지는 느낌이었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감정 선에 쉽게 동화된다. 액자의 문구가 바뀌는 순간 나는 그와 함께 환희를 맛보았다. 그러나 곧 반전처럼 찾아온 그의 절망 앞에서 나 또한 깊은 분노와 좌절을 느껴야 했다.

 

학교는 왜 바뀌지 않는가

“근데 그 이후 2년, 3년이 지나도 변하는 게 없더라고요.”

나는 8~9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나의 아이들은 2010년대에 학교에 갔다. 그사이 한 세기가 흘렀고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와 아이는 학교 문화의 많은 것을 공유한다. ‘차렷, 경례’, ‘애국조회’, ‘운동장의 조회대’,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100년 전부터 시작된 구시대의 유물들. 대체 왜 ‘학교’는 바뀌지 않는가. 

 

“철저한 위계조직과 인사권을 독점한 교장 밑에서 교사들이 변화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죠. 그리고 다른 이유는, 교사들도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것들을 아이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뿐인 거예요. ‘민주시민 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사들도 그와 관련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거죠. 제가 한번은 교원대와 사범대학의 커리큘럼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관련된 교육내용이 없거나, 있어도 선택과목이었어요. 학교 문화를 바꾸고 혁신하려면 교원양성단계에서부터 준비된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는 현재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 자문관’으로 있다. 퇴직 후 평생 교사로 지낸 자신의 경험이 사회변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일이다.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자문회’의 일원으로 교육부 장관을 만났을 땐 ‘민주시민 교육’에 대한 내용을 임용고시에 출제해달라고 강력히 권고하기도 했다. 얼마 전엔 인터뷰를 핑계로 조희연 교육감을 만나 민주주의를 ‘감행’하는 교육감이 돼 달라며 달달 볶기도 했다. 지금 그는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중이다. 

 

“국어, 영어 안 가르친다고 대한민국 금방 안 망해요. 그러나 제대로 된 시민들을 키워내지 않으면 곧 아귀다툼이 벌어질 거예요. 한시라도 빨리 교육부가 책임지고 ‘시민교육’을 정규 교과에 넣어야 해요. 현재 프랑스는 정규 과목으로 ‘시민교육’을 가르치고 졸업시험에도 포함시켰어요. 그래서인지 프랑스 아이들에게 추구하는 가치가 뭐야 물으면 자유요, 정의요, 평등이요, 이런 대답을 한대요. 한국 애들은 아마도 가치가 뭐냐고 되물을 걸요? 교사였던 저희 부부도 아이들에게 모의고사 몇 등급 받았니, 그래 갖고 인서울 하겠니, 이런 거 더 많이 물었었으니까. 이런 현실이 답답하고, 그래서 더더욱 ‘시민교육’에 매달리게 되는 거죠.” 

그에게 마지막으로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의 꿈 그리고 아이들에게 꼭 하나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다. ‘시민교육.’ 인터뷰 말미에 그가 들려주었던 법 조항 하나가 귓전을 맴돌았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 나라’의 교과서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그의 배낭엔 서유럽 국가에서 가르친다는 ‘시민교육’ 교과서가 가득 들어있었다. 프랑스 교과서 하나를 빼 들고 불어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내용을 알 수 있냐고 생각 짧은 질문을 던졌다. 

“프랑스 시민교육 교과서를 읽으려고 방통대에서 10년 동안 불어 공부를 해오는 중이에요. 지금은 ‘시민교육’을 교과화하는 게 워낙 시급하니까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있지만 언젠간 프랑스에 직접 가서 공부하고 싶은 꿈도 있어요.”

 

월간 참여사회 2018년 9월호 (통권 258호)

김원태 회원은 프랑스 시민교육 교과서를 읽기 위해 방통대에서 10년째 불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참여연대 

 

그가 보내주었던 8장의 이력서. 그 긴 목록이 허영심이 아니라 감동으로 다가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국영수에만 목매지 않고 사고하고 비판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대다수 시민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찾고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그의 이력서는 분명한 지향점을 향해 걸어갔던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땀내 가득한 기록이었다. 

 

“호주에서 2020년이 되면 어떤 교과들이 남아 있을까 연구를 했대요. 꼭 남아야 될 과목으로 뽑힌 게 국어, 수학, 과학, 시민 이렇게 네 개예요. 우리나라에도 빨리 ‘시민교육’이라는 교과가 생겨서 아이들이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나도 시민이야, 나도 권리 있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꿈은,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왜요?”, “근데요?”하고 선생님에게 덤비는, 그런 순간이 오는 거예요.”

그가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는, 프랑스 시민교육 교과서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틀어본다. ‘그 나라’의 교과서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있다.

 

‘이 사례를 기반으로 어떻게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가 서술하시오.’

‘위의 표를 보고 총급여와 실수령액의 차이를 계산하시오.’ 

 

언젠가는 이 땅의 아이들도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왔을 때, 난 한 사람의 얼굴을 또렷이 떠올릴 것이다.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녹취. 조연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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