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9월 2016-08-31   1966

[만남] 눈물의 정치철학자 – 김만권 회원

 

눈물의 정치철학자

김만권 회원

 

 

글.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기자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2016년 9월호(통권 238호)

 

정치학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손수 출력해온 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지 압니다 / 우리가 아플 때마다 / 사람들은 선생님이 우리를 낫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 지난 십 년 동안 선생님께선 / 사람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학교에서 / 사람들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셨다고 / 또 선생님의 지식을 위해 돈을 쓰셨다고 / 그렇게 들었습니다 //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저희를 낫게 하실 수 있겠지요 / 저희를 치료하실 수 있나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 중에서) 

 

시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몇몇 사람들은 같이 눈물을 글썽였다. 정치학 강좌에서 이게 무슨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김만권 교수의 강좌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풍경이다. 

왜 이렇게 자주 우세요?
“그렇게 많이는 안 울었는데…. 호르몬 변화가 심한가 봐요. 하하하. 제가 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부분이 있어요.”
호탕하게 웃는 그가 오늘은 우는 일 없이 인터뷰를 마칠 수 있을까? 

 

    거리의 정치철학자

감성 충만한 그는 시인을 꿈꾸던 문학 소년이었다. 
“원래는 작가 지망생이었어요. 대학을 진학할 때도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집에서는 법학을 전공하길 원했어요. 굉장히 비이성적이지만 그 둘의 타협점이 정치외교학과였어요. 큰 누나가 주고 간 잡지에 기형도 시인의 얘기가 실려 있었는데 그분이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더라고요. 여기 나와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게 됐죠.”

막상 들어간 대학에서 정치학 공부가 재미없었던 건 아니지만 시인의 꿈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윤동주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는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인생의 방향을 정치학자로 옮겨 놓은 건, 대학원 지도 교수였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언론 코멘트도 하지 않는 지도 교수의 강직한 모습에 매료되어 ‘공부를 계속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렇게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창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가 한국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활활 타오르던 2008년이었다. 

“그때 마침 박사 논문으로 ‘초일상의 정치’에 대한 걸 쓰고 있었는데, 촛불이 터진 거죠. 뭔가 딱 맞았어요. 미국은 학기가 5월에 끝나거든요. 통장에 남아 있던 돈을 털어서 한국에 들어와서 집회 현장을 계속 따라다녔어요. 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든 여기에 관한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었어요.”

당시 광화문에 매료(?)된 건 김만권 교수만은 아니었다. 중고생, 아이 키우는 엄마, 하이힐 신은 여성 등 그동안 집회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어떤 폭력 사태도 없이 두 달 간 집회가 계속되었다.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에 대한 고마움과 ‘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정당화를 위해 쓴 책이 『참여의 희망』이었다. 

“집회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놓고 논쟁이 많았는데, 당시 상황은 일반적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초일상적인’ 순간이에요. 시민불복종은 초법적 활동이기 때문에 합법·불법 프레임에 갇히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건 단순히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얼마나 자기 구성원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가의 문제잖아요.”

참여연대와 김만권 교수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참여의 희망』을 쓴 이후에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시민불복종을 주제로 강좌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었어요. 근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국에 다녀오느라 방학 중에 다시 들어올 돈이 없었거든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 강의 펑크 낸 거 갚으려고 ‘정의의 계보학’ 강좌를 열겠다고 제안해서 하게 됐죠. 근데 참여연대에서 이렇게 오래 강의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이기보다는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지식인이길 원하는 그는 ‘부르는 곳은 어디든 간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귀국 한 이후에)학교 강의는 생계를 위해 시작한 거였어요. 지금은 강의도 재밌고 좋아하는 활동이 됐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활동은 시민 교육이었죠. 시민교육을 하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저도 많이 배우거든요. 보수단체처럼 생각이 다른 곳에 가서 욕도 먹고, 온갖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얘기하면 답답하진 않겠지만 편향적이 되잖아요.”

수많은 강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국방부 강연이다.
“강의를 듣던 군인들이 그러더군요. 지식인들이 할 일을 똑바로 안하니까 군인들이 대선개입이나 하고 있지 않느냐고. 자신들의 할 일은 정치개입이 아니라 국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여기서 강의한 이후에 저도 느낀 점이 많았어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왜 나는 의도치 않게 공익제보를 한 군인이 걱정되는 걸까. 

 

참여사회 2016년 9월호(통권 238호)참여사회 2016년 9월호(통권 238호)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거리 민주주의’에 대해 쓴 <참여의 희망>(좌)과

오는 9월 발간 될 <호모 저스티스>(우)

 

    정의로운 인간 ‘호모저스티스’

9월에 『호모저스티스』라는 책이 나올 예정이죠? 어떤 책인가요?
“파스칼의 <팡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정의로운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던 우리는 강한 것을 정의로 만들어왔다.’ 정의로운 것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과 역사를 기반으로 우리도 노력하자는 거예요. 근데 싸우고 노력하는 과정이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소크라테스는 죽었고, 공익제보자들도 위험에 처하잖아요. 정의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건 행위자가 아니라 제도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제도 싸움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에요.”

정의를 제도가 구현해야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제도를 개선하는 운동은 개개인들이 해야 하잖아요. 요즘 청년들 같은 경우는 취직 준비하기도 바빠서 사회 활동에 참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거리에 나오는 것만이 참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울시 청년배당 같은 정책에 대한 지지만 표명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 홈페이지 같은데 글을 남길 수도 있고. 그런 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잖아요. 물론 그 정책이 있다는 걸 알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에 조금 관심이 있어야겠죠. 포털이 주는 정보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사회의 중요한 일들을 알려는 노력은 젊은 세대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때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학자금과 졸업장을 맞바꾸는데 서울대, 고대, 연대 나온 애들도 졸업생 50%가 취직을 못하고 있어요. 더구나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할 거예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직업을 잃을 텐데 이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되거든요. 앞으로 10년 내 서구의 대부분 국가들이 기본소득을 실시할 거예요.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상상력이 필요한데 기본소득이 그 중 하나인거죠. 사실 저는 ‘기초자본제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들한테 종자돈을 주는 거예요. 완전히 평등한 출발선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개개인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는 제공해야죠.”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회사 에서 부당한 일을 시켜도 ‘노’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장의 생계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용기가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이 제도들이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요?
“브루스 해커만은 미국에서 1인당 8만 달러(약 8천 만 원)정도의 기초자본을 줄 수 있다고 해요. 연구가 나온 지 꽤 됐으니까 지금은 더 줄 수 있겠죠. 미국은 부유세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고 봐요. 상위 10%에게 66%의 자산이 몰려있고, 상위 10% 중에서도 1%가 그 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1%에게만 부유세를 부과해도 제도를 시행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아요. 제가 지금 모든 대안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제도적 상상력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상 속의 제도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 참여하는 시민과 그 힘을 바탕으로 제도를 구현하는 정당의 결합이 필요하다. 후속으로 쓰고 있는 『민주주의 3.0』은 시민과 정당이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책이다.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 방식을 3.0이라고 해요. 디지털을 통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거죠. 물리적 경계를 그어 놓은 시민정치와 정당정치도 장벽을 허물고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들은 매달 당비 내는 방식으로 활동 안 할 거예요. 이런 구조를 이해해야 돼요. 영국 노동당이 3파운드를 내면 투표할 권리를 줬더니 젊은 친구들이 투표에 참여해서 코빈을 당선시켰어요. 정당이 경계를 허물어주면 외부 효과들이 있다는 거죠. 부작용도 있겠지만 적당히 개방하면 충분히 시민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고 해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강의를 듣는 것처럼 그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중요한 내용을 받아 적었다. 칸트는 말했다. ‘이론 없는 실천은 맹목적이고,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 지식인과 시민은 맹목적이거나 공허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참여사회 2016년 9월호(통권 238호)

    개천에서 온 사람 

올해 2월, 그는 아빠가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라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울었다. 왜 또 우세요? 결국, 오늘도 그는 울었다.
“강의할 때 이런 얘기를 종종했어요. 공부해도 안 바뀔 건데 그래도 해야 된다고. 그런데 꼭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미친 경쟁 속에서 인간성도 버리고 싸워서는 안 되잖아요. 배려하고 양보해도 자기 삶이 무너질까봐 고민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육아와 가사 때문에 20년 넘게 하던 일을 중단한 아내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자신의 아이,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큰 기쁨인 가족을 갖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저는 개천에서 온 사람이거든요. 그들의 슬픔이 느껴져요. 개천에 있는 사람들은 기회가 안 주어지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이 제한적이에요. 근데 게을러서 일을 안 한다고 얘기해요.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강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브레히트의 시에 나오는 노동자가 말했다. “너무 많은 노동과 너무 적은 음식이 / 우리를 약하고 마르게 만듭니다. / 선생님은 처방전을 내주셨지요. / 몸무게를 늘려라 //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갈대에게 젖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 (중략) 아마도 선생님은 자신에게는 / 책임이 없다고 말하시겠죠.” 

그는 노동자에게 말했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힘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개천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그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하고 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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