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1-01   968

독일시민은 지금 공부 중

연간 개설 강좌 1만 4,000개, 수강생 25만 명. 한나 아렌트와 노엄 촘스키의 철학에서부터 곰팡이 퇴치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과 일에 관련된 모든 분야의 강좌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강좌의 질도 우수하다. “그런 곳이 도대체 어디야?”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곳은 뮌헨 시민들의 학교, 뮌헨 시민대학이다. 사실 개설 강좌가 연간 1만 4,000개라고 하면, 강좌 수에서는 이와 비교할 만한 교육기관을 찾기 어려운 정도이다.

뮌헨 시민대학을 처음 접한 사람은 조직의 엄청난 규모와 체계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 때문에 놀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시민대학이 뮌헨 뿐 아니라 독일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규모와 프로그램에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민대학이 독일 전역에서 구 단위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어디에 살든 집에서 가까운 시민대학의 다양한 강좌를 골라 들을 수 있다.

다양하고 질 높은 강좌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시민대학

이 시민대학에서 독일 시민들은 취미생활을 즐기고 교양을 쌓고, 직장인들은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실직자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힌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민대학에서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정치·사회교육이다. 세계화와 유럽통합이 진전되면서 외국인의 비율이 크게 늘고 있는 독일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위해 인종, 언어, 종교,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시민대학에서 제공하는 ‘외국어로서의 독일어’ 강좌는 외국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독일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독일의 시민대학은 지식 습득과 기술 연마라는 ‘교육적 과업’과 함께 사회 통합과 민주적 가치 함양이라는 ‘사회적 과업’의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대학 기업 교회 노조 등 4만 곳에서 시민교육 실시

가히 놀랍다고 할 만한 이러한 시민대학의 운영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하다. 뮌헨 시민대학의 경우, 전체 운영 예산의 70% 가량이 주정부와 지역의 각종 단체의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수강생들이 내는 수강료만으로는 전체 운영비의 일부만 충당할 수 있다. 이러한 재정지원 덕분에 시민대학은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시민교육은 시민대학뿐만 아니라 교회, 노동조합, 상공인연합회, 정당, 기업체, 병원, 대학 등 다양한 기관과 시설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약 4만 개의 기관에서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시민교육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비율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독일에 살고 있는 19세~64세의 성인 가운데 49 %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시민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독일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은 중앙의 여러 행정부처와 다양한 기관, 단체가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독일 정부 산하 평생교육전문위원회의 2002년 중간보고에 따르면, 정부를 포함한 각종 단체들이 1999년 한 해 동안 시민교육에 지원한 예산은 약 320억 유로(약 45조 원)라고 한다. 직업 기술의 습득을 위한 예산은 사기업과 연방정부, 그리고 실업보험으로 운영되는 연방노동원 등이, 그리고 일반적인 교육은 지자체가 주로 부담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그 정치적 무게가 커지면서 예산지원에서 점점 중요한 몫을 맡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한 교육 언제든지 받을 수 있게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시민들의 평생교육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독일 사회가 시민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를 말해주는 것이다. 기관이나 단체에 따라 시민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필요성 또는 가치가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시민교육을 통해 날로 복잡해지고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의 도전 앞에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적응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양성할 수 있다. 이러한 성숙한 시민들이 민주적인 공동체 성장의 토양이 된다.

둘째, 시민교육은 교육기회의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에 대한 보완책이다. 실제로 오늘날 독일에서는 전체 청소년의 11.3%에 이르는 이민자 자녀들이 독일 사회와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하여 소외계층의 대를 이을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통합과도 직결된 문제로서, 시민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필요한 학습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가능한 전문 인력으로 노령자들을 재교육하고, 그들을 위한 특수 평생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기구로서 시민교육제도가 필요하다.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돌파구 찾아야 할 시민교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시민교육은 현재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예산부족을 이유로 시민교육기관에 지원되던 예산의 상당 부분이 삭감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각급 시민교육 기관이 교육 프로그램을 급격하게 줄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뮌헨 시민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체 운영예산의 25%가 삭감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산삭감이 불러오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시민교육기관의 ‘사회적 과업’의 축소 또는 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화와 유럽통합의 진전으로 정치, 사회, 문화의 통합을 위한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대적 필요를 거스르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렇듯 현재 독일의 시민교육정책은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사회복지국가의 원칙이 흔들리면서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던 공공분야의 사업이 하나 둘 씩 위축되거나 스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공공적 기능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독일사회가 경제적 가치 이외의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민교육이 맞고 있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

2006 가을 독일 뮌헨시민대학의 프로그램 예시

1. 정치와 사회

1) 정치와 사회 – 기본적인 질문들

* 민주주의의 비밀 – 고대와 현대 사이의 흔적찾기

* 노동시장에서의 도전: 이웃나라들의 해결방안

*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나? – 유럽국가 사이의 통합정책 비교

2) 국제정치 – 국가와 조직

* 지배와 권력의 문제 – 세계화의 또 다른 측면

* 영화와 정치 – 헐리우드와 워싱턴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 러시아 – 유럽연합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

3) 지역정치와 도시의 역사

* 위기의 도시 – 강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선언

* 월요포럼 – 뮌헨과 나치즘

2. 생태교육센터의 2006 가을 커리큘럼 중 일부 발췌

1) 미래를 위한 정치 – 사회의 미래

* 미래에 대한 질문 –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나누는 토론모임

* 수수께끼 세계화 – 어떻게 세계화, 지역화가 지속가능한 세계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

2) 생활 속의 생태학과 지속가능성

* “생태적인 돈”

3) 계획하기, 짓기, 살기

* 건강은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 잘 자~ – 당신이 알아야할 건강한 수면에 대한 사실

* 생각하기-잠자기-꿈꾸기: 생태적으로 만들기

4) 요리

* 글루텐 없는 성탄절과 색다른 먹을거리

* 오감으로 요리하기 – 냄비와 후라이팬의 자연스러운 마술

3. 열린 아카데미

1) Filmdokumentation: The Nazi Plan, 194 분

: 다큐멘타리 영화 감상과 전문가의 영화소개, 뉘른베르크 나치 전범 재판관련 다큐멘타리

2) 노암 촘스키: “Power and Terror”

노암 촘스키가 2002년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나눈 대화들을 담은 필름 “Power and Terror”를 노암 촘스키의 전기를 엮은 미햐엘 쉬프만이 소개하는 시간

강현선 희망제작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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