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6월 2007-06-01   1291

아이들과 함께 세상 바꾸는 실험 중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언덕배기에 산호세라는 달동네가 하나 있었다. 그 마을에선 아침에 물을 길러 갔다가 진흙에 난 퓨마 발자국을 보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산호세 마을은 퓨마가 다니던 산꼭대기까지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차게 되었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연도 날리고 싶고, 공놀이도 하고 싶다. 하지만 갈 곳은 도서관 뿐. 궁리 끝에 아이들은 시장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로 하고 어른들에게 시청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지만, 아무도 아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아이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늘 만난 배성호 교사(전국역사교사모임 회원)는 산호세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준 사서 선생님을 꼭 닮았다. 그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 산호세 아이들을 닮은 건 물론이다. ‘우리에게는 뛰어놀 곳이 없어요. 놀이터가 필요해요’라는 펼침막을 들고 시청엘 찾아가 시장을 만나고 마침내는 누구나 와서 함께 놀 수 있는 산호세 놀이터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그 아이들처럼, 당산초등학교 아이들도 자전거 전용 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직접 행동에 나섰다. 비록 모의재판이었지만, 교과서에서는 자전거 타기를 정답으로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자전거 통행금지를 결정한 어른들에게 책임-물경 10만 원의 국가 배상-을 물었던 아이들.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냈다. 미술시간에 포스터와 조형물을 만들고 컴퓨터 시간에는 홍보 UCC를 제작했다. 아직 설치는 안 되었지만, 서울시로부터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상태이다.

교사는 지식보다 삶을 보여주는 사람

이처럼 유쾌하게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험을 거듭하는 아이들 곁에 누구나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란 직업 때문에 가능했을 터. 하지만 그는 교사라는 직업과 인연을 맺을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교대에 입학을 하고 나서도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 에 휴학하고 다른 곳을 기웃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어 복학을 결정했지만, 졸업하려고 보니 학점이 모자랐다. 다른 학교들처럼 계절학기가 열린다면 1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학교 측과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의 아이들이 이악하게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매달린 것처럼 그 당시 그도 그랬나보다.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과 인터넷 카페 만들기, ‘2학점 부족할 때’라는 생기발랄한 제목으로 퍼포먼스하기 등 어디서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운동에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다 동원했다. 마침 초등교사 수급에 차질이 생겨 사범대 학생들이 초등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면서 ‘초등전문성’ 이슈가 터지고, 교육과정도 크게 바뀌던 시점이라 그의 사사로운 문제제기는 교대 교육과정 전체로 번졌다. 결국 졸업을 1년 미루기로 결정하고 당시 자율선택과목조차 없었던 교대 교육과정 개선을 위해 진력했다.

그가 맘을 잡고 학교에 돌아와 한 일은 교육과정 개선활동만은 아니었다.

“선생님을 하려고 마음먹고 수업을 들어 보니 수업 내용이 너무 부실했어요. 한겨레 문화센터에 가서 배우기도 하고 <교육사랑방>이란 모임에도 나가고 그랬어요. 현직교사 모임이라 머쓱했는데 품이 넓으신 분들이라 잘 왔다고 받아주셨어요. 참여연대에도 왔었지요. 운동을 하려던 건 아니었고 정의롭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선 고민이 풀리지 않아서 찾아 다녔어요.”

그 와중에 만난 「녹색평론」, 「처음처럼」, 「민들레」 같은 책은 평생의 큰 나침반이 되었다. 그가 이토록 애쓰며 대학시절을 보낸 보람은 충분해 보였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지, 막연했던 교육자상에 대한 윤곽을 얻었으니 말이다.

“교육자는 뒷모습이 중요해요. 지식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으로서 이야기하는 게 가장 큰 교육이지요. 그래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중요하지요.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요.”

학교 밖 세상과 만나기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이 현장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더 듣고 싶었다.

“평화,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가 교과서에 들어왔지만, 그 방법이 강요된 학습이란 점에서는 똑같아요. 방법론이 별로 안 들어왔어요. 자전거도로를 만들자고 할 때 아이들과 새 길을 만드는 것도 소중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무엇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성장할 것인가를 헤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강조하는 편이에요.”

그는 지난 달 5.18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교과서 외에 동화책, EBS e채널, 심지어는 강풀의 만화 ‘26년’까지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고 한다. 또한 그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었던 것처럼 교실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소방대 아저씨가 오기도 하고, 버마의 이주노동자 마웅저 씨도 찾아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나눔의 집, 영국 대사관, 생태공원 등 바깥나들이도 잦다.

‘만남’과 ‘친구’로 열어가는 삶

그를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은 어떨까.

“학교에서 큰 갈등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지요. 저에게는 편의를 다 봐줘요. 저는 배려의 배제라고 보는데, 쟤는 다른 애니까 하고 다른 사람한테 일을 시키죠. 그 불만들이 저에게 돌아오고 있어요.”

그가 이런 대접 아닌 대접을 받게 된 배경은 아마 부임 직후 불문율처럼 되어 있던 ‘남교사회’ 가입을 거부한 점이나, 노무현 대통령 취임 특집프로그램 <100분토론>에 나가 아이들의 궁금증을 대신해서 ‘대통령이 만약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이라크 참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겠느냐’는 질문을 불손하게(?) 해댔기 때문이다. ‘은근히’라는 그의 별명의 위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풋뜸이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유별나다고 학부모나 학교 측으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대접을 감내하는 이유는 그가 “좋은 건 좋은 건데, 아닌 건 아닌 거”라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루뭉술 좋은 게 좋은 것이기만 하다면, 그래서 아닌 것도 좋은 것이라면 그가 최근에 겪었다는 서글픈 일화는 계속되고 말 것이다.

“한 학생이 찾아와서 ‘저 회장하고 싶어서 집에 얘기했더니 별로 안 좋아하세요. 그거 돈 얼마 들어요?’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돈 하나도 안 들게 책임질 테니, 돈 때문에 못하겠다는 생각은 말라고 했어요.”

그 아이는 결국 입후보하지 않았다. “걔는 될 아이였는데…….”라고 안타까워하던 그 순간, 그는 고등학교 때 ‘반장해볼까’라는 가벼운 말 한마디에 얼굴이 굳어졌던 어머니를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교사가 되자, “학창시절에 부모로서 반장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우셨다고 한다. 아직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마음껏 전교회장이 되지 못하다니, 세상은 참 변하지도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닌 교사로 약간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면이 있지만, 행복해요. 그런 계기들이 교단에 섰을 때, 아이들을 만났을 때 좋은 자극이 되었고, 명문대 법대 가서 출세하는 삶을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고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도 있다는 걸 찾은 건데. 비록 에둘러서 온 길이지만 참 좋아요. 그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 길 인도해주는 사람들, 친구로서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이어져나가는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는 모든 것을 만남의 덕분으로 돌렸다.

“제 인생의 키워드는 만남과 친구에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고. 친구가 되면 더욱 좋지요.”

참교육 교과서 만들러 가는 여행길

그는 계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한다. 지금 그가 신발 끈을 동여매고 떠나려는 곳은 바로 ‘교과서’이다. 우리 교과서 서술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촌촌이 분석하고 외국 것과도 비교해보며 바른 것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가 이런 여행을 떠나려는 것은 ‘교사는 실천가이면서 연구자’라는 소신 때문인 듯하다.

“시민교육에 대해 공부하면서 프랑스 교과서를 보고 충격 받았어요. 파업이란 주제를 다루는데, 한 쪽은 파업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들었고 다른 쪽은 파업 피해 사례를 들어서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하게 만들더라고요. 그 교과서를 보고 혁명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명해주시던 분은 이 교과서는 약간 우파적 시각이라고 하더라고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지요. 단순히 외국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닫혀 있는지 깨달았어요.”

이제 그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너머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가 만든 교과서에는 그가 꿈꾸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어떻게 담겨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어떤 만남이 있을지, 누구와 친구가 될지 궁금하다. 장담할 것은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지금껏 그가 ‘유쾌하게 즐기면서’ ‘더디더라도 찬찬히, 꾸준하게’ 걸어 온 것처럼 앞길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이다. 부디 친구들로 북적대는 여정이 되기를.

-후기-

그는 서울교대 출신이다. 그리고 남자이다. 이른바 초등교단에서는 진골이라 할 만하다. 조금만 애쓰면 빠른 승진이 보장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그의 처지는 승진은커녕 교사로서의 자리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주변 사람들이 활동을 만류하는 정도이다. 그 스스로도 자기 검열이 심해진다고 한다. 교육적인 고민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런 내용을 교육해도 될까, 안 될까를 재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인권은 별난 이슈가 아니다. 북한 인권에 이르러서는 주류의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인권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 모든 교과서를 분석해 자신의 인권 수업이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행복은 불편한 시선들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인터뷰 내내 그를 바라보는 맘이 편치만은 않았다. 원칙을 지키면 고립되고 마는 현실이 역전되길 고대한다. 거꾸로 된 것들 모두 제 자리로.

※베네수엘라 산호세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쿠루사 글, 모니카 도페르트 그림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를 읽어 보세요.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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