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1월 2002-10-30   601

국정수행능력과 개혁의지도 검증해야 –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가 남긴 것

국무총리 임명이 두 차례나 국회 인준과정에서 좌절되었고, 청와대가 고심 끝에 지명한 세 번째 총리지명자가 가까스로 국회인준을 통과하였다.

세 차례의 총리 인사청문회는 인사청문회법의 제도적 한계와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허술함, 청문위원들의 자질과 준비 부족을 드러냈으며 정략적인 진행 등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후보자들이 연거푸 도덕성에서 낙제점을 받아 총리인준이 부결됨으로써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과 우려를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도덕성의 기준을 높이고, 공직자 선출에 대한 국민적 참여와 승인 과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고위공직자 임명은 지체 높은 분들끼리의 이야기이거나 너무도 먼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들렸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법 도입으로 세 차례의 총리 인사청문회가 TV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온 국민이 안방에 앉아 공직 후보자 검증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과정에서 총리감으로 부적절한 태도를 보이거나 제기된 의혹이 깨끗하게 해명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인준 부결 여론이 조성되어 국회 표결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승인하는’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처음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상·장대환·김석수 총리 지명자 인사청문회

세 명의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대해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세 지명자는 하나같이 돈과 명예를 지니고 있으면서 크고 작은 실정법을 위반해 특권층의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더구나 이에 대해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 결과 두 후보가 도덕성과 신뢰성에서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아 헌정 사상 초유의 ‘연이은 총리 부결’이 현실로 나타났다.

물론 인사청문회는 후보자가 해당 공직 수행에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지, 공직자로서 도덕성은 신뢰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검증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장상, 장대환 총리 지명자의 인사청문회는 국정수행능력보다는 자질과 도덕성 검증에 치우쳐 종합적인 인사평가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한계가 남는다. 그러나 두 번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 특권층의 도덕 불감증이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고, 이에 대해 엄하게 평가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 번의 인사청문회 중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마지막 김석수 총리의 인사청문회이다. 시작부터 이미 청문회의 검증기준이 무너져 있었고, 청문위원들에게 청문회 결과는 각 당에 미칠 정치적 영향으로만 해석되고 있었다. 청문위원들이 당리당략에 휘둘리고 있으니 국민을 대표하는 엄격한 평가자로서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청문회가 때와 상황, 안팎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미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것이다. 청문회는 세 번이든, 열 번이든, 지금이든 나중이든 흔들림 없는 원칙과 기준으로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준비된 공직자가 태어나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곡절 많았던 세 번의 인사청문회 중 마지막 인사청문회를 이중잣대와 정략적 고려의 산물로 평가하였다.

인사청문회가 제 기능하려면 제도개선이 급선무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국정운영에 있어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갖는 사람을 선출하는 일인 만큼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어도 국회에서 이를 철저히 검증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신뢰를 높이라는 뜻에서 국회 동의 절차를 두었을 것이다. 청문위원들은 지명된 후보자가 적격하지 않으면, 두 번이 아니라 세 번도 부결시킬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 부담과 정략적 고려 앞에서 코방귀를 뀔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청문회는 이러한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청문회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은 청문위원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지만 청문회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크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첫째, 인사청문회 기간이 턱없이 짧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은 청문회 전 과정을 15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 중 청문회가 열리는 사흘을 제외하면 인사검증을 위한 준비기간은 자료요청 기간을 포함해 겨우 열흘이 넘는다. 여기에 의회에 대해서는 조사인력의 지원조차 없다. 청문회 제도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이 공직후보를 지명하기 이전에 자체 정보기관을 통해 사전검증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지명된 이후에는 상원의 조사, 청문, 인준에 소요되는 기간을 법률적으로 명기해 놓지 않아 충분한 검증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도 15일이라는 기간 제한을 폐지하고,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도록 청문회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둘째, 관련기관이 자료제출에 응하도록 하는 강제규정과 응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재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장상, 장대환 지명자의 청문회 과정에서 청문위원들은 총리실이나 정부기관이 자료제출 시한을 넘기거나 거부하여 관련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후보에 대한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행정부 스스로 국회에 제공하도록 법에 규정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행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행정부의 잘못으로 후보검증에 지장이 있었다면 이는 인사청문회의 취지와 의미를 정부가 훼손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회의원들은 불평만 하지 말고, 관련법 개정에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3일 이내로 제한한 청문회 기간을 늘려 청문회 도중 돌발한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지명자의 청문회 과정을 돌이켜보면 청문회 도중 새롭게 불거진 문제에 대해 그 진위를 가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매번 의혹만 남긴 채 흐지부지 넘어갔다. 또 청문위원들이 청문회 중 지명자에게 추가자료제출을 요구해도 시간이 부족한 탓에 자료 제출이 원활하지 못했다. 단 3일로 고정된 청문회 기간이 후보자의 적격성을 깊이 있게 검증하기에 너무 짧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청문회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자질과 도덕성에 의혹이 제기되면 청문회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청문회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청문회 과정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도 철저히 검증하여야 한다.

청문대상 범위를 넓히고, 강화되어야

인사청문회 제도는 고위공직자의 자질을 공개적으로 검증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또 청문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사회현안과 국정운영의 비전에 대해 국민 모두가 정보를 얻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시민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덧붙여 까다로운 청문회는 흠 있는 후보를 사전에 걸러내 문제가 있는 인사는 애초에 공직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거름장치가 될 것이다.

참여연대는 오래 전부터 인사청문 대상을 국무위원, 검찰총장, 국정원장 등 핵심적인 권력기구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범위까지 인사청문회가 확대되면 공직 희망자들은 스스로 국정수행 능력을 준비할 수밖에 없고,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 애쓸 것이며, 높아진 도덕적 기준에 걸맞게 청렴한 사생활에 힘쓸 것이다.

앞으로 인사청문회가 도덕성만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정수행능력과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국정운영자세,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자리로 한 차원 승격되기를 바란다.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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