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836

남귤북지(南橘北枳)의 교훈

지난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독일의 시민사회〉에서는 독일 시민사회의 정책과 제도, 일상의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선진국의 ‘좋다는’ 정책을 본 따 ‘우리’ 것으로 제도화하기는 했으나 현실에서의 차이와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따라서 본지에서는 한국사회구조의 문제점과 한계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교육에 대한 과열된 열의와 형편없는 교육제도가 병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살다가, 독일에 가서 생활하는 동안 가장 부러웠던 것은 무상교육제도였다. 중등교육뿐만 아니라 대학 및 대학원 교육까지 무료여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등록금이 없어 포기하는 사례는 적어도 없었다. 그러나 독일에도 최근 주별로 1학기에 40~50만 원의 대학등록수수료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교육평등’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부러운 독일의 교육정책

그러나 이와 같은 교육기회의 평등보다 더 부러웠던 것은 학교 안팎의 청소년 보호정책이었다. 특히 각 학교에는 전문상담교사가 있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폭력 등의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체계적인 교육상담을 실시하는 것이다. 단순히 가해학생을 징계하고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학교(담당교사와 상담교사), 가정(부모를 비롯한 가족구성원), 사회(의사, 심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를 적절히 조직하여 피해를 입은 학생과 문제행동을 한 학생에게는 심리 정서교육, 양쪽 부모에게도 중장기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나아가 부모의 사망, 이혼, 기타 이유로 가족생활이 학생의 전인격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될 경우, 학교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청소년청이 학생에 대한 물적, 정신적 지원을 시작한다. 달리 말해, 아동 청소년에 대해 국가는 일반적인 인격권의 차원에서 기본적인 복지와 교육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독일 사회가 저지른 지난 세기의 야만적 폭력에 대한 반성으로 국가차원에서 일반 시민들에 대한 (정치)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민교육이 국가제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일반시민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집 근처의 유치원에서 ‘반파시즘을 위한 교양강좌’를 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참석했던 적이 있다. 작은 차이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일상에서의 차별과 배제에서부터 역사, 사회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6개월 간 월 1회 저녁 시간에,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와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강좌는 어떤 시민으로부터 반파시즘 교육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과 함께 유산을 기증받은 노동자복지재단이 연 것이었다.

한국의 청소년 보호제도와 그 현실

지난 십여 년간 ‘무너진 학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한국의 교육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고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적 변화들이 있었다. 학교에 전담상담교사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독일 청소년청에 비견되는 국가청소년위원회, 그리고 하자센터 등의 대안시설들이 만들어져서 학교 바깥의 청소년들에게도 관심을 쏟고 있다. 어쩌면 정치 민주화 이후 많은 관계자들이 세계 각 나라의 교육제도를 탐방하여 좋은 제도를 거의 다 들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제도와 현장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면, 지난 8월 말, 지인의 아들이 개학을 앞두고 학교 가기를 싫어해 이리저리 이야기를 시켜보니 학기 초부터 같은 반 친구로부터 폭행과 금품갈취를 당하고 있었다. 담임교사를 만나 상황을 설명하자 즉시 가해 학생 부모와의 만남이 주선되었다. 담임교사와 양쪽 부모들의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면서 단순히 한 학생의 학교 내 폭력으로만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 담임교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급 내의 거의 모든 학생이 그 학생의 문제를 지적하였다는 점이다. 교사 스스로 보여주는 설문 답안에 의하면 대부분의 급우들은 그 문제행동의 희생자로 지인의 아들을 지목하였다. 그 교사는 이미 지인의 아들이 학급 내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그런 사실이 피해 학생에 의해 알려지고 그 부모가 찾아오자 담임은 가해학생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전학을 종용하였다. 해당 학생들에 대한 교육 상담을 생각하기도 전에 징계위원회에 의한 퇴학조치를 언급하면서 문제가 되는 학생을 전학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문제를 이처럼 개인적인 차원에서 ‘살짝’ 처리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지인은 담임교사에게 이 일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학교 교칙에 의하면 이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학생부장교사와 담임교사, 교장, 교감이 참여하는 징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문제를 심의하고 처리하도록 되어있다. 학생부는 원칙적으로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지도와 상담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에서 실제 했던 일은 두 학생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아니라 ‘문제’를 기정사실화 하고 징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지인이 상대방 부모 등을 통해 알게 된 또다른 사실은 폭력을 휘둘렀던 학생 스스로가 이와 같은 폭력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학생은 다른 지역에 살다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상대적으로 대학진학에 유리한 이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친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학생들 세계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문외한이 보기에도 ‘폭력’ 행위가 가해학생이 처해 있는 학교와 학교바깥 생활의 어려움과 관련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도, 학교가 한 일은 가해학생을 되도록 빨리 다른 곳으로 격리시키려는 것뿐이었다. 피해를 당한 학생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영향에 대한 치유는 부모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졌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전문상담제도는 학교 홈페이지에 상담코너개설이나 1주일에 1~2회 학교를 찾는 상담교사의 상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적인 제도화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어떤 제도나 기술도 그 자체로 수입될 수 없다. 대안사회를 위한 모색과 노력 또한 제도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새로운 제도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 바로 나와 우리들이다. 다른 사회의 탱자를 가져다가도 우리 특유의 귤을 만들 수 있는 안목과 가열찬 노력을 기대해본다.

이희영성공회대학교 연구(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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