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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01월
  • 200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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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감시 지속, 풀뿌리 시민운동 조직해야


박빙의 승부는 끝났다.

유권자들은 ‘부패정권 심판론’과 ‘낡은 정치 청산론’의 대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은 이번 선거는 3김 중심의 정치구도가 깨진 상황에서 세대 계급·계층·지역 간에 펼쳐진 대결로 그 정치적 의미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이 약진하면서 기성정치판에 진보정당이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시민운동은 과연무엇을 했는가”라는 자성적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02년은 초반부터 후끈 달아오른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를 시작으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열풍, 지방선거, 8? 재보선, 김대업과 병풍, 후보단일화, 도청, 북핵,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 등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이변이 많았다. 그만큼 시민운동진영도 바쁜 한 해였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상임공동대표 이남주)는 지난해 초 대선사업 기획안을 통해 2002년을 ‘정책중심선거 원년의 해’로 선포하면서 16대 대선 시기 시민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후보자 정책검증, 반부패 입법운동, 유권자참여운동이 중요한 세 축.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둔 정책캠페인은 후보자간 정책차별화를 통해 유권자 스스로 적합한 대통령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특히 2002년 대선이 지역주의와 돈 선거로 흐르지 않고,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정책이 명실상부하게 개혁과 수구로 갈린다면, 정책적 판단이 더 중요해지고 여기에서 시민운동의 역할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연대회의는 전국 401개 단체가 참가하는 2002대선유권자연대를 출범시켜 정책캠페인을 벌였다. 이와 함께 낡은 정치 청산을 위해 반부패 입법운동(부패방지법 특별검사법 검찰청법 정치자금법 돈세탁방지법 선거법 등), 선거자금감시운동을 비롯 2030네트워크를 통한 유권자투표참여운동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시민운동 내부에서는 일상적인 캠페인말고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처럼 선거에 직접적이면서 폭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왔다. 시민단체 회원들이나 일반 시민들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사업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회원들 사이에서 도대체 지금 시민운동은 뭘 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많이 나왔다. 대선 관련 활동이 무기력하다는 이야기였다. 후보들의 정책 검증은 언론이 맡아도 충분하니, 시민운동은 유권자행동을 조직해 사회 개혁과 진보의 전망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시민운동이 ‘정치적 중립’을 고집하며 선거와 무관한 것처럼 행동하는 게 과연 옳은지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거대 정치권력 교체기에 시민운동 개입여지 있나

일반 시민들이 제기한 문제를 시민운동진영이 애초부터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1년 후반에 작성된 한 시민단체의 내부 논의자료를 보면 대선 시기의 시민운동은 1차적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 특히 선거가 ‘개혁 대 수구’ 구도로 갈 경우 시민운동진영은 그동안 풀지 못했던 개혁정책들을 시의적절하게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정선거감시운동이나 정책캠페인 등 후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업은 실효성이 없으므로 차기 대통령 선택 기준에 대해 시민운동의 입장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전체 시민운동진영으로 확산되지 못했고, 연대회의 내부 판단에 따라 정책캠페인 등에 집중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시 시민운동이 처한 조건에 대한 판단은 이렇다.

“시민운동은 총선연대와 같이 대선 국면을 주동하기 어렵다. 대선은 총선과 달리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정치세력간 전면전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지역, 계급, 정치세력간 첨예한 대립으로 역대 대선 중 가장 치열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시민운동은 정세에 따라 적시에 개혁이슈를 제기하는 방향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김동춘 참여사회연구소장(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은 이번 대선유권자연대의 활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대선연대의 활동이 미약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됐다. 출발부터 한계를 갖고 시작한 운동이다. 총선과 달리 거대한 정치권력 교체시기에 시민운동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개정 등 반부패 입법운동을 더 실효성 있게 펼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신문사와 시민단체의 후보정책검증도 언론이 그 영향력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고, 다음 총선에 시민운동이 낙선운동을 펼치더라도 영향력은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진영은 과거 총선연대처럼 대선에서 후보문제를 거론하며 선거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홍위병론’ 등 낙선운동 이후 정치권에서 불어온 맹렬한 후폭풍은 시민운동 전반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기에 같은 방식의 운동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 을 고수하며 고유의 역할인 권력감시운동의 하나로 ‘돈선거’ 방지를 위한 선거자금감시운동을 펼쳤다. 국민경선 당시에는 이 운동이 선거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국민경선에서 조직적인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노사모 활동과 비교할 때 선거자금감시운동의 활동력과 시민에게 주는 감동은 점차 둔화됐다. 하승창 대선연대 사무처장(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의 말이다.

“시민운동은 언제나 정당정치 구조로부터 독립된 운동을 펼쳤다. 이번 대선에서도 권력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한 것 아닌가. 100대 개혁과제를 선정해 후보자에게 이를 수용할 의지가 있는지 물었고, 이에 따라 후보자를 개혁과 보수의 관점에서 판단했다. 문제는 우리가 100대 개혁과제로 모아낸 정책들을 관철할 내적 힘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총선연대는 조직화된 힘이라기보다 여론이었다는 말처럼 시민운동이 여전히 여론과 언론에 기대어 활동해온 한계를 이번에 여지없이 드러낸 게 아니냐는 반성을 해본다.”

이번 대선에서 시민운동진영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노사모’ 현상이다. 노사모의 운동방식과 ‘붉은 악마’의 활동에 대해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자발적 의지에 따라 국민경선부터 결전의 순간까지 일을 접고서 현장을 누비고 다닌 그들의 움직임은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으로 그 의미를 곱씹어볼 만한 것이었다. 특히 그들의 다수가 87년 6월항쟁을 겪은 30~40대로 노무현 후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개혁 염원을 표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한 단체가 7~8년 열심히 활동해도 회원 1만 명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노사모는 자발적 참여로 몇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돈과 시간을 내 직접 참여하는 3만 명의 힘을 모았다. 정치와 시민운동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시민운동이 놓치지 말아야 할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준정당적 기능하던 종합형 시민운동의 딜레마

2002년 대선이 예측불허의 접전 양상을 보일 때 시민운동가들 사이에는 두 가지 관측이 흘러나왔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경우 시민운동은 뚜렷한 개혁적 색채를 가지고 강도 높은 사회개혁운동을 펼치게 될 것이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 정책정당의 출현과 진보정당의 활성화로 그동안 준정당적 기능을 해오던 시민운동의 정체성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민영 대선연대 정책실장은 “개혁적국민정당은 얼마 전 대선연대가 내놓은 100대 개혁과제를 자신들의 정강정책으로 써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당비를 내는 당원은 확보했으나 정책 내용이 빈약한 개혁정당이 시민운동의 정책을 자신들의 활동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놓고 시민운동은 앞으로 어떤 전망을 가져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시민운동 내부에서는 당분간 시민운동이 큰 변화를 겪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5년 안에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히 펼쳐온 입법활동 상당 부분이 민주노동당이나 개혁정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반면 시민운동은 감시단체 혹은 미국 시민운동 방식의 로비단체로 그 역할이 줄어들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진영에서 개혁입법 활동 등을 하던 전문가들이 진보정당이나 정책정당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높고, 정당과 시민단체를 오가며 활동하는 전문가들도 늘어날 것이다. 시민단체와 정당 어디서 활동하든 개혁과 진보를 위해 일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자유로운 흐름도 나타날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 이후 민주당 재편이 시작되고, 밑으로부터 만들어진 정당이 정착되면 시민운동의 위상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명실상부하게 시민교육을 통한 풀뿌리조직으로 가든지, 아니면 정책정당과 시민단체의 역할분화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 변화의 방향에 대해 준정당적 기능을 해오던 시민운동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체성의 재확립 요구가 너무 조급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향후 5년 이내에 시민운동이 새롭게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만큼 한국 정당정치의 뿌리가 깊지 않다”며 “시민운동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성급히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시민운동의 고유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시민운동은 앞으로도 권력감시운동을 계속하면서 모니터링 기능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승창 대선연대 사무처장의 말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전문가에 의존하는 90년대식 운동은 앞으로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시민운동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미국 시민단체 커먼코즈는 회원들이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개혁입법을 위한 로비를 한다. 퍼블릭 시티즌도 마찬가지다. 작은 규모라도 권력감시자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다면 매우 유의미한 집단으로 남게 될 것이다. 차기정부가 개혁적이라도 권력감시와 사회시스템 견제 감시는 여전히 유효한 운동 수단이다. 정부와 정당, 시민운동은 엄연히 역할의 차이가 있고 이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문제 제기도 활발하고 시민운동진영의 독자정당 건설, 정당과의 정책연합, 선거연합, 후보지지 등 다양한 전략도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시민운동의 정체성과 진로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오히려 뜨거워질 전망이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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