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882

세금, 감시한 만큼 덜 낸다

세금, 감시한 만큼 덜 낸다

경제적 고통 속에서 어렵게 납부된 국민의 혈세가 도처에서 낭비되고 있다. 국방부가 무기 구입의 원가계산을 잘못하여 수백억 원을 낭비하는가 하면, 소위 부르셀라 예방백신 개발을 의뢰받은 대학교수가 기만적인 허위 연구개발을 하여 담당교수와 관련 공무원이 구속되고 불량 제조된 백신을 접종한 수만 마리의 소가 도살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쓰레기 소각장 건설시 소각 용량을 과다 책정하여 불필요한 예산이 과다 투입되거나, 40억 원짜리 버스안내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은 채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세금낭비, 위험수위 넘었다

정부예산의 낭비는 공무원들의 무능력, 직무유기, 유착비리에 의해 발생한다. 또 한편 잦은 정책변경, 중복투자, 정치논리에 의한 예산편성과 같이 정책결정체제의 잘못된 작동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도적 결함 때문에 예산낭비가 초래되기도 한다.

이렇게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예산낭비사례를 제보하는 시민들은 제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와 울분을 동시에 전해온다. 전화통을 붙잡고 울분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을 볼 때 이제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게 된다.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정부예산은 주인 없는 돈’이라고 인식하는데 있다. 정부예산이 자기 돈이라고 인식한다면 예산낭비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정부예산은 임자 없는 돈이라고 인식한 결과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쓰는 현상이 나타나며, 또한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정부예산의 주인은 곧 납세자인 국민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곧 납세자 주권이며, 재정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징세자의 권리는 있었으나 납세자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1997년에 마련된 납세자권리헌장도 납세자의 성실성 추정, 적법하고 신속하게 구제받을 권리 등 징세 대상으로서의 권리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예산의 주인인 납세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과세와 공공서비스 수혜의 대상이라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다.

납세자는 징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세금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마땅히 행사해야 한다. 납세자인 국민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감시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이제 재정권의 주체인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예산의 파수꾼으로서 정부예산의 낭비를 감시해야 한다. 예산낭비를 방지하는 데에 필요하다면 예산제도의 개혁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납세자 운동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납세자의 권리를 찾는 일이다. 그동안 예산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납세자들이 이제는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외국의 납세자운동

납세자로서 시민의 권리의식이 성숙한 선진국에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결성되어 납세자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재정주권이 납세자인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의 재정민주주의가 잘 확립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국의 납세자운동 단체의 활동을 보면 우리나라 납세자운동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납세자운동을 펼치고 있는 외국의 시민단체를 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납세자의 전반적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 예산낭비를 감시하기 위한 단체, 조세제도 개혁을 목표로 하는 단체이다.

납세자의 전반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로는 미국의 ‘전국 납세자 연합(National Taxpayers Union: NTU)’과 ‘캐나다 납세자 연맹(Canadian Tax- payers Federation: CTF)’ 등이 있다. NTU는 1969년에 창설되어 현재 50개 주에 걸쳐 30만 이상의 회원을 가진 가장 큰 풀뿌리 납세자 조직이다. CTF는 1990년에 창립되었으며, 전국적으로 7,000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전국 조직이다.

예산낭비를 감시하기 위한 시민단체로는 ‘예산낭비를 감시하기 위한 시민연대(Citizens Against Government Waste: CAGW)’, ‘공익을 위한 납세자 연대(Taxpayers for Common Sense: TCS)’ 등이 있다. CAGW는 1984년에 창설되어 연방정부에서의 낭비, 잘못된 행정, 비효율에 대해 미국인을 교육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현재 60만 회원을 갖고 있다. TCS는 1995년에 창설되어 연구와 시민교육을 통해서 낭비적인 정부지출, 보조금, 조세 회피를 축소하기 위해 헌신하며, 균형예산과 공익적 조세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조세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단체에는 ‘조세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Citizens for Tax Justice: CTJ)’, ‘조세개혁을 위한 미국인 연대(Americans for Tax Reform: ATR)’, ‘대안적 조세제도를 위한 시민연대(Citizens For An Alternative Tax System: CATS)’, ‘공정 과세를 위한 미국인 연대(Americans for Fair Taxation : AFT)’ 등이 있다. CTJ는 1979년에 설립되어 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특정 이익 로비스트들에 대항하며, 국민들은 부담 능력(Ability to pay)에 따라 조세부담을 해야 한다는 사상에 근거하여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공정한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ATR, CATS, AFT 등은 소득세와 국세청(IRS)을 폐지하고 이를 소매판매세(National Retail Sales Tax)와 같은 단일세(Flat tax)로 대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그런데 단일세 도입과 같은 이들 단체의 주장은 일부 진보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미국 납세자 당(the U.S. Taxpayers Party)’과 같이 납세자의 이익을 위해 정당을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이들 납세자 단체들은 납세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출판물, 매스컴 등을 이용한 폭로와 여론 조성 및 이슈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TV, 라디오, 청문회 등에 출연하여 홍보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또는 직접적인 로비활동을 한다. 조세 인상 및 낭비적인 정부의 사업 또는 정책을 취소시키고, 이를 위해 캠페인, 시위 등을 한다. 또는 납세자의 권익을 위한 정책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중심의 연구활동을 수행하며, 제도 개혁을 위한 청원 및 입법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의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납세자 관련 입법활동과 예산심의활동을 평가한다.

예산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자

외국의 납세자운동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납세자운동의 방향을 시사받을 수 있다. 먼저 조세개혁운동과 예산감시운동을 두고 볼 때 우리나라는 예산감시운동에 더 역점을 두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것은 조세개혁운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조세제도의 개혁에 대해서는 그동안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주장된 바 있는 데 반해, 예산감시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이다. 또한 예산낭비에 대해 무감각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공무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문제가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세제도 개혁이 납세자운동에 포함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납세자운동에 참여하는 전문가 그룹과 시민 그룹을 나누어 볼 때, 전문가 그룹은 제도개혁 등의 정책대안 제시와 기획 감시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시민들은 생활주변에서 예산낭비 현장을 찾아내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역할 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예산감시운동은 ‘시민 있는 시민운동’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으므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낭비를 감시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획득이다. 이를 위해 정보공개 청구와 감사청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내부고발자가 보호되고 예산낭비 공무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산부정방지법을 제정하고, 미국의 퀴탬(Qui Tam)펀드와 같은 유인제도의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정부예산의 주인으로서 국민의 세금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시민 감시의 눈이야말로 올바른 예산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곧 재정주권이 납세자인 시민에게 있다는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토대이다.

윤영진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 위원장·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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