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한마당-때리지만 않는다고 민주시민교육?

교사 볼모로 인기에만 영합, 교육 개혁은 학교문화부터 바꿔야

교육개혁위원회(이하 교개위)는 최근 학교현장에서의 체벌 금지와 학생에 대한 경어 사용 의무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민주시민교육안’을 내놓았다. 이 안에는 일반인에게는 좀 생소한 ‘옴부즈맨’제도를 도입해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체벌이나 폭언, 인격 모독 행위 등을 감시하고, ‘학생법원’ 등을 두어 해당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기간 군부통치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만연돼 있다. 이러한 정치문화적 배경과 성장제일주의 이데올로기에 사회 각 부분과 부문이 예속됐고, 교육은 경제논리와 정권의 이익에 더욱 종속됐다. 근대교육이 성립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행정은 주로 학교에 대한 지시와 전달로 일관해 왔으며,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발전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과밀학급에 거대 학교,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 체제와 운영, 교사의 사기 저하 등등. 이러한 조건은 정부의 교육개혁이 학교현장에서 좌초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체벌 금지, 명령과 캠페인만으론 안 돼

교사들이 체벌 금지와 경어 사용 문제를 논리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 반발하고 냉소하는 현실은, 단순히 교사집단의 피해의식으로 치부될 일만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질화된 관료주의적 병폐와 교육의 비민주성, 저조한 재정투자, 열악한 교육환경, 입시제도 등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물론 학교에서 학생에 대한 심한 체벌과 인격 모독이 간혹 일어나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학생 인권에 대해서는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당사자인 학생 자신도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해당교사 자신의 양식과 자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여러 사회문화적 배경으로부터 기인하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는 ‘학교폭력’이라는 괴물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면서 ‘학교담당 검사제’에 ‘청소년 야간통행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놓고 떠들썩했고, ‘학교폭력예방재단’까지 생겨 온통 학교를 벌집쑤시듯 만들더니 이제는 체벌로 학교와 교사가 사회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체벌 문제는 단순히 ‘체벌하지 말라’는 명령이나 ‘체벌하지 맙시다’라는 캠페인으로 해결될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사회와 학교의 기본적 인식과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학생들도 올바른 권리의식과 태도를 배우고, 학교 제도가 이러한 요구들을 수용하며, 학생과 교사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체벌 문제도 결국 교사들의 교육관과 교육 방식에서 비롯되므로 집단적으로 교육관이 점검되고 교육 방식 등이 토론될 수 있는 제도적 틀과 문화가 필요하다. 일본처럼 학년회의나 부서회의의 자율적 운영을 통해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 물론 교사들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고, 잡무도 줄이며, 수업시간도 줄여주는 등 교사의 사기진작을 위한 배려 또한 하나의 필요충분 조건이 된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자칫 학생들이나 학부모 집단의 이해관계와 맞물린 정책 입안이거나 구체적 현실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는 책상물림으로 된다면 교육 주체 집단간의 반목과 갈등만을 심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교개위의 개혁안들에 대해, 단결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힘 없는 교사 집단을 볼모로 대다수 유권자인 학부모 집단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정부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체벌에 대한 찬반 양론

한편 학생 체벌 문제뿐만 아니라 교사와 관련된 ‘사건’이 법정으로 비화되고 사회문제화될 때마다 모든 교사들이 표적이 돼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 일쑤였다. 사회의 폭력적 문화와 인권 경시, 가족주의와 이기주의, 비교육적 학교환경, 교육의 본래적 목표 상실…. 이러한 사회문화적·교육적 배경 속에서 모든 책임을 교육 또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지게 하려는 어리석음을 계속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심한 체벌로 인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법부의 판단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체벌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교육학적으로도 “어떠한 형태의 체벌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와 “약간의 체벌은 오히려 교육적이다”라는 견해가 대립돼 왔다.

약간의 체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의 전통적 교육의 상징이었던 ‘회초리’가 개인의 교육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기억과 이러한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이며 이기적인 아동들에게 체벌을 통하지 않고는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아울러 지금처럼 거대 학교, 과밀학급인 상황에서 수업이나 생활지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체벌 없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다는 학교 현실도 그 증거로 제시한다.

반면 체벌불가론은 아동의 인격형성에 ‘매’라는 물리적 충격보다는 ‘대화와 설득’을 통한 교화가 더 바람직함을 주장한다. 즉 대화와 타협이라는 이성적 수단이어야지 물리적 폭력이라는 비이성적 수단은 폭력을 사회적으로 합리화시키고 확산시키는 데 뿌리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이런 주장은 서구에서의 일반적인 체벌에 대한 이론이며 논리적 설득력도 있다. 나 역시 우리 사회가 이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현실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데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적 획일주의의 잔재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이 필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체벌 문제는 ‘서로의 입장에 대한 존중 속에서 이론적으로 더 연구하고 검토돼야 할 현실의 과제’라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론적 근거를 만들고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이 역시 본래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올바른 방식은 아닐 것이다.

체벌이 더 이상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체벌에 대한 크게 상반되는 입장과 태도를 충분히 이해하려는 자세와 시간적 여유를 갖고 토론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을 해야 한다. 단기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들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지양하고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다져야 한다. 즉 우리 사회에 인권 존중의 풍토와 교육을 통한 개인의 진정한 인격 성장을 가져오고,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진지한 고민과 반성을 유도하며, 교육을 포함한 사회 각 분야의 전문적인 연구와 실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과 현실 그리고 보편적 이론이 어우러지면서 교사, 학부모, 학생은 물론 사회운동가, 학자, 정책 담당자, 언론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실천할 때, 이 과제는 조금씩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이다. 이 한 번의 경험은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씩 차분히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실천적 교훈이 될 것이다.

현원일 세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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