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5월 2010-05-01   1330

아주 특별한 만남_지관스님





물길 자체가 인간의 길, 곧 생명과 평화의 길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그곳은 어디인가/ 바라보면 산모퉁이/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우리가 매듭 굵은 손을 모아/ 여어이 여어이 부르면/ 어어이 어어이 눈물 섞인 구름으로/ 피맺힌 울음들이 되살아나는 그곳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그리운 남쪽’ 중에서 곽재구)

눈이 부시고 가슴이 절절히 시린 5월이다. 남녘 하늘을 바라보면 진달래 꽃빛보다 선연한 구름 조각들이 흩어져 떠다닌다. 시대가 남긴 멍울진 상처보다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에 취하고 연둣빛 새순에 마음을 싣는 5월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보다 더 잔인한, 통곡하는 4월을 우리는 보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눈물은 서해바다를 넘치게 했고, 막강하다는 국방의 힘을 믿었던 사람들의 놀람은 지축을 흔들었다. 그러다 억지스럽게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 대통령은 TV에서 눈물을 찍어내며 실종 장병들을 호명하는 감성적인 모습을 보였고, KBS는 성금 모으기에 앞장서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등 공영방송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우려했던 일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척척 진행되어 가고 있다. 미디어를 이미 장악한 정권은 한층 정교하고 대중화된 현대사회의 포섭기제로 대중들의 정치적인 각성을 앗아버렸고, 천안함 사태의 원인 규명을 요구하자 오히려 위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일침을 놓는다. 그럼 원인 규명은 언제하나? 꼭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모양이다.

모두가 안동답답이(按桐沓沓이: 굵은 기둥을 안은 것처럼 가슴이 몹시 답답함을 이르는 말)가 되어버렸다. 시절이 하도 수상하니 길거리에 서있기만 해도 잡혀가는 세상이라고 울분을 터뜨리는 이도 있지만 서울시는 그저 ‘디자인 중’이고, 4대강은 ‘공사 중’이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삽질’에 제동을 걸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단체의 좌장인 사람을 만났다.

‘4대강 운하개발사업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 대한불교조계종 김포 용화사 주지인 지관스님이다. 또한 올해 새로 선출된 참여연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운영위원회에서 뵙고 단박에 인터뷰를 허락받았지만 시간을 조율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큰스님을 친견할 때는 삼천 배가 기본이라는 말도 있는데, 나라를 위해 큰일 하시는 스님이니 중생이 그 시간에 맞출 수밖에. 어렵사리 시간을 받아냈다.


운영위원으로서 참여연대와 함께할 것

운양산 용화사를 찾아가던 날은 오랜만에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찌푸렸지만 한강의 물빛은 싱그럽고 힘찼다. 산천은 먼셀의 색상표에도 없는 신비로운 빛을 풀어내며 심란했던 마음을 들뜨게 했고, 개나리·벚꽃·목련에 이어 라일락까지 향기를 흩으며 차속으로 파고들었다. 자동차는 공사 중인 강변을 따라 묘기를 부리듯 대형 트럭들을 피해 달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미륵신앙의 도량 용화사’라는 표시판이 보였다. 절집 또한 공사로 한창이었고 일주문一柱門 대신 펼침막이 비장한 뜻을 담고 강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죽어서도 흐르는 강도 강인가? 4대강 살리기로, 4대강 다 죽는다’ 산사에 만개한 꽃을 찬탄하기엔 부끄럽고 숙연한 봄날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스님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차茶방으로 안내되어 산뽕잎차를 마시며 비로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동기부터 여쭸다.

“불교환경연대의 퇴휴스님의 추천이 있었죠. 참여연대는 평소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는데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박원석(협동처장)씨를 알게 되어 더욱 가까워진 시민단체가 되었어요. 이젠 운영위원까지 되었으니 참여연대와 뜻을 같이 해야죠.”

회원으로 칭하는 것보다 스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한 인터뷰이지만 어디까지나 회원인터뷰이다. 뜻을 같이 하려면 첫째로 회원 자격부터 갖추어야 하는데…. 회원 가입을 권하기에는 선뜻 말문이 열리지 않던 차에, 이심전심이랄까, 스님이 참여사회 책자 뒷장에 있는 회원가입서를 뜯더니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작성한다. 더구나 회비로 거금(?)을 쾌척하시니 대화는 일사천리로 이어졌고 덩달아 다관에 물은 계속 흘러들었다.

어떤 방식으로 뜻을 같이 하겠느냐는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지자 큰소리로 호쾌하게 웃는다.

“솔직히 운영이나 조직 면에서는 잘 모르지만 참여연대가 지향하는 바는 잘 알고 있으니 같이 가면 되겠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광우병 파동 때 참여연대가 얼마나 열심히 활동했나요? 그런 식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는 함께 풀어 가면 되겠지요. 첫째로 운영위원회 참석부터 잘하고. 지난 운영위원회에도 제가 첫 번째로 출석했어요.”

어린 학생의 각오처럼 굳고 단호했지만 악동 같은 천진한 표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따라 크게 웃으니 강 건너 우뚝 솟아있는 시막산도 흔들거렸다.


4대강 사업 반대한다고 폭행 당해

얼마 전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가신 법정스님의 일화 중 하나. 70년 대 민주화운동을 할 때 타 종단의 지도자가 승복을 문제 삼아 동참을 거부하자 승복을 벗고 나서려고 하셨다 한다. 지금도 종교인들의 현실 참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좌파스님’이고, 진실을 왜곡, 호도하는 신문은 ‘듣보잡’ 신도단체 명의로 정치계로 나가라는 조언까지 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종교인의 현실 참여의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일까? 답이 있을까?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독재정권을 도와준 일들은 깊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또한 종단 내부의 문제를 다른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 하면 정도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종교가 저잣거리의 모리배보다 더 한 세속 사람들의 분탕질에 오르내리는 게 곤혹스러운 모양이다. 벌 받는 아이의 표정으로 잠시 침묵하던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정치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종교인들이 나서야지요. 인권이 무시되고 진리의 흐름을 막는 정치를 보고 종교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가 앞장섭니까? 4대강 사업은 생명을 죽이는 재앙입니다. 모두 나서서 저지하고 대안을 찾아야지요. 완전 보존은 어렵지만 정부 측에서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서 숙고해야 합니다.”

현실의 야합에서 벗어나 이론과 교리보다는 실천을 강조하고, 진실과 정의와 사랑의 원칙에 따라 현실을 고발하는 예언자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이에 따르면 4대강 개발사업 저지운동에 앞장선 지관스님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이다. 현실을 고발하는 예언자적 자세가 미운 털로 박혔는지 지난 1월 그는 한밤중에 폭행을 당했다. 그것도 안방이나 다름없는 용화사 경내에서. 즉각 불교인권위원회의 성명서가 나오고 강희락 경찰청장의 사과로 일단 사태는 봉합되었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계속 후진 중이다.

산뽕잎차의 향은 은은하고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다관에 계속 들어가는 물을 보며,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라飮水思源던 한 노스님이 생각났다. 이 잎차는 바로 용화사 마당 앞을 흘러가는 한강의 저 물이리라. 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강은 살아있는 그대로 흘러야 합니다. 강과 생명을 살린다는 이유로 반생명, 반환경적인 개발사업을 강행하는 정부는 국민들을 천박한 한탕주의자로 몰고 갑니다. 보세요, 4대강 보상금 부정수령자가 벌써 90명이나 나왔다는 건 무얼 의미합니까? 돈이면 다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 위정자들 모두의 사고가 그러한데 국민들이 뭘 생각하겠어요. 2급 멸종위기식물인 단양 쑥부쟁이나 표범무늬 장지뱀을 ‘그까짓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환경이나 생태라는 말이 먹힐 리가 있습니까? 강 다 죽이고 돈 챙기는 거지.”

비장한 항변이었다. 그 항변을 대신하는 사진전이 경내 오관당에서 열리고 있었다. 지율스님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사진들이 낙동강 개발을 전후로 비교 전시되고 있었다. 개발로 소멸되어가는 무수한 생명체의 고통이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했다. 물길은 그 자체가 인간의 길이었고 동시에 생명과 평화의 길이 아니었던가.  


일단 공사 중단이 우선

4대강 개발사업 저지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돛을 달았다. 먼저 문제점부터 짚었다.

“첫째,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입니다. 두 번째로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강행하니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셋째, 환경평가나 문화재지표조사가 미흡하니 멸종 위기의 동식물들이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또 강변에는 사람들이 살아왔던 흔적들이 퇴적된 문화유산들이 많습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문화를 수장해버리는 경박하고 몰상식한 사업입니다.”

스님은 다기 옆에 있던 냉수를 단숨에 들이켜고 말을 잇는다.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협의체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 하나를 우선 샘플로 하여 결과를 보고 나머지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일의 순서를 무시하고 삽질만 하면 안 됩니다. 공사 중단이 우선이죠.”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부족해요. 철저하게 파괴되어가는 현장을 보고 같이 막고 저지할 활동가들도 필요하고…. 자연과 생태에 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활동하는 우리는 힘을 받죠. 지난 17일 조계사에서 사찰 50곳, 불교시민단체, 스님, 불자 등 일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4대강 생명 살림 수륙대재’를 모셨습니다. 또 수경스님께서는 여주 여강선원(如江禪院 강처럼 사는 집) 머무르면서 토요일마다 수륙재를 모시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에겐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고백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의미로 참여연대 봄답사가 24일(토요일) ‘남한강 물소리 따라 걷기’로 예정되어 있다. 물론 신륵사 수륙대재에도 참여하는 걸로 일정이 잡혀있다고 말씀 드리자 환하게 웃으신다. 그 웃음을 놓칠세라 승복을 입고 활동하면서 가장 불편할 때는 언제냐고 여쭸더니 총알 답변이 나왔다.

“활동가들과 삼겹살집에 갈 때죠. 나는 괜찮은데 그들이 주변을 의식하며 불편해 해서 내가 오히려 더 불편하더라고요.” 

이미 승僧과 속俗 자유롭게 넘나들며 진리를 구하겠다고 나선 자가 상相에 머무르랴. 저잣거리에서도 우리는 부처를 만난다.


눈 내린 4월에도 봄은 온다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 오자 시계에 자주 눈이 갔다. 우리는 서로 마음이 급했다. 아마 ‘마주협’(마하이주민지원 협의처;’마하’란 ‘뛰어남, 위대함’의 산스크리트어)의 일정이 있는 듯했다. 이 단체는 불교계의 다문화가정지원 및 이주노동자단체를 연결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지원하고 있는 총무원 지원단체이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졌음이 분명한 듯했다.

마무리는 참여연대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했다. 참여연대에 바라는 점, 어떤 부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애정 어린 비판까지 주문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들었다. 

“시작할 때 말했듯이 운영과 조직적인 면은 잘 모르지요. 하지만 참여연대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많습니다. 운영위원까지 되었으니 회원으로서 모범을 보이는 건 기본이겠죠. 여태껏 잘 해왔으니 시국이 이러해도 기죽지 말고 밀고 나가기를 바랍니다. 4대강 저지 사업에도 앞장을 서주면 좋겠고. 특히 『참여사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책 한 권으로 그 달의 참여연대 활동을 알 수 있으니 좋지요.”

후원활동기구로는 당연한 듯 월간 『참여사회』를 낙점했다. 비판을 부탁하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다가,

“참여연대는 대표적인 시민단체이지만 아직도 시민단체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무엇보다도 홍보를 많이 해야겠지요. 홍보하고 시민교육 시키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가기 위한 힘을 모으는 일에 역점을 두어야 될 것 같아요.”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말투와 자세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출세간出世間의 사람까지 시민운동에 앞장을 서니 분명 시민의 힘으로 세상은 바뀔 테다. 그 속도가 시대와 조율을 못 하여 더디게 올 뿐이니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말고 꾸준히 나아가야겠다. 4월에도 눈이 내렸지만 봄날은 이렇게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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