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0월 2011-10-05   1786

아주 특별한 만남-문화의 허브 꿈꾸는 1인 엔지오

 

문화의 허브 꿈꾸는 1인 엔지오

 

이종수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시민기자 

옛사람들은 가을 물은 소 발굽에 고인 물도 먹는다고 했던가. 소를 주변에서 쉽게 보기 힘든 세상이지만 투명한 하늘과 눈부신 햇발이 주는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 싶다. 지난여름 잦은 비에도 불구하고 들판의 오곡백과는 가을역을 향해 무한질주 중이고, 팍팍한 살림살이에 지친 도회인들은 좌판에 쌓여있는 탐스러운 사과를 보며 사과 한 알만큼의 가을을 느끼기도 한다. 사과장수는 사과나무가 아니면서 사과를 팔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정직한 말을 파는 세상이지만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연재된 정직한 기사를 보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분노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외환위기 직전과 2011년 올해의 의식구조에 대한 설문조사(한국소비자 리서치 자료)와 분석과 해설이 따른 보도였다.

  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이 ‘삶의 질 개선’을 한국의 최우선 국가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같은 조사에서는 ‘경제강국 진입’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기사는 이처럼 국가목표가 ‘공동체이익’에서 ‘개인이익’으로 축이 옮겨간 원인중 하나는 양극화를 부추기는 불공정한 ‘게임 룰’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무리 정직하게 노력을 해도 성공하지 못하며 인맥을 활용하면 목적을 쉽게 달성한다고 답한 사람이 83.5%에 이르렀으니, 한쪽에서는 열나게 ‘공정사회’를 외쳐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공한 게임에 분노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이 ‘안철수 바람’을 일으켰고 그 여세는 정치권의 폭풍으로 휘몰아쳤다. 10월 26일, 치르게 되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소금꽃’ 김진숙 님이 인권을, 바다 건너 제주 섬 강정마을에서는 평화를, 광화문 광장에서는 소통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요구를 문화라는 한목소리로 담아내는 사람을 만났다.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이종수(42세) 회원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 ‘연대’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동안童顔에 악동 같은 천진함이 배어있는 얼굴이었다. 검은 네모 뿔테 안경이 주는 지적인 분위기보다는 마디 없는 하얀 손에서 반짝이는 반지가 눈에 들었다. 새신랑 티가 물씬 났다. 회원 가입도 올 5월이니 신입회원인 셈이다. 가입 동기가 궁금했다.

  “참여연대라는 국가대표 시민단체를 모를 리 없죠. 간사들 중에는 후배도 있어 늘 관심 있었던 단체였어요. 특히 아카데미 시민교육 강좌는 제가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고요. 서로 회원이 되어주는 이벤트를 하자고 안진걸 님이 제의했죠.”

  유쾌한 웃음소리 끝에 장난스러운 안진걸 님의 보름달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긴장했던 인터뷰가 일순 해빙모드로 바뀌었고, 격의 없이 대화가 어쩐지 ‘2차’까지 갈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1인 엔지오 문화운동 단체입니다. 생명·평화·복지·민주주의 등 시민사회 가치를 문화적으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고 만든 단체죠. 매주 다양한 행사도 진행하고 계획하지만 어려움이 많아요. 시민사회단체 ‘문화의 허브’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제일 크죠. 반면에 또 혼자니까 기동력이 있어 문화를 사람들과 쉽게 연대할 수가 있는 장점도 있죠.”

  멋쩍게 살짝 웃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연대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연대란 사랑의 다른 이름이죠. 시민운동도 이제 변해야 합니다. 머리띠 동여매고 주먹 불끈 쥐던 시대는 지났어요. 대중에게 친숙하게 공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 코드가 문화입니다.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복수형을 쓰고 있지만 저 혼자 분업화 전략으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정리하자면 스스로를 문화전령사라고 했다. 그럼 문화의 정의와 가치에 대해 간략한 답변을 구했다. 평범한 가운데 난이도가 높은 질문인지 선뜻 답을 내지 못했다.

  “문화란 예술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론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거 아니겠어요? 그걸 가치로 따질 수 있을까요? 굳이 가치를 말한다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흔들어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건강한 균열로 문화사회를

문화文化- 사전적 의미로는 인지人智가 열리고 생활이 보다 편리하게 되는 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문화라는 말처럼 두루뭉술하게 남용하는 용어도 없지 싶다. 한때는 정권 홍보용으로 문화공보부가 있었고, 88올림픽을 계기로 운동꾼을 키워낼 때에는 문화체육부였고, 지금은 오직 이것 밖에 없다는 식으로 모든 걸 관광으로 연결하는 문화관광부로, 입만 벙긋하면 문화, 문화 타령이다. 이게 서글프게도 우리 문화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그의 말마따나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흔들어 건강한 균열을 내는 게 문화운동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균열을 어떤 방식으로 낼 것인가.

  “온도를 낮춰야죠. 개개인이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게 접근해야죠. 파괴되기 전의 4대강이나 강정마을의 아름다움을 먼저 사람들에게 알리고, 강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물론 사람들을 설득하고 공감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죠. 그러다 보면 차츰 잊힐 수도 있겠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좋은 문화는 재생산되니까요. 온도를 낮춘다는 다른 말로 그 눈높이로 그들의 입장에서 말을 거는 거죠.”

  문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발언이다. 그러기에 그는 사랑의 다른 이름 ‘연대’를 통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속되게 말하여 ‘돈 안 되는 문화 사업’을.

  지난달에는 문화나눔마당의 행사로 ‘깨어나라! 역사여!’(민족문화연구소 방학진 님), ‘외로운 대지의 깃발, 강정마을’(생명평화결사 김경일 신부)의 강좌가 있었고, 10월 11일에는 나루아트센터에서 <두근두근 콘서트- 나는 강이다>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선우 시인, 이지상·한보리·백자 등 노래하는 사람들과 함께 강이 말 하는 소리를 들어보는 콘서트이다. 그야말로 가슴 두근두근한 콘서트가 되지 싶다.

 

비판적 시각 지닌 ‘위험한 시민’ 만드는 인문학

공연, 강좌, 교육사업을 기획하고 연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얘기해달라고 하자, 표정이 금세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할 때였죠. 그때 저는 성프란시스 대학(성공회)의 간사로 활동하면서 그들과 1년 과정을 함께 했죠. 이런 표현을 쓰는 게 무척 조심스럽지만 그들은 ‘환자’입니다.”

  ‘환자’라는 표현을 놓고 그는 다시 사려 깊은 표정을 지었다. 흔히 노숙인들을 표현할 때 ‘고립된 섬’, ‘유리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 이들을 환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할 게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노숙인에게 인문학이 가당하냐며 쓴웃음을 짓는 사람들, 또 이런 일을 하는 저희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개개인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지 느낍니다. 그들에게 인문학이란 아픈 사람에게 미음을, 죽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픈 사람이 단박에 밥을 먹을 수는 없지 않아요?”

  미음, 죽이라는 게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존심 회복과 공동체적인 삶을 돕는 영양식으로 이해한다면 쉽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영양식 재료로는 철학·문학·역사·글쓰기·예술사 등이 있고, 여름 수련회와 졸업여행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과 자기존중감을 취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성급한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그럼 그 과정이 끝난 후 그들의 변화는 어느 정도였는지?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곤혹스럽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몇이냐,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몇이냐, 어떤 직장을 가졌느냐…. 수치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갈 가정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며, 설령 돌아갔다고 해도 가정에서 선뜻 그를 받아들일까요? 아픈 사람이 죽 한번 먹고 단번에 밥을 먹고 원기 회복하는 건 아니잖아요.”

  얘기가 계속 될수록 얼굴은 더욱 화끈 거렸다.

  “개인차는 있지만 대화의 내용이 달라졌고 격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술 마시고 여자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치사회 이야기하고, 지리산 시인 이원규를 안다고 으쓱해 하고, 경복궁을 답사하고…. 사람의 격이 달라진 거죠. 자기존중감을 갖게 되는 과정이라고 봐야죠.”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인간이라는 한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지나갔다. 그 땅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건강한 균열’이 보이는 듯했다.

  “인문학 효과란 그들에게 무조건 순응하는 착한(?) 시민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또 고급스런 단어를 나열하는 ‘선비노숙인’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얼 쇼리스(미국 인문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정당한 분노를 올바르게 표출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지닌 ‘위험한 시민’을 만드는 게 목적이요, 그 효과입니다.”

문화운동 앞장 선 국가대표 엔지오이길…

당면한 민생문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무상급식·반값등록금·전세값 폭등, 그 중 가장 큰 이슈는 이 달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였다. 서울시 10년은 ‘사람을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흥분하는 자리로 변했다. 콘크리트가 주인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사람들은 쫓겨나고, 불구덩이에 떨어지고, 매몰되고…. ‘사람을 찾는 서울’로 바꿔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어떤 모습의 서울을 꿈꾸는지 여쭸다.

  “한마디로 시끄러워지는 서울을 원합니다. 뒷걸음질 쳤던 민주주의가 살아나 시끄럽고, 사람들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소통하는 시장이 나왔으면 합니다. 소통보다는 소탕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잃어버린 10년이 된 셈이죠.”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하며 느낀 점을 덧붙였다.

  “시위나 집회를 시민과 함께 즐기는 문화제로 진행하고, 그 행사에 참석하는 문화예술인을 그에 걸맞게 존중해줘야 합니다. 시민단체 행사에서 종종 느끼는데, 지방에서 초청 받고 온 사람을 민중가수라는 이유로 차비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재능기부라는 말이 때로는 폭력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합당한 대우를 요구하면 ‘돈 밝히는 놈’, ‘돈맛을 알았다’고 비아냥되는 풍토를 우리 스스로 만들었으니 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대접해 주지 않으면 그들이 어디 가서 온당한 대접을 받겠습니까?”

  현장에서 느낀 울분과 분노가 봇물을 이루듯 쏟아져 나왔다. 참여연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가대표 엔지오답게 주요 테마를 가지고 공연을 많이 열었으면 해요. ‘나는 민중가수다’를 진행할 수도 있고, 집회장에서 거금 들여 대여하는 음향기기는 시민사회 공익 활동 지원 사업으로 서울시가 준비하도록 요구하고. 물론 훌륭한 정책을 내어 세상을 바꾸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하지만 문화운동도 함께 하는 국가대표 엔지오가 되었으면 합니다.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역할에 참여연대가 앞장서야죠.”

   유쾌한 웃음으로 잔뜩 부담 주는 멘트를 한방 날렸다. 창밖은 이미 어스름한 ‘술시’로 기울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가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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