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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11월
  • 2000.11.01
  • 765
한 달에 문자메시지를 400번 이상 날려야 사랑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 지금 세상엔 정보가 넘쳐난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폭발한 정보빅뱅. 텔레비전과 전화, 컴퓨터의 융합. 정보는 빛과 같은 속도로 유통되며, 오랜 세월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진화해온 갖가지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하나로 통합된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정보는 곧 권력’이었다. 그러나 ‘정보홍수’는 달라진 세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열쇠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시대는 정녕 ‘탈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정보는 누구에게나 편재되어 있는가.

이냐시오 라모네의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민음사 펴냄)는 말 그대로 현대사회 거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에 관한 글이다. 동시에 겉모습과 달리 ‘점점 왜소해져만 가는’ 현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초상을 묘파한 글이기도 하다. 라모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정보와 뉴스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생명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 의문에 빠진다. ‘접속’만 하면, 생생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안방까지 전송되는 시대, 그 수많은 정보는 진실된 것인가. 지금 정보는 진정 자유로이 유통되고 있는가. 우리는 꼭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두 개의 에피소드를 보자. 라모네는 이를 통해 현대 미디어의 성격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그와 동시에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졌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느린 뉴스는 뉴스가 아니다”

우선 1997년 8월 31일 파리에서 일어난 영국의 다이애나 비와 그의 연인 도디알 파예드의 자동차 사고사. 알다시피 이 사건은 모든 매스컴에 의해 시시각각 ‘중계’ ‘보도’돼 전세계 사람들의 집중적 시선을 붙잡았다.

이제 묻자. 남미의 민중에게 다이애나의 죽음이 밤잠을 설치고 텔레비전 생중계 방송을 봐야 할 만큼 다급한 일이었을까? 다니엘 다앙의 분석은 냉소적이지만 진실에 가깝다. “그녀는 신데렐라처럼 시작했다가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계모의 괴롭힘을 당하는 백설공주처럼 끝났다. 그녀가 월트 디즈니 만화의 여주인공이 되는 것을 상상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심각한 질문은 불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둘 수 있는 생생하고 감동적인 ‘쇼’, 즉 대리만족적인 거대한 카타르시스다.

두 번째는 흔히 ‘지퍼게이트’라 불린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사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둘러싼 소동이다. 미국의 유수 언론은 이 사건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이를테면 클린턴과 아라파트가 ‘인류의 영원한 화약고’인 중동의 평화정착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에서 미국의 ‘권위있는’ 언론사의 ‘명석한’ 기자들은 세계 유일의 ‘과도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에게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리고 이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그 광기는 전세계로 전염됐다.

이 사건은 권력남용과 관계가 있는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의 사생활, 그리고 그의 거짓말과 관련되어 있다. 이 또한 사람들의 관음증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저열한 ‘폭로 저널리즘’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닉슨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추적, 조사해 폭로했던 기념비적인 ‘워터게이트’ 보도와는 질이 다르다.

세계 유수의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에 르완다의 대학살과 한반도 북쪽의 대기근과 대량아사, 유고의 오랜 민족분쟁은 다이애나의 죽음이나, ‘지퍼게이트’보다 ‘뉴스가치’가 떨어지는 소식이었을까. 정녕 두 사건은 이름없는 수많은 인류의 삶과 죽음보다 긴급하고도 중요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비밀은 엉뚱한 곳에 있다. 바로 ‘돈’이다. 지구촌을 실핏줄처럼 연결한 네트워크 위에 군림하고 있는 거대 언론의 관심사는 바로 ‘돈이 되는 정보’ ‘돈이 되는 뉴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로 저널리즘의 목적은 ‘돈’

언론이 다이애나의 죽음과 ‘지퍼게이트’를 세계적 관심사로 만들어, 인류가 ‘전세계적 정보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웅변한 데에는 명백히 정보통신기술이라는 기술적 기반이 토대가 되었다. 이 점에서 ‘지퍼게이트’의 발화점이 『디뤼지 리포트』라는 한 30대 무명 젊은이가 운영하던 인터넷 매체였다는 사실은 시대적 중요성을 지닌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 함께 텔레비전이 그 화려한 등장을 웅변했듯이.

‘뉴스를 만들어내는’ 언론기업은 최대한 규모를 키우고,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상과제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 확대와 사업 다각화에는 물론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시청자와 독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쉽고, 신속하고, 재미있게’, 이게 현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지상과제다. 진실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전반적 교육수준이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는 요즘 이런 ‘뉴스의 단순화’는 흥미로운 역설이다. 물론 그 역설을 강제하는 힘은 바로 ‘이윤’이다. 제대로 된 보도가 없는 원인을 ‘권력의 통제’에서 찾아야 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그건 요즘 한국의 언론현실에도 100%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정확한 진술이다.

이제 현대 매스컴의 우울한 초상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개의 명제를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보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다.” “이미지가 없으면 현실도 없다.” “느린 뉴스는 뉴스가 아니다.” “이윤이 없는 곳에 뉴스도 없다.” 그리하여 뉴스는 시나브로 ‘쇼’가 되어 버렸다.

라모네는 이렇게 당부한다.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아무런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생산적 활동이며 진정한 지적인 동원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그의 시간, 돈, 관심의 일부분을 그것에 바칠 수 있을 만큼 고상한 활동이다. 정보는 현대적 오락의 양상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그것의 목표가 시민을 형성시키는 데 있는 시민교육의 학과목이다.”

라모네는 당위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의 핵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상품)로만 평가해 정작 중요한 인권과 환경 등을 도외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것, 그게 바로 ‘진실이 담긴 뉴스’를 되살리는 근본적 방법의 하나라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가 상품이 아닌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추구하는 ‘그누·리눅스’ 프로젝트나, 냅스터 프로그램 등 정보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동참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역설이 있다. 정보가 넘치는 곳(미국과 유럽 등 제1세계)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진실이 아니라, 쇼를 찾는다. 반면에 대다수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3세계)에선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나 그곳엔 정보에 접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도쿄 한 도시의 전화회선 수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그것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제1세계와 제3세계의 중간 어디메쯤에 서 있을 거다.

복잡한 현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진실이 담긴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한 길을 낼 것인가.
이제훈 『한겨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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