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6월 1999-06-01   697

정부와 기업프로젝트에 울고웃는 시민단체

정부와 기업프로젝트에 울고웃는 시민단체

행정자치부에서는 99년 3월 19일 주요 일간지에 「?99 민간단체 보조사업 시행공고」를 게재하고 5월 13일 공모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들리는 말로는 이 프로젝트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고, 모 단체는 조직적으로 따내자(?)는 목적을 갖고 전국 단위의 회의까지 했다고 하니 대정부 직접지원 사업을 대하는 단체들의 태도가 전보다는 상당히 달라진 듯하다. 이에 대해 국민세금이니 시민단체들도 참여해 권리를 행사하자는 주장과 정부로부터 사업비를 받는 방식은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 필자가 속한 성남시민모임에서도 창립이래 처음으로 정부의 지원사업에 두 가지 사례를 갖고 참가하는 선례를 기록했는데, 하나는 내부 조직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정부의 직접지원 유혹에서 벗어나야

아직까지 시민사회의 성숙도나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합법적인 정부(자치단체)의 재정지원 유혹은 늘 재정문제로 고민하는 시민사회단체로서는 당장 먹기 좋아 보이는 떡일 수 있다. 그동안 관변단체들이 누린 특혜를 생각하면 왠지 손해보고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고, 나름대로 건전하고 투명하게 지원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도덕적 자신감이 있다면 받아도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사업비를 마련할 것인가를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그러나 그동안의 시민사회운동진영은 높은 도덕성과 헌신적 활동으로 일반시민들의 단체 인지도를 높여왔고, 이제는 한국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제3의 영역으로서 시민운동진영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시민운동의 건강성을 보여주면서 관변단체와 구별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박봉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속에서도 실무자 및 자원활동가는 우리 사회를 시민의 힘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다. 특히 과거 군사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시절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단체일수록 조직사업과 재정문제를 상호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당부분 지속적인 사업수행과 조직의 안정적 유지라는 명분과 실리에 밀려 그런 원칙들은 과거의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변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 내부에서조차도(비록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정부(자치단체)와의 비공식적 접촉까지 감행하면서 프로젝트를 맡으려는 적극성을 보이기까지 한다.

한편, 지난 5월 13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민간단체 보조금 지급사업이 소위 관변단체랄 수 있는 새마을 등에 총지급액의 절반 가까이가 배정된 반면, 전체 선정 단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적은 액수밖에 받지 못했다는 것은 관변단체의 합법적 지원을 위한 들러리에 그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는 사업의 심사가 공정하고 중립적인 기구에 의해 심사된 것이 아니라 행자부의 결정으로 이뤄진 것이라서 시민단체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등의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운동관련 정부부처·기업과는 거래말라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수행해야할 역할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꼽으라면 상당수는 정부(자치단체)를 포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들에 대해 부담없는(?)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된 현실에서 정부 및 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는 여전히 우리의 새로운 과제로 남아 있기는 하나, 정부 및 자치단체의 연구용역사업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별다른 고민없이 접근하는 모습은 시민운동의 취약한 토대를 반영하는 것같아 착잡하기 짝이 없다.

이에 지역운동을 하면서 느낀 몇가지 단상과 나름대로 지역단체가 느끼는 문제의식을 표명하고자 한다. 먼저 단체재정 중 전체 사업비에서 프로젝트 사업비가 낮은 비율을 차지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야금야금 발을 들여놓게 되면 언젠가는 권력과 자본에 의존해 있는 모습이 될 것이다. 두번째로 각 단체에서 기존에 해왔던 사업이나 장래에 계획하고 있는 사업과 연관있는 정부 단위 및 기업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셋째,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프로젝트의 경우 중앙의 몇몇 명망있는 단체가 과점해왔기 때문에 지역단체들은 참가기회부터 소외돼왔다. 이는 시민운동 내부에서조차도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정보의 공유와 역할분담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넷째, 프로젝트 경쟁에 있어서 운동진영 내부의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단체의 명망가나 여러 인연을 바탕으로 비공식적 활동에 의해 프로젝트 당첨여부가 결정된다면 출발부터 사업에 대한 순수성이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프로젝트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단체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회의적이다.

프로젝트, 중앙단체의 과점현상 없어져야

지역운동단체들이야 아직까지 명망성이나 전문성의 취약으로 주어지는 프로젝트가 상대적으로 중앙단체나 중앙에 소속된 지역단체에 비해 적은 편이다. 구 사회운동을 계승하는 입장을 취하는 지역단체들의 경우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부·기업의 용역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가급적이면 규모도 적은데 자립구조로 가자는 정서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지역단체에서도 지역에서의 인지도가 높아져가고, 나름대로 활동의 성과들이 축적됨에 따라 사업에 따라서는 중앙정부, 자치단체 또는 기업의 후원 또는 프로젝트 제의가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성남시민모임의 경우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중앙정부, 자치단체의 지원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내부의 공감이었다. 그러나 공공성을 띠거나, 단체의 사업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경우에는 건전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고려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성남시의 경우, 96년부터 매년 5월 5일 펼쳐지고 있는 어린이날 행사는 그동안 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각각 별도의 행사로 치러왔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성남시가 재정적으로 이 사업을 후원하고 실무준비 및 행사진행은 ‘어린이날 행사준비위원회’가 독립적으로 맡아 기획하고 진행했다. 이는 그동안 시민교육단체의 성과를 제도권에서 존중한 것으로 서로가 독립적 위치에서 사업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자치단체의 프로젝트가 수동적이었거나, 일방적으로 주어진 사업을 수행해야 했던 것과는 차별성이 있는 사업이었다. 시민단체의 경험과 제안을 근거로 진행되는 독립적 용역사업은 나름대로 의미와 성과를 가지며 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난해말 참여연대를 비롯한 몇몇 단체는 정부의 민간운동지원법률(안)에 대해 법안제출 및 의견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성남시민모임도 참여연대의 제안으로 함께 서명했는데, 이는 민간단체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아울러 대안적 입장으로 현재 민간단체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억압적 제도의 개선과 세제혜택 및 공공요금의 할인 등 간접지원 방식이 적합함을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국가·기업과의 역관계를 볼 때 아직까지 시민의 힘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시민사회의 힘을 총력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민사회내의 공동의 협의와 노력이 요청된다. 시민사회에서는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전통적 의미의 회원·재정사업과 프로젝트 사업에 대한 충분한 내부토론과 의사수렴으로 나름의 건강한 원칙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지방에 근거를 두고 있는 단체일수록 직접적으로 자치단체와 특수관계를 갖게 됨으로써 경상비 또는 사업비의 직접적인 지원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설혹 프로젝트가 주어지더라도 단체 안에서 충분한 내부논의를 거쳐 실무자 중심이나 전문가 중심이 아닌 회원들이 참여하거나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무게중심을 두는 내부원칙이 필요하다.

남광우 성남시민모임 회원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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