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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호 05월
  • 1995.05.01
  • 516
시민운동과 참여연대
시민운동은 민주화투쟁의 연장이어야 한다.

장호순(한국사회교육원 연구부장)]

1. 시민사회를 향하여

시민운동의 목표는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고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근본이념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호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가 운영되는 모든 규칙의 기본 틀이고 인권 보호는 시민사회가 민주적 제도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권이란 정치적 권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생존권,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등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평등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시민사회는 인류 역사상 오랫동안 실천해 온 사회도 아니며, 더욱이 우리의 전통 문화에서는 아주 생소한 사회이다. 수천년 동안 봉건 체제에 눌려 살아왔던 우리 민족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일제의 식민 통치, 군사 독재 등 반시민사회적 권력의 억압하에 눌려 살아와야 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억압 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들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으나 번번이 권력의 힘에 저지 당하고 말았다. 최근에야 비로소 소수의 권력 독점에서 벗어나 다수 국민의 의견이 존중받는 시민사회를 건설하자는 정치적,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사회를 향해 함께 가자고 결의한 상태이지 아직 시민사회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우리는 시작부터 체험하고 있다. 비록 문민정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억압적 제도나 그런 제도를 만들어 실행한 인물들이 아직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하고 있고, 그로인해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나 문민정권하에서나 별반 다름없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의견이 무시되고 권리가 짓밟히는 것이 현실이다. 부패한 행정부는 권력의 전횡을 일삼고 있으며, 입법부는 군사독재 시절 포기한 입법 기능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고, 사법부로부터 공정한 법적 판결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당은 당원의 목소리가 아닌 총재나 대표라고 불리는 소수 권력자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고, 민주주의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그 책임을 망각한 채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현재 우리의 사회는 시민사회가 되는데 필수적인 조건인 민주적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더욱이 이러한 반시민사회적 구습은 단지 정계나 언론계뿐만 아니라 정의와 양심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종교계, 학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 수천년 동안의 봉건적, 권위주의적 전통과 과거 30년 동안 독재정권하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가 구시대의 봉건적,독재적 유산을 하루 아침에 제거하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사회의 근본이념을 수용하는 인식의 근본적 전환이 없이 시민사회의 도래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곳곳에 뿌리 박혀 있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반시민사회적 야만적 경쟁 논리를 계속 수용, 확장하려는 세력을 극복하지 않고는 시민사회의 건설은 불가능할 것이다.

2.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

시민사회가 독재 정권을 타도하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라던가,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란 이름만 붙이면 시민사회가 된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져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시민사회가 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시민사회는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사회이다.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시민사회의 역사는 너무나 일천한 것이며 지금도 지구상의 극히 일부의 국가에서만 시민사회가 실현되고 있다. 18세기말부터 유럽과 미국을 비롯하여 일부 서구 국가에서 처음 시도되어 온 시민사회는 제 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통치가 종식되면서 제3세계 국가에 형식적으로 이식된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 시민사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것은 인간사회가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전통적 억압 구조를 벗어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더디고 어려운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인간의 평등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이다. 즉 한두 사람의 전제군주나 독재자, 혹은 소수의 권력 집단의 판단보다는 그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한 사회라는 믿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인간을 제압하려고 하며, 이성적 판단보다는 욕망적, 감정적 충동에 지배를 받기 쉽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은 감정과 탐욕을 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외부에 종속 받지 않아도 될 경제적 자립과 더불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 사회가 19세기 말 공립학교 제도를 도입하여 모든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주된 목적이 바로 전제주의 동구 유럽 국가에서 몰려드는 이민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해방 직후 우리 땅에서 시도된 시민사회의 접목은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시민의 요건을 갖출 경제적, 교육적 여건이 당시에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 후 50년이 지난 지금은 사회적 여건이 여러 모로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대다수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 시민사회의 가장 큰 장애였던 군부 독재 통치도 종결되었다. 그러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졌지만 일제 식민지나 군부 독재하에서 교육을 받아 온 우리 사회의 구성원의 대부분은 시민사회의 필수 요건인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이해하고 체득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과거 군사 독재자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도 교육을 통해 반시민사회적 국가안보 논리와 경쟁논리를 주입시켜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교육을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군사독재의 억압 통치를 거치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민주주의나 인권은 일부 학생들이나 재야 인사들이 독재에 대해 항거하는 것으로 여겨 왔고 군부 독재가 종식된 지금 민주주의와 인권은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더욱이 소위 문민정부의 집권자와 집권 계층은 국민의 민주화요구가 자신이나 자신들의 계층의 권력 유지에 이익이 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세계화”라는 우스꽝스러운 구호로 국민들에게 정신적 채찍질을 가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이 국민들의 관심밖에 계속 머물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세계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권 추종자와 재벌과 언론은 사실상 시민사회의 건설을 포기하고 시민사회로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3. 시민운동의 목표와 과제

이미 시민사회의 요건을 갖춘 사회의 시민운동과 아직 시민사회가 되지 않은 채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의 시민운동은 그 양상이 달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은 이미 민주적 기본요건을 갖추고 인권을 보장하는 서구 사회의 시민운동의 형태를 모방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 서구의 시민운동은 이미 뼈대가 갖추어진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발견되는 시민사회의 결함을 보완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정당을 통한 대의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도외시 당하기 쉬운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인권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기아, 여성, 환경문제 등 국가나 정부 단위로 해결이 불가능한 부문별 이슈에 대해서 시민운동단체들이 국내외적으로 연대 활동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들어간 우리의 시민운동이 서구 시민사회의 시민운동을 무조건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에서처럼 부문별, 영역별 시민운동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이다. 우리는 시민운동의 부문별 전문화에 앞서 그에 필요한 시민사회의 기본 조건을 갖추는데 우선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 민주적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시민운동이 시민사회 형성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여러 시민운동 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핵폐기장 선정 문제, 고교입시 부활문제, 외국인 근로자 문제 등은 분명 각 사안별로 전문 영역은 다르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모두 정부 정책의 결정에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가 확립 되어 있지 않아 파생된 문제들이다. 정책 입안 과정에 국민의 의견이나 시민운동단체의 견해가 반영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이미 정부가 일방적으로 성립하여 실시하거나 실시하려고 하는 정책에 대해 성명, 시위, 농성 등의 형태로 사후 의견 표현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형태로 국한된 시민운동은 결코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시민운동의 형태는 결코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기틀이라는 시민사회의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분야별 시민운동은 산발적 시민 저항운동의 단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시민운동은 반복적이고 소모적이다. 예를 들면 환경 정책 수립에 환경시민단체의 의견이 반영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시민단체들은 안면도에 가서 싸우고 울진에 가서 싸우고, 덕적도에 가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 환경시민단체들은 각 지역을 찾아다니며 반대운동을 하기에 앞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된 핵폐기물 선정과정을 정부에 요구했어야 했다.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책 입안 과정을 확립하는 운동을 하고 난 후 각 이슈별 혹은 지역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순서가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민운동 단체들은 그 목표의 우선 순위를 재고하여 반시민사회적, 비민주적 제도를 제거하는 것을 공통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연대해야 할 것이다.

민주적 훈련이 부족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돈과 권력과 언론을 독점한 집권층과 경쟁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는 시민운동 단체들은 정확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민주화 투쟁과 지금의 시민 운동의 모교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 시민운동단체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시민운동단체가 아니라 특정 계층을 대변하는 하나의 이익 집단에 부과할 뿐이다. 문민정부가 되었다고 해서, 민중 대신 시민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시민운동의 목표가 과거의 민중운동의 목표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단지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는 시민사회로 가기 위한 여정에서 독재타도라는 첫번째 장애물을 통과했음에 불과하다.

시민운동의 목표가 과거의 민중운동과 동일하지만 물론 그 운동 방법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민 운동권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민들로부터 받았던 도덕적 지지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군사독재로 상징되던 반민주 권력집단이 지금은 문민정부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어 국민들로 하여금 과거와 같은 권력에 대한 경계와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정치권력에서부터 언론, 재벌, 기술 관료계층 등으로 확장된 핵심권력계층은 상호 연대를 통하여 그들의 영향력을 지키는 동시에 시민-민중 운동권을 분화시켜 세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당면 과제는 이처럼 확장된 권력계층과 그들의 교묘한 반민주적 현상유지 술책에 대항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다시 불을 당기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민주화 투쟁에 다시 연대 동참하지 않고서 시민사회 형성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4. 시민운동의 전망

우리의 시민운동의 전망은 밝지 않다. 우선 인류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인간의 감정과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시민사회의 건설에 희망을 거는 것은 무모한 듯 보인다. 영국 왕실의 전제주의에 반해 생긴 미국 시민사회는 노예제도라는 야만적 제도를 고수하려 하였고 노예해방 이후에도 인종차별을 오랫동안 지속시켰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제거했다던 사회주의는 경제발전에 실패한 채 스탈린의 대학살과 같은 독재 만행과 엄청난 인권 탄압의 유산을 남겼을 뿐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대립 구도를 벗어난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인종적 대립으로 인한 전쟁과 권력자와 비권력자 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40억의 인류 중 과연 시민의 자질을 갖추고 시민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며 시민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 사회는 군사 독재체제를 벗어나긴 하였으나 시민사회의 기초 토대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군사독재 정치 시절에 뿌리 박힌 각종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옛집조차 헐지도 못한 상태이다. 시민사회의 기초를 건설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지 않다. 시민사회의 건설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적다. 시민사회란 그것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사람들, 즉 민주적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운영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운동은 그러한 시민을 양성하기위한 작업에 손을 대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제도권 교육에서 시민교육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시민운동 지도자들이 구시대의 반시민사회적 잔재를 허물고 시민사회의 근본적 토대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천할 때만이 시민사회를 향한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문민정부가 되었지만 민주화를 향한 근본적 변화는 없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인식시켜 그들이 다시 민주화 투쟁을 위핸 대열에 동참하도록 적극 유도하고 있는 시민운동단체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저 몇몇 같은 부류의 지식인이나 고급 중산층들이 현실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가끔 모이는 정도가 오늘날의 시민운동단체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래서 천문학적 숫자의 세금 부조리를 보고도 이를 토대로 한 구체적 시민 행동으로 이끌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갖가지 인위적 재앙으로 인해 겪는 시민들의 엄청난 고통과 부담에도 불구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군부 독재타도에 민중운동 단체들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처럼 현재의 시민운동단체들의 시민사회건설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부정적이다.

5. 결론

시민사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제도적 틀로 구체화시킨 사회다. 시민사회는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로 약육강식, 생존 경쟁의 야만의 원칙에 지배를 받지 않고 모든 인간이 일정 수준까지 평등하게 대우를 받으며 공존하는 사회이다.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면서 동시에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다수의 전횡으로부터 보호 받는 시민사회는 인간이 욕구와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으로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리고 지금의 세계의 정세와 우리의 처지를 고려해 볼 때, 시민사회가 현실화되기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요원한 이상향으로 머무를 가능성이 더 크다. 더욱이 서구 시민사회의 전통이 없는 이 땅에, 그리고 봉건적 권위주의와 군사독재의 병폐가 사회 곳곳에 뿌리 박혀 있는 이 땅에 시민사회가 도래하리라고 낙관할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정의감에 무뎌진 국민, 탐욕을 부추기는 지배층의 틈바구니에서 시민운동이 끼여들어 자활할 만한 여지는 현재 그리 넓지 못하다.

더욱이 시민운동의 주체들이 정확한 상황 분석에 미흡하고 그로 인해 목표 설정에 혼돈을 일으킨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무기력한 시민운동이 시민사회 건설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적 사회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운동이 부문별 전문 영역에만 몰두한다면 시민사회의 도래에 필요한 근본적 제도 개혁에 시민운동이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시민단체는 전문 영역별 시민운동에 섣불리 몰입하기 앞서 시민사회의 근본 원칙이며 모든 시민운동의 전제조건인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확립시키는 것을 공통의 목표로 삼아 연대해야 할 것이다. 군사 독재시절의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맞는 민주화추진 방법을 개발, 실천하는 것이 시민운동이 시민사회 형성에 기여하는 길이다.
장호순(한국사회교육원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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