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7월 2006-07-01   1483

너무나 부러운 독일의 시민교육

직장에 교육휴가가 있는 곳. 평생교육체계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곳. 시민교육 프로그램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는 곳. 바로 월드컵 열기에 감춰진 독일의 얘기이다. 이런 독일의 여러 제도가 궁금하던 차에 독일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5월 중순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초청으로 4명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참여연대 3명, 대구참여연대 1명)이 독일의 시민정치교육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독일 본으로 떠났다. 장장 13시간 가까운 여행이었지만 독일 방문과 연수에 대한 기대감으로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본에 도착하자 월드컵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매우 차분한 분위기였다.

강의 대신 상황극 토크쇼… 양방향 청소년 교육

도착 다음날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에버트 재단에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재단의 건물은 매우 컸으며 건물 전체가 시민교육을 위해 꾸며놓은 것처럼 보였다.

먼저 에버트 재단의 청소년 교육에 대한 소개. 주된 교육 대상층은 16~24세의 청소년들이다. 대학 진학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독일 사회이기에 가능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교육내용은 정치의 기본 지식인 민주주의, 인권, 세계화 같은 것.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모여살고 있는 독일 사회를 반영하듯 다문화간 소통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특히 교육방법이 흥미로웠는데 강의 형식을 지양하고 상황극, 토크쇼 등을 통해 양방향 교육을 지향하고 있었다. 강의 형식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힘들뿐더러 교육적 효과도 적다는 것이다. 또한 정규학교에서도 이런 교육에 참가하는 것을 적극 독려한다고 한다. 정규학교에서는 예산 부족 등으로 이런 교육을 전문적으로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입시교육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떠올라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치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그 다음으로는 정치교육을 소개했다. 독일 사회는 정치교육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나치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에 따라 독일 정치교육에는 역사교육이 빠지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밝히는데 힘쓰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아직도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또한 독일 정부는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정치교육을 하겠다고 신청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정부 예산을 배정한다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적 개방성이다. 일방적으로 어떤 당을 홍보하거나 다른 당의 정책을 비난 할 경우 예산 지원이 즉각 중단된다. 교육대상자를 제한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예를 들어 특정당 간부 교육을 하는 데 국가 예산을 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주의와 이미지 정치의 바람이 거센 우리나라야말로 이런 교육이 많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기자아카데미, 온라인 교육에 대해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에버트재단에서 기자교육까지 담당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그것은 언론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선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시민참여에 열려 있는 정부와 기업

그 다음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시민정치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여러 단체들을 찾아보았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참여재단. 민간기금으로 시민·정치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가 하는 일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일반시민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정부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식과 같은 것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일례로 하노버 시 대중교통계획을 짜는데 참여재단에서 일반시민 300명을 조직했다고 한다. 무작위로 300명을 선택해 편지 발송 및 방문을 통해 시민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꾸려 직접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한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시민위원회는 정부나 기업에서도 매우 환영한다고 한다. 이런 절차를 통해 시민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어 비용이 오히려 절감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시민위원회에 뽑히면 1주일 가량 회사에 출근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회사들이 기꺼이 휴가를 허락한다고 한다.

더디지만 같이 가는 것이 민주주의

이런 모든 과정들을 참여재단에서 기획, 실행하고 있었다. 시민정치교육을 현장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단체가 아닐 수 없다. 재단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조금 느리지만 같이 가는 미덕이 민주주의 가치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새만금, 평택 사건 등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독일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입시전쟁에 내몰리다가 대학에 가면 곧바로 취업전쟁에 내몰린다. 그 후로도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죽어라고 일에 매달린다. 이 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서 척박한 정치토양은 당연한지 모른다. 짧지만 독일 시민교육 단체 탐방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 하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낌없는 투자와 교육이 뒷받침될 때만이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더 튼실하게 자랄 것이다.

전진한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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