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지의 확보가 필요하다
남기철|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고독사 문제가 자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사망한지 5년이 지나 발견된 할머니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맥도날드’ 할머니의 사망소식도 전해졌다. 영등포역 근처에서 거리노숙인이 사망하였는데 역시 5일이나 지나서야 발견된 소식도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사실 누군가가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 사망했다는 류의 보도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워낙 빈번하다보니 특별한 내용이 덧붙여져야만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망장소가 특이하다던가, 사망한지 오랫동안 아무도 몰랐다던가, 혹은 사망한 사람이 이런저런 사유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사람이라던가 하는 경우이다. 이런 보도가 빈발하는 것은 역시 최근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떠난다는 것은 사회적 고립, 사회적 배제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중 누가 나중에 사망할 때,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싶어할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고, 고통스러운 사회적 현상이다. 사회적 관계와 지지망의 결핍 즉, 고립의 문제이고 또 더 근본적으로 빈곤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의 고독사 문제가 빈발하여 사회적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빈곤이 사회적 관계마저 급격히 침식해버린 상황이 문제의 대부분이다. 고독사 문제가 부각된다는 것은 사회적 지지의 취약성과 빈곤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사회 구성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안타까운 사연이라는 정서적인 동조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짚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고독사 문제의 배경에는 혼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 보통이다. 분명히 단독가구(1인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굳이 통계를 짚어볼 필요는 없다. 법적인 의미에서 가족이나 친족이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단위로서의 ‘가구’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구성되는 경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이 비율이 줄어들어 과거처럼 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혼자 사는 가구의 증가를 개인적인 선택이나 생활스타일의 변화라고만 할 수는 없다. 간혹 드라마에 ‘화려한 싱글’의 모습이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혼자 사는 가구는 독거노인과 같이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개인적으로 편하게 개성에 맞추어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생기는 현상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가구구성에 반영된 변화라 보아야 할 것이다. 직업적 측면, 부양의 역할과 구조, 경제적 여건 등이 원하던 그렇지 않건 1인 가구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예전에 4인 가구를 표준이고 정상이라고 여겼던 때가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가구는 단독가구의 급격한 증가를 포함해 가구구성 양상이 무척 다양해졌다. 이는 좋고 나쁘고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실재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때문에 결혼한 부부와 이들이 혈연으로 낳은 미성년 자녀가 함께 사는 가족, 가구만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정상가족의 신화도 이제는 낡은 것이다. 우리사회가 정상가족의 신화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가구는 사회적 낙인에 시달린다. 젊은층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여건, 사회복지의 취약성이 만들어낸 ‘합리적 선택’이다. 결혼과 출산을 회피하는 것을 책임감 없는 세대의 병폐라 비난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후안무치한 폭력이기도 하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아이 낳기 운동을 정부가 전개했던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런 방식의 계몽운동을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면에 깔려있는 1인 가구에 대한 낙인, 정상가족의 신화는 오히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1인 가구의 증가상황에 비추어 우리의 사회체계나 안전망의 적절성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숙인이나 독거노인은 결혼하기가 싫거나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해서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다. 젊은 싱글족들도 결혼과 출산을 싫어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빈곤과 고립에 시달리는 1인 가구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지원을 원하고 있는지, 1인 가구에게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는 어떤 모습인지 모색해야 한다. 유효수요를 따지는 시장에 맡겨두면 소비력이 있는 화려한 싱글에게만 필요가 충족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1인 가구의 증가에 맞추어 사회복지체계의 민감성을 제고해야 한다. 4인 가구 표준 방식의 제도설계를 벗어나야 한다. 4인 가구 주거비를 산정하고 1인가구 주거비는 가구균등화지수를 적용해 서울에서도 9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임대료 금액을 산출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1인 가구 주거상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1인 가구의 복지욕구에 대한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형태에서도 가구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 기존에 가구 구성을 통해 해결해 왔지만 이제는 가구를 통해 충족되지 않는 복지욕구, 사회적 지지의 강화가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중요한 영역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복지예산 100조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복지가 발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어느 시점을 놓고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이 과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복지예산이 많아지고 복지가 발전하면 시민들이 받는 물질적 급여가 늘어나는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현대적 사회복지의 요체는 대면적인 휴먼서비스이다. 사회적 접촉과 관여(social contact and touch)의 보강을 통해 사회적 배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복지재정 효율화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선별적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따지고 소득인정액 기준이 조금 넘는 빈곤한 사람들을 외면하면, 이들에게는 비단 현금지원이 끊기는 것만이 아니라 공공복지의 사례관리체계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사회의 많은 독거노인이나 취약한 단독가구가 아무런 사회적 지지체계를 갖지 못한채 고립과 빈곤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부산에서 고독사 후 5년만에야 발견된 김 할머니도 기초보장수급자가 아니라 구청 공공행정의 사례관리 밖에 있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나타난 구청 관계자의 이러한 언급은 구청 복지담당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항변이겠지만, 우리나라 공공복지 수준은 고독사가 빈발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복지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접촉의 양과 질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공공의 사례관리를 포함한 복지인력 증가, 민간 사회복지 활동의 자율성과 융통성 격려는 고독사와 이에 선행하는 사회적 배제를 분명히 완화할 수 있다. 비근하게 우리나라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살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보강을 통해 실제 자살률을 낮추고 있다. 고독사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복지예산과 인력의 확보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가구구성을 감안하는 정책방향을 통해 충분히 완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고독사는 가구구성의 변화, 사회적 지지의 취약성, 고립과 배제의 증가, 복지의 취약성에 따른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몇몇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남의 문제도 아니다. 마지막 사망의 순간에 최소한의 인권과 지지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지지망을 확충하는 것은 사회복지의 중요한 방향이다. 복지는 도시락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도시락을 건네주며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회복지인력은 적절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선발되도록 욕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기초연금 공약을 파기하고, 장애수당 공약도 파기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도 줄이는 지금의 복지로는 곤란하다. 시민들은 이제 고독사의 문제가 남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고독사 보도를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해결하려는 대책을 원한다. 요즘 같으면 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보도통제’로 해결하려 들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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