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론은 보수세력의 개혁 회피 이데올로기”

학술단체 주최 ‘진보·개혁·정책’ 토론회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학술단체협의회가 총선 이후 변화된 정치지형과 관련한 시민사회운동의 담론 모색의 일환으로 ‘진보·개혁·정책’ 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11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보수관료와 언론이 생산하는 경제 위기론은 경제관료와 재계의 재벌에 대한 규제완화 요구로 이어지며 참여정부 경제개혁 추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경제위기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기적 구조개혁을 희생한 단기적 경기부양책은 개혁 후퇴”

김 교수는 경제위기론과 관련하여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3.1%), 기업투자와 가계소비의 내수 부진 등 한국의 경제상황이 대단히 불안하다는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경제지표의 비교분석 기간을 조금만 더 길게 잡으면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시아 주요국가의 GDP 성장률과 투자 증가율 추이, 한국의 저축률 및 투자율 추이 등 관련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GDP 성장률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신흥공업국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90년대 후반 대외경쟁력 둔화와 통화가치 하락으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주요국가의 실질소득은 모두 감소했고, 한국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투자부족 역시 한국만이 겪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면서 “국내 총투자율을 외환위기 이전인 96년도의 39%를 비교기준으로 삼아 현재의 투자부족을 과도하게 지적하는 것도 경제위기론을 과장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거시경제적 성과지표를 아시아 경쟁국과 비교분석한 것은 한국경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가해진 보수진영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상당부분은 세계경제 전체의 동시불황에 따른 문제, 또는 동아시아 국가 일반에 공통된 구조적 문제임에도 이를 마치 한국에만 고유한 특수한 문제로 호도하면서 경제개혁을 가로막았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장기적 구조개혁을 희생한 단기적 경기부양책은 장기적으로 개혁후퇴를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개혁후퇴-경제불안-개혁후퇴의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고 참여정부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 김 교수는 “민생우선, 경제살리기 실용주의 노선은 이런 기득권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한 타협 내지는 굴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우려와 비판을 보냈다.

김 교수는 참여연대 재벌개혁운동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에 대해서도 발언을 이어갔다. 김 교수는 “재벌기업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한국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재벌개혁운동의 목표가 재벌기업 또는 재벌그룹의 해체로 단순화될 수는 없다”면서도 “문제는 재벌기업의 생산력과 재벌총수의 지배권 사이의 관계의 문제로서, 우리나라 재벌 2세, 3세의 재벌총수 승계과정은 단 한 건도 사회적 정당성을 갖춘 경우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한 대안연대를 비롯한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사회적 협약 모델에 대해서도 “재벌그룹이 위기 탈출의 방법으로 사회적 협약 모델로 나가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주주자본주의 모델이 세계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이 민족주의와 친화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사회세력의 역관계는 유럽대륙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국내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부차화하는 민족주의 정서의 강화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성립을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재벌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 가능하다”

김 교수의 발제 이후 대안연대 소속 이찬근 인천대 교수의 반론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참여연대 재벌개혁운동은 SK그룹이 소버린에 의해 해체된 이후 한국의 대중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관치금융의 폐해 방지를 위해 외국자본에 국내 금융기관이 넘어가면 무엇을 가지고 산업정책을 펼칠 수 있는가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모두 발언을 통해 김상조 교수의 발제에 대한 반론을 폈다.

이 교수는 “김 교수는 재벌이 사회적 대타협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면 재벌의 경영권 위기가 도래하고, 노동 역시 위기에 처하며, 정부 역시 경제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이런 구조가 한국식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케 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 대타협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한 경영권 인정, 재벌이 제공하는 기금의 사회경제적 활용, 대기업의 금융기관에 대한 지배권 확립을 위한 국민연금 출자, 노동시장 유연화 제한, 노동자의 경영확대 허용과 산별노조로의 유도,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등 10개 과제를 제시했다.

정태인 동북아균형발전위 기획실장 역시 “개인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이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살 길이라고 본다”면서 이찬근 교수의 주장에 동의를 표시했다. 정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타협 모델을 중심으로 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내 개혁진보 인사들의 입지 좁다”

정 실장은 개혁진보 인사의 내각 진입 이후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 실장은 “정부 내부에서 관료들과 개혁진보 인사의 싸움은 그 수에서 300대 5의 싸움이며, 대단한 이론가가 아니라면 대부분 관료들에게 넘어가게 된다”고 내각에서 개혁인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설명했다. 정 실장은 “그나마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같은 분이 내부에서 개혁을 위해 싸우는 분들”이라고 평가했다.

정 실장은 “만약 대통령이 우리 쪽(참여정부 내 개혁진보인사들) 얘기를 들어준다면 사회적 협약을 기치로 내 걸 것”이란 의미 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개혁진보 인사들의 어려움 호소에 대해 토론회 참석자들의 반론이 터져 나왔다.

이찬근 교수는 “이정우 위원장이나 강철규 위원장 같은 분이 싸우는 것은 좋은데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가 불분명하다”면서 개혁기조의 불분명성을 비판했다. 김상조 교수는 “YS나 DJ 정부 때 입각한 개혁진보 인사들 역시 언제나 자신들이 반개혁 관료들의 포로가 돼 있다 주장하면서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하는데 인색했다”면서 참여정부에 참여하는 인사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 역시 “그렇다면 그런 반개혁적인 경제관료를 누가 임명했나”라면서 “이미 대통령의 선택은 경제관료를 임명하는 순간부터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선택한 것”이라며 정 실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학술단체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성공회대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 참여사회연구소 등 2개 단체가 공동 주관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장하진 충남대 교수가 ‘진보개혁세력의 정책역량 제고의 필요성과 방향’, 조희연 교수가 ‘현단계 한국의 진보적·개혁적 정책생산구조의 현황과 과제’, 김상조 교수가 ‘경제정책의 개혁성·진보성 강화를 위한 과제’, 조돈문 교수가 ‘민주노동당과 사회적 의제화의 정치’를 발제했다.

토론자로는 송영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정태인 동북아균형발전위원회 기획실장, 이찬근 인천대 교수, 김대영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홍일표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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