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원칙, 현안 해결 미명 하에 훼손되어서는 안돼”

100인 선언 전성인 교수 ‘금산분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설계에서 중요 원칙’ 강조

2005년 11월 3일, 전국의 경영ㆍ경제학자 100인은 현 정부의 재벌개혁 및 금융개혁 정책의 후퇴를 비판하고, 중단없는 시장개혁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성인 교수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원칙임을 강조하며 현안 해결이라는 명분 하에 이 원칙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다음은 전성인 교수의 발언 내용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설계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으로 우리 사회가 그간 여러 단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오면서도 꾸준히 지켜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재계와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현안 해결이라는 명분 하에 이 원칙을 붕괴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우선 이 원칙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금융기관은 자금을 빌려주는 과정을 통해 자원의 제2차적 배분과정을 수행한다. 자원의 1차적 배분은 가격체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투자를 집행하는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은 기업의 투자행위에 대해 감독하고 평가하고 돈을 빌려줄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금산분리의 당위성이 발생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가 불필요하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되지 않는 다는 것은 다시 말해 감시자와 감시를 받는자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근한 비유를 들어보자. 수능시험에서 공정성을 유지하고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우선 각 고사장에 감독관을 배치한다. 그런데 만약 그 감독관이 수험생의 친척이거나 아버지라면 그 시험감독의 공정한 감독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내 아이가 시험을 치기 위해 고사장에 들어갔는데 그 고사장의 시험감독이 내 아이와 함께 시험을 치르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라면 그 시험이 공정하게 치러지고 있다고 낙관할 수 있겠는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수능시험의 비유에서 확인되듯 감시자와 피감시자를 분리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을 선정해야 하는 금융기관의 자원배분과정을 고려할 때 필수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들어 재계와 일부 언론이 금산분리는 중요하지 않거나 의미가 없으며, 외국에도 없는 규제라거나 심지어는 금산분리에 있어 가장 엄정했던 미국에서도 그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이를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금산분리는 언제나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규제에 의해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자기 이해를 위한 궤변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금융감독의 책임을 맡고 있는 기관의 수장이 이들의 주장과 같이 금산분리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단순한 심정표출의 수준을 넘어 감독기관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책임과 권한에 비추어볼때 심각하게 부적절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통치자는 이와 관련해 감독기관 수장의 역할에 대해 엄정한 평가를 다시해야할 것이다.

시장개혁을 철저히 하라는 우리의 촉구는 다시말해 그간 추진해 온 시장개혁이 철저하지 않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개혁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의 목표의식과 역량이다. 작금에 이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시장개혁과 금융개혁의 후퇴는 개혁을 추진해야 할 ‘사람의 의식과 역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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