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특감, 재경부도 감사대상에 포함시켜야

공론화 과정 밟지 않는 카드사 대책은 또 실패할 것



감사원이 카드사 부실의 원인에 대한 특별감사 방침을 정하고 10일부터 예비조사에 착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의 이른바 ‘카드대란’ 이후 한국경제의 악순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360만명의 개인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 카드사 부실에 대해 감사원이 정책감사에 착수하기로 한 것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조치로서 환영한다.

시장경제에서 부실기업의 발생은 불가피한 일이며, 부실발생시 경영진, 주주, 채권자, 소비자 등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나누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하나의 산업 전체가 회생불능의 부실에 직면하였다면, 더구나 그 산업이 금융산업이라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융산업의 건전성은 국민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금융산업의 부실에 따른 비용은 사전적 예금보험의 제공(그것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을 통해, 그리고 사후적 구제금융의 제공(그것이 법령에 의한 것이든 관치금융에 의한 것이든)을 통해 사회적 비용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카드산업의 부실은 이미 한국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사회적 비용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나의 금융산업 전체가 부실덩어리로 전락한 현 상황에서도 정부당국은 자신의 정책실패와 감독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금융시장 참가자의 행동규칙(rule of game)을 정하고 그 규칙의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것은 한시도 방기되어서는 안될 금융정책·감독당국의 권한이자 의무이다. 그 권한과 의무의 이행을 방기한 책임은, 카드사용 확대를 통한 소비진작 내지 세원발굴의 ‘성과’를 이유로 면책될 수도 없으며 이른바 규제개혁위원회의 ‘딴지걸기’를 핑계삼아 회피될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정책실패와 감독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당국이 카드사 지배주주 및 경영진, 그리고 개인신용불량자의 책임을 엄격히 추궁할 수는 없다. 정부당국의 도덕적 해이가 곧 시장참여자의 도덕적 해이의 근원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감사원의 카드특감은 지체없이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감사대상 역시 금감위 및 금감원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금융감독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재경부와 금감위로 이원화된 이상, 감사원은 재경부와 금감위 모두를 대상으로 엄격한 감사를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의 정책실패와 감독실패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미래에 이러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과거의 쓰라린 실패경험으로부터 얻은 소중한 교훈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는 악순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작년 하반기 카드사 건전성 감독기준이 갑자기 강화된 이후 올해 들어서는 끊임없이 그 기준이 완화됨으로써 결국 사실상 무(無)규제 상태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올 초 이른바 3.17대책과 4.3대책을 통해 부대업무 비중 축소 시한을 1년 연장하고, 연체율 산정시 그 대상을 1개월 이상 연체채권만으로 축소하였고 산정방식 역시 관리자산기준에서 대차대조표기준으로 변경하였다. 6월에는 조정자기자본비율 산정시 ABS 매각자산의 포함비율은 최소한으로(10%) 제한하였다. 9월에는 부대업무 비중 축소 시한을 다시 2007년말까지로 재차 연장하였으며, 대환대출채권은 부대업무 비중 산정에 포함하지 않기로 하였다. 10월에 들어서는 적기시정조치 발동 기준에서 연체율을 빼는 대신 감독당국의 재량에 의한 MOU 체결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최근에는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완화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카드사 경영수지 개선의 명목으로 카드이용자에게 부과되는 수수료를 인상하는 조치가 계속 이어졌다.

물론 기존의 카드사 건전성 감독시스템에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개선해야 한다. 문제는 감독시스템의 변경이, 투자자와 저축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카드사의 기존이익을 보호하고 카드산업의 기존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감독기관과 피감기관 사이의 암묵적 담합하에 건전성 감독기준의 틀을 허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카드산업의 정상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참여연대는 지난 10월 21일 금감위에 ‘카드사 감독체계의 현황 및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와 함께 이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방안의 전체 틀을 제시하면서 관련전문가, 업계, 신용카드이용자 및 시민단체로부터 공개적으로 검증을 받는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을 요청하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물론 아직 이에 대한 금감위의 반응은 묵묵부답이다.

최근 금감위는 내년 초 추가적인 카드사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다시 한번 분명히 요구한다. 카드사 감독시스템의 개편이 필요하다면, 감독기관과 피감기관 사이의 암묵적 담합의 틀을 벗어나서, 정확한 정보공개와 투명한 논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올 초 카드대란 당시 감독당국의 어느 고위관계자는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스스로의 실패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것이 피감기관과의 암묵적 담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부실을 더욱더 키우는 관치금융일 뿐이다.

참여연대는 이번 감사원 특감이 재경부와 금감위의 정책적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는 작업이 되기를 기대하며, 그 결과를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라도 감독당국은 카드사 감독시스템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향에 대해 투명한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한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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