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경제강좌 2008-09-30   1122

[시민경제교실] 경제위기,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1. 문제의 제기

경제가 중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현재 경제가 어렵다는 데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현 경제가 위기라는 데에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9월 첫째주에 정부와 일부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외국인 보유채권의 만기 연장이 순조롭게 되자 마치 모든 위기가 눈녹듯 사라진 것처럼 경제위기를 설파하는 학자들을 정신나간 사람으로 매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다.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한국 경제가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아직도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위기를 터뜨릴 기폭장치 여러 개중 하나가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위기 그 자체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기폭장치는 얼마든지 있고 그 중에 아무 것이나 터져도 경제 위기는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보라고 가르치자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정부는 위기 그 자체를 해소하려고 하지 않고 기폭장치 몇 개를 그 때 그 때 해체하는 데에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다.

경제 위기는 이제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 특히 여러 개의 기폭장치중 하나였던 미국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뒤흔들면서 우리 나라의 경제위기도 이제 점화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제는 위기냐 아니냐를 한가하게 논하기보다는 어떻게 이 위기의 경제적 귀결을 다스릴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하에서는 경제위기의 실상과 그 경제적 효과를 검토하고 서민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의 기본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2. 위기상황의 진단

(1) 물가 불안

모든 상품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계란이 금란이 되고, 휘발유는 가격상승세가 한풀 꺾였다고 해도 역시 작년에 비해 아직도 엄청나게 올랐다. 돈 가치가 없음을 절감하는 것은 부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는다. 부자들은 골프 여행을 나가면서 유류할증료가 오른 것을 실감하고, 기러기 아빠들은 자녀에게 학비를 부치면서 휜 허리를 한 번 더 꺾고, 서민들은 나날이 장바구니가 가벼워지는 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 지표로 본 물가도 많이 올랐다. 그동안 쭉 2%대 중반에 머물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작년말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1년 전에 비해 이번 달에 물가가 얼마나 올랐나 하는 것을 측정할 때 흔히 사용하는 경제적 개념이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이다. 그런데 이 수치가 작년 12월부터 상당히 급박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작년 12월에 처음으로 물가안정목표 밴드의 가장 꼭대기인 3.5% 수준을 뚫고 고공비행을 시작하여 올해 4월에 4% 벽을 돌파하고, 연이어 6월에는 5% 벽마저 간단히 돌파하였다. 그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계속 5% 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 수치는 작년(2.5%)이나 재작년(2.2%) 물가상승률의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이다.

(2) 외환시장의 불안

가을 하늘이 청명한 지난 9월 29일 환율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또 하나의 진기록을 연출하였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장중 한 때 1200원을 돌파했던 것이다. 비록 당국의 개입으로 보이는 달러화 매도에 의해 종가는 이 수준 밑으로 떨어졌지만 이 날의 상황은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불안을 요약하기에 충분했다. 왜냐 하면 환율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이날의 환율 급등은 그 전주간에 외환당국자가 외환시장의 불안심리를 다스리기 위해 “외화자금시장에 외국환평형기금이 보유한 외환을 헐어 100억불을 공급할 것”임을 밝힌 이후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당국을 믿지 않는다. 이것이 위기의 표상이다.

시장이 당국을 믿지 않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충분하다. 새 정부가 집권한 이후 외환정책에 관한 한 한번도 시장에 믿음을 줄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만수 장관으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경제팀은 오히려 시장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원화의 평가절하를 용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3월의 정책은 집권 초반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둘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이후 외환보유액을 동원하여 환율방어에 나섰던 어리석은 정책은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국의 착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외환보유액은 충분할 정도가 아니라 남아도는 상황이다. 둘째 외환당국은 약간의 외환을 풀어 언제든지 시장환율을 맘에 맞는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 셋째 외화는 필요할 경우 외국에서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하나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지금 환란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선 외환보유액은 충분하지 않았다. 6월 당시 알려졌던 외환보유액은 몇 달 전의 것이었는데 대략 2,800억불 수준이었다. 물론 이 수치는 상당한 것이다. 11년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그 때는 외환보유액 대신 외환보유고라는 표현을 썼다)는 대략 300억불 수준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는 자본시장 개방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간과한 데서 연유한 대단한 착각이었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경제에서 적정 외환보유액이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측면의 동향을 반영한 수치와 자본시장 측면의 규모를 반영한 수치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3개월치의 경상 수입액에 만기 1년 미만의 외채(이를 유동외채라 한다)를 더하고 여기에 추가로 자본시장에 들어온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의 일정비율을 고려한 금액을 적정 외환보유액이라고 할 수 있다. 수치를 차례차례 대입해 보면 어떻게 계산해도 2800억불이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두 번째로 외환시장 개입은 잘만 하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축소하는 데 기여할 수는 있어도 환율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런데 외환당국은 자신의 역량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상승하는 환율을 거꾸로 하락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 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된 외환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말았다.

외환시장의 불안을 현실화시킨 결정적인 오판은 외화자금의 조달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외환당국은 9월위기설이 불거졌던 9월 초 10억불 수준의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발행을 한 때 시도했었다. 원한다면 외환당국은 언제든지 외환을 조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시장참가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근거없는 자신감은 차디 찬 현실을 접하면서 급속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국제 금융시장은 우리나라 채권에 대해 호의적인 가격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외환당국은 가격이 맞지 않자 슬그머니 발행을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그후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사실상 대외 자금조달 창구가 막히고 말았다. 외환을 원하는 시점에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다는 세 번째 착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9월 29일 미국 하원은 금융 구조조정을 위한 7천억불 상당의 구제금융법안을 찬성 205표 대 반대 228표로 부결시켰다. 국제 금융시장은 문자 그대로 “블랙 먼데이”였다. 미국 다우 산업지수는 777포인트가 하락하여 포인트 하락폭으로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고, 전세계 증시도 단 하나의 예외없이 대폭락을 보였다. 위기는 이제 내연의 단계를 넘어 열전으로 발전하였다.

금융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확하게 그 용도가 지정된 재정적, 혹은 금융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은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 이후에나 가능하다. 경제팀의 경질이 첫 번째로 중요한 과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위기의 경제, 사회적 효과

(1) 피할 수 없는 결론: 고금리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위기의 핵심적 내용은 국내적으로는 물가불안, 대외적으로는 외환시장 불안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두 불안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원화의 가치하락이 그것이다. 물가상승이란 원화가 실물재화에 대해 구매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환율상승이란 원화가 외국화폐에 대해 구매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는 것은 앞으로 원화의 가치가 더욱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원화의 가치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될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고금리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연 이자율이 10%인 상황에서 돈 100원을 남에게 빌려 주었다. 1년뒤 이 사람은 원리금으로 110원을 받았을 것이고 당초 원금 100원을 제외하면 10원의 이자소득을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이 기간동안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이다. 예를 들어 이 기간중 원화의 (실물 재화에 대한) 가치가 10% 하락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원리금으로 받은 110원으로 실물 재화를 살 경우 당초 돈을 빌려줄 시점의 수량밖에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즉 실질 이자소득은 0이 된다. 이런 상황이 명약관화하게 되면 돈을 빌려 주는 사람은 원화의 가치하락을 이자율에 반영하여 훨씬 높은 이자율(이 예에서는 21%)로만 거래하려고 할 것이다.

(2) 고금리의 경제, 사회적 효과

날씨가 쌀쌀해지는 것보다 더 빨리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이미 시중의 대출금리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언론에는 대출금리 수준이 지난 2001년 이후 7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반갑지 않은 뉴스가 톱을 달리고 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금리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이미 국제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원화의 대실물, 대외국화폐 가치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IMF 외환위기 직후처럼 엄청난 고금리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고금리는 경제의 모든 부분에 브레이크를 건다. 투자도 위축되고 증시도 위축된다. 집값도 떨어진다. 소비도 위축된다. 자산가치는 떨어지고 부채부담은 늘어난다. 그러니 가계건 기업이건 모든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 오직 유리한 사람은 화폐를 가지고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단순한 물가불안이 아닌 외환시장 불안과 겹친 금융위기 속에서는 이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달러를 가진 외국인은 환란 직후 이런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각국이 달러화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조차 호사를 누리기 쉽지 않다.

따라서 경제 각 부문이 이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부담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 약자부터 쓰러지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해고될 것이고, 소득에 비해 부채가 많은 사람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신용도가 약한 중소기업은 부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은 청운의 꿈을 펴 보기도 전에 꽁꽁 얼어붙은 취업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중 학자금 대출로 어렵게 어렵게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원리금을 연체하게 되어 조만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어쩌면 파산자로 인생의 첫발을 내디디게 될 지도 모른다. 하릴없는 중년층은 직장에서 해고될 것이다. 취업이 안되는 아들, 학교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하는 딸, 해고된 아빠,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해 애태우는 엄마, 해고된 비정규직 근로자,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님 등 중에 일부는 인생을 비관하여 매우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확히 11년 만에 우리는 또 다시 똑같은 벼랑 끝에 다시 서게 되었다. 조금 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4.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누구도 앞으로 1년 이내에 태평성대가 오게 해 줄 수는 없다. 747이라는 비행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절대로 뜨지 못할 것이다. 해야 할 것은 첫째는 부질없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다. 편견과 구태에 사로잡힌 현 정부는 이미 충분히 많은 잘못을 범했다. 금쪽같은 외환보유액을 물 쓰듯 겁 없이 써버린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과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투자은행들이 넘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을 강행하고 산업은행을 민영화해서 유수한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욕”을 보이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재정을 충실화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기는커녕 극소수의 부자를 위해 세금을 깎는 정책에 혈안이 된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가불안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미리미리 신용을 통제하여 이 지경까지 되지 않도록 관리하기는커녕 하반기에는 물가불안이 완화될 것이라면서 금리인하를 주장하던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환상을 버린 후 해야 할 일은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우선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현 경제팀을 전원 경질해야 한다. 외환정책에 실패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기 속에서 모든 국가가 건전성 규제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겁 없이 규제완화를 외치는 전광우 금융위원장, 방향타를 상실한 경제정책을 손놓고 바라보기만 한 박병원 경제수석, 외환위기와 물가불안의 가능성을 경고해야함에도 외환보유액의 탕진에 일조한 이성태 한은 총재 등은 모두 경질해야 한다.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재정을 건전화해야 한다. 피할 수 없이 도래하는 고금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약자의 보호다. 이것이 없이는 사회의 통합을 기할 수 없고, 사회의 통합이 없이는 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부세 개편은 한가한 소리이다. 당장 조세수입의 충실화를 기하고 그 재원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과중한 채무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통합도산법상의 개인회생절차도 정비하고 제2의 출발을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확하게 그 용도가 지정된 재정적, 혹은 금융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은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 이후에나 가능하다. 경제팀의 경질이 첫 번째로 중요한 과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경제철학을 채택하여 경제를 운영하겠다는 가장 가시적인 상징이다. 어쩌면 한국 경제는 바로 그런 변화를 가장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 10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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