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09-04   523

[기고] 박근혜, 국민 버리고 재벌 택하나

[경제 민주화 워치] <7> 경제 민주화와 경제 활성화, 빅딜의 오류

김주일 한기대 교수

정부가 최근 경제 활성화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들 대책은 개별 대기업에 특혜를 주거나 기업 관련 규제를 완전히 푸는 것으로 채워졌다. 한 기획재정부 인사는 “대기업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그래야 고용률 70% 등 대통령 공약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주 대통령과 재벌 회장들의 점심 식사로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온 이야기가 정부가 경제 관련 규제를 풀면 재벌이 투자를 한다는 빅딜 이야기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은 이를 받아, 경제 민주화가 후퇴하고 이제 경제 활성화의 시대가 온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마치 경제 민주화의 얼굴에서 경제 활성화의 얼굴로 탈을 바꾸어 쓴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또한 경제 민주화가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논리로 들린다. 이 글은 경제 민주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경제를 살리는 진정한 길이며, 빅딜이야말로 경제 정책의 오류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재벌 위주 정책, 이게 박근혜 정부 진짜 얼굴?

현재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 활성화는 재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것이 경제 민주화를 내세웠던 현 정부의 진짜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러한 흐름 뒤에는 신공안정국을 조성한 것을 비롯해 재벌들을 불러 모아 줄 세우는 정부의 실세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벌을 성장시킨 3공화국 관련 인사들이며 이들의 머릿속에는 경제와 재벌이 동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이들의 행태를 애써 외면하며,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와 경제 활성화의 관계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빅딜의 핵심은 특혜와 투자 약속의 교환이다. 그런데 신문을 보고 있자면 정부와 조중동이 이야기하는 경제 활성화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과 재벌의 회동 결과는 정부가 경제 관련 규제를 풀면 재벌이 돈을 풀겠다는 빅딜이었고, 이것은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더 아리송하기만 하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경제 활성화는 재벌이 돈을 투자하여 경기 부양을 지원하면 이들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논리이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부당 이득을 규제할 방안으로 도입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등을 없애주는 조건으로 재벌이 투자 약속을 한다는 것이다.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부가 재정 금융 정책을 쓰고 중소기업을 살리고 내수 시장을 살려야 하는데. 돈을 곳간에 쌓아 놓고 있는 재벌의 돈을 가져다 쓰자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이들 재벌은 진짜 돈을 풀어 투자를 할까? 그나마 약속의 진정성은 있는 것일까? 먼저 경제 민주화를 후퇴시켜 경제 관련 규제를 풀면 재벌이 이에 화답하여 투자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재벌 지원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재벌 등과 만나 ‘선 규제 완화, 후 투자’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0대 그룹의 투자 성향은 전체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보다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던 걸 감안하면, 실제 투자로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기획재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 5년간 10대 그룹의 투자 성향(설비투자/영업이익)은 전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보다 낮았다. 2008년 10대 그룹의 투자 성향은 1.03이었으나 2010년 0.79, 2012년 0.93으로 4년간 1을 넘지 못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2008년 1.13을 시작으로 2011년 1.07까지 매년 1을 넘었고 지난해에만 0.84로 떨어졌다. 중소기업들은 지난해를 빼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4년간 매년 영업이익보다 더 많은 설비투자를 했다는 뜻이다.

아직도 대기업의 투자 성향을 믿고 싶고 이들밖에 보이지 않는 정부가 문제이다. 재벌의 투자 가능성을 믿고 싶고 이들의 눈치만 살피는 정부의 경제 활성화 정책이 정부의 첫 번째 오류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두 가지 조건

진짜 경제 활성화는 무엇인가?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경제 질서 및 규범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경기 부양의 문제이다.

경제 활성화의 첫 번째 조건은 우리 경제와 시장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경제 활동을 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투자하고 가치를 창출하며,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고 대우받으며, 협력업체는 납품하고 수익을 얻으며, 소비자는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상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들 시장 혹은 경제의 구성 주체들이 소외받지 않고 경제 활동을 잘하도록 룰을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 재벌 위주의 정책으로 소외받은 중소기업, 중소상공인, 노동자 및 소비자의 문제가 있었다. 재벌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서 다양한 경제 주체의 경제 활성화 의지를 북돋우고, 성장 위주에서 경제 주체 간의 균형 잡힌 질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경제 민주화는 시장 및 경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각자 원하는 바가 있고 이해관계자 간에 원하는 바가 상충할 때 그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고, 또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룰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정부 내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공정거래위원장이 “투자·경기 활성화가 필요하니까 경제 민주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공정 거래 차원의 경제 민주화는 규제가 아니라 규범”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규범이라는 이야기는 프레임이자 판을 새로 짜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경제 활성화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경제 민주화라고 말 할 수 있다.

경제 활성화의 두 번째 조건은 경기를 활성화하고 호경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투자와 내수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민간의 투자와 소비자의 내수가 위축되면 정부가 재정 금융 정책을 쓴다는 사실은 경제학의 기초이다. 물론 민간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먼저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소비자가 돈이 없지만 국가 경제를 위하여 빚을 지더라도 소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고 어쩌면 정부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정부와 재벌의 빅딜은 경제 활성화의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을 맞바꾸자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투자를 한다면 노동자, 협력업체, 소비자가 원하는 바와 권리를 규제하여 대기업이 원하는 바를 다 들어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빅딜이 노동자, 협력업체, 소비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가능한 일인가?

시장경제에서 특정 이해관계자를 밀어주는 대가로 돈을 풀라는 이야기는 시장의 룰과 원리를 깨는 반시장적 행태이자 노동자, 협력업체, 소비자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경제 활성화 의지를 꺾고 동기 부여를 저해하는 행동이다. 이처럼 빅딜을 통하여 시장 질서를 깨고 다시 재벌에게 회귀하는 것이 정부 정책의 두 번째 오류이다.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현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로는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경제 살리기에 한계가 있다는 반성에서 경제 민주화의 화두가 출발하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협력업체와 벤처가 살아야 하고, 동기가 부여된 노동자가 적합한 대우를 받으며 생산성에 기여해야 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경제 민주화로 풀어야 한다. 집권 초기부터 경제 민주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아닌, 이미 한계를 보인 대기업 중심 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경제 민주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옳은 길이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하여 경제 활성화를 빙자해 특정 재벌에게만 혜택을 주며 시장 질서를 저해하려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 되며 재벌 공화국의 길을 가속화할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우리 경제의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또 그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시장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이를 통하여 형성된 경제 활성화가 진정한, 안정적인 경기 부양이 될 것이다. 재벌 투자를 유도하기 위하여 프레임을 건드리는 정책은 현 정부의 진정한 얼굴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경제 민주화와 경제 활성화, 이 두 정책의 포기이자 정책의 오류이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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