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09-10   551

[기고] 복지국가 시대,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경제 민주화 워치] <8> 조세 정의 실현과 복지 제도 확충이 시급하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공안 정국이 경제 민주화와 세제 개혁, 그리고 복지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덮어버리고 있다. 본래 공안(公安)의 사전적 의미는 ‘안녕과 질서가 평안히 유지되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평안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고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실체적 행위도 막아내야 하지만,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내부의 불안 요인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경을 극복하고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성장의 결실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경제성장률과 고용 창출력이 둔화되면서 1990년대 이후 양극화와 분배 구조의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 가구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2년 0.254에서 2012년 0.310(전체 가구 기준 0.338)으로 증가하였고, 중위 가구 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곤 가구의 규모는 무려 17.6%에 달하면서 중산층이 위축되고 있다. 자산의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는 더욱 심각하여 계층 간 이동성을 제약하고 세대 간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2 가계 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상위 20% 가구의 순자산액은 하위 20% 가구의 319배에 달하고, 순자산으로 측정된 지니계수는 0.625를 기록하였다.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의 심화로 인해 사회적 위험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매우 취약한 상태다. 다수의 서민층이 사회보험과 공공 부조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OECD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은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주된 공약으로 제시한 박근혜 후보의 정책 방향은 옳았다. 그래서 국민들이 표를 던진 것이다. 문제는 복지 공약이 재정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는 경기 침체로 증세가 어려우니 복지 공약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현재의 ‘저부담 저복지’를 넘어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평 과세를 통한 복지 재원의 확보가 불가피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누진적인 조세 체계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세 체계가 공정하지 않을 경우 납세자들은 어떠한 증세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의 지하 경제 양성화는 적절한 조치로 평가되지만, 또다시 문제는 지하 경제 양성화만으로는 복지 공약의 이행에 필요한 50조 원의 추가적인 세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8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13년 세법 개정안을 제시했으나 고소득자, 고액 자산가, 재벌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외면함으로써 중산층의 저항을 초래하였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조세 정책은 자본 형성과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유리한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금융 및 산업 자본에 관대한 세제 혜택, 외국인 투자 자본과 근로소득에 대한 우대 세제, 재벌 기업의 편법 증여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관대한 처벌과 미약한 조세 부과, 저임금을 보충하는 각종 조세 감면 정책, 낮은 수준의 고용주 사회보장기여금 등 그 사례는 조세 체계 전반에 만연해 있다. 더욱이 재정 지출은 토건 및 경제 사업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전반적으로 공공 자원의 배분 효율성이 낮은 상태이고, 분단체제로 인한 국방비의 과도한 지출이 타부문의 재정 지출 여력을 잠식하여 복지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 결과 조세 및 이전지출의 빈곤율 감소 효과는 34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소득 불평등 완화 효과는 칠레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체 세수에서 간접세의 비중이 50%를 넘는 역진적인 조세 체계를 고려할 때 소득세와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높이고 상장주식과 파생상품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도 과세해야 한다.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낮은 수준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수의 비중이 높은 것은 재벌 대기업으로 경제력 집중, 낮은 노동소득분배율, 법인사업자의 증대 등으로 과세 대상이 크기 때문이지 개별 기업의 세 부담이 높기 때문은 아니다. 더욱이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시킬 경우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총 조세 비용은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크게 낮아진다. 또한 부동산에 대한 거래세를 낮출 경우 보유세를 강화하여 지방정부의 세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반토막을 낸 종합부동산세는 지방정부의 재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재산 과세는 시장에서 교란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세목으로 평가된다. 고소득자. 고액 자산가, 재벌 대기업에 제공되는 세제상의 혜택을 축소시켜 과세 기반을 확충하는 노력은 공평 과세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재정 지출 구조의 균형을 회복하고 재정 지출의 사회 투자 기능과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은 OECD 회원국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지만, 국방과 경제 및 주택 관련 재정 지출은 평균의 2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와 같이 특정 부문에 편중된 재정 지출은 분단국가의 현실과 개발연대 시기의 구조적 특징이기도 하다. 미래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평화와 공존의 기치 아래 국방비의 지출 요인을 줄이고 토건 지출을 축소하여 사회 투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를 고려할 때 사회 투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는 집권 기간에 재량 지출의 7% 축소와 SOC 투자 구조조정 등 세출 절감을 통해 81조5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시장경제는 경제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을 근간으로 하며, 개인의 선택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기회의 공평뿐만 아니라 자유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물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또한 불평등한 분배 구조는 내수 위축과 계층 간 갈등을 초래하여 경제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공평한 분배를 위한 재정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복지 제도를 확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지 말고, 2014년 예산안에도 세출 절감을 통한 복지 재원 마련 방안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공약이 정책으로 구체화되지 않을 경우 국민들은 표로 심판할 것이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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