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 유인도, 집행 의지도 없는 공정거래법, 마침내 ‘사망선고’

시행령 개정 당정협의는 규제 준수가 아닌 로비에 열중하라는 메시지

재벌에 굴복한 정부가 노조ㆍ농민ㆍ영화인에겐 준법 요구할 자격 있나



어제(2일) 열린우리당과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 졸업기준에 대한 대폭적인 완화와 예외인정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방안을 놓고 당정협의를 가졌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재계의 요구에 밀려 재벌규제법으로서의 공정거래법을 사실상 완전히 형해화하는 이번 시행령 개정 논의를 강력히 비판하며, 정치적 고려에 의한 규제의 무력화와 원칙의 훼손이 갖는 위험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첫째, 정부출자기관이 30%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구조조정기업 출자에 대한 예외 인정 확대는 ‘구조조정의 비용 부담주체와 그 편익 수혜주체를 달리하는 전형적인 정책적 모럴 해저드’이다. 정부출자기관인 캠코, 산은 등이 출자한 구조조정기업은 재벌의 무능ㆍ불법 경영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이다. 국민의 부담을 통해 회생한 기업들을, 외국자본에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빌미로 또 다시 재벌에게 넘기려고 하는 것, 더군다나 출총제의 예외인정을 통해 ‘남의 돈’으로 인수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결국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입찰에서 남은 6개 컨소시엄 중 가장 유력하다고 하는 금호, 두산, 한화 등이 모두 출총제에 걸려 있는 현실에 대한 정치적 고려라고밖에 볼 수 없다.

둘째, 출총제 졸업기준의 하나로 지배구조 모범기업의 기준을 완화하는 것 역시 조삼모사의 전형적인 예다.

특히 내부거래위원회 요건을 ‘4인 이상, 전원 사외이사’에서 ‘3인 이상, 2/3 이상 사외이사’로 완화한 것은, 대규모 상장법인ㆍ공기업ㆍ비상장금융회사 등에 대해 법령상 의무화된 감사위원회와 동일한 요건으로 완화한 것이다. 이 정도의 내부거래위원회 요건은 대상기업들에게 추가적으로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며, 이는 결국 기업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집중투표제를 제외한 나머지 세가지 요건으로 ‘지배구조 모범기업’ 요건을 충족해 출총제를 졸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더구나 내부거래위원회의 사전심의 대상이 되는 거래의 기준도 대폭 완화함으로써, 내부거래위원회의 도입취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게 되었다.

셋째, 비록 차후 검토과제로 넘겨지기는 했으나, 지주회사 규제의 완화를 시사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선진국의 경험에 따르면, 지주회사가 부도에 이르는 경우는 대부분 자회사의 부실보다는 지주회사 자체의 부실에 기인한다. 그런데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대폭 완화하고, 손자회사의 사업관련성 요건을 완화하게 되면, 결국 지주회사가 부채자금을 통해 자회사ㆍ손자회사를 방만하게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이는 현 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 지주회사의 대규모 부실을 초래할 위험성을 유발하게 된다. 눈앞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지주회사제도의 건전성을 유지할 최소한의 규제조차도 허물어버리는 당정협의는 또 한번 구제금융을 도입해야 할 위험을 안고있는 것으로 폐기처분해야 마땅하다.

개별 재벌의 특수한 사정을 모두 적용제외ㆍ예외인정으로 수용하는 이번 시행령 개정 논의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규제를 준수하기 보다는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로비에 열중하라는 것이다. 현행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만으로도 이미 전체 출자총액의 반 이상이 규제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여당 안에서도 출총제는 올해 말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종료와 함께 소멸되는 것으로 공언하고 있는데, 어느 재벌이 이를 준수하겠는가? 규제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을 훼손하는 개정 논의는 규제의 실제효과를 무력화하고, 규제비용만을 높이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 오게될 것이다.

재계의 요구에 대해서는 ‘밀면 밀리는’ 정부가 노조와 여타 이해관계자들에게 ‘법을 준수하고, 사회대타협을 위해 먼저 양보하라’고 요구한다면 이 요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정부는 말로는 타협과 협력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각 경제주체들이 로비와 탈법에만 몰두하도록 잘못된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다.

재계가 지킬 유인도 없고, 정부가 집행할 의지도 없는 공정거래법은, 재벌규제법으로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개혁을 표방하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딱 3년만에 도달한 참담한 몰골이라 할 수 있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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