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금감위의 “경찰” 배지를 박탈하라

수사를 거부하는 “경찰”

도대체 금감위(증선위 및 금감원 포함 이하 동일)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혹시 무슨 종교단체는 아닐까? 분식회계를 한 기업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마당에 그 옆에 서서 “자수하는 자에게 광명을” 주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진정하게 자수하는 자에게 일정한 정도의 “광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신이나 그 대리인 혹은 법관의 영역이다. 금감위는 기본적으로 자본시장을 지키는 “경찰”일 뿐이다. 경찰은 수사를 해서 범인을 검거하고 범죄행위의 진상을 소상히 밝히는 것이 그 직분이다. 설사 금감위에 일부 법관의 직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진 다음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마치 경찰이 수사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은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봄에 있었던 외감규정의 개정이었다. 금감위는 이와 관련하여 대략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어떤 기업이 과거에 분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자진해서 수정하고 공시하면 감리를 면제해 준다. 심지어는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주주들이 감리를 요청해도 묵살하겠다. 또 전체 분식을 공개하지 않고 과거 분식의 “상당부분”만을 공개해도 그것이 정말 분식의 “상당부분”을 공개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감리를 면제해 준다. 그것도 모자라서 분식의 실상을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그럴듯한 역분식에 의해 변조한 상태로 공시하여도 감리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청지기의 비유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다음과 같이 비유를 들어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주인의 재산을 맡아 주기로 한 청지기가 있었는데 이 청지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주인의 재산이 하나도 망가지거나 분실됨이 없이 잘 보관되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청지기가 스스로 경찰을 찾아와서 이제까지 얘기했던 것과는 달리 주인의 재산중 책상이 안 보인다고 고백했다고 하자. 그러면 경찰은 자수하느라고 수고했다고 하면서 이 문제를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그냥 불문에 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재산을 맡긴 주인이 울고 불며 수사를 요청해도 “청지기의 자수를 장려하기 위해” 묵살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지기가 “다른 물건도 없어진 것들이 조금 있기는 한데 그래도 책상 없어진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이것만 고백한다”고 해도 그 말이 그럴 듯하다고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으면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옛날에 자신이 그 책상을 빼돌려서 불쏘시개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까지는 틀림없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없어진 것으로 봐서 도둑놈이 훔쳐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해도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수한 사람에게 광명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쯤 되면 정말 막 가자는 얘기다. 재산을 맡겼던 주인이 울고 불며 수사를 요청하는데도 자수한 청지기 얼굴을 봐서 수사를 않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잘못의 전부가 아니라 “상당부분”만 고백한 경우에도 “합리적으로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고는 “원칙적으로” 수사도 없이 면죄부를 주겠다는 점이다. 도대체 수사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고백한 죄가 실제로 저지른 잘못의 “상당부분”인지 아닌지를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아닌 한 알 수 없다. 금감위는 정말 자신들이 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것도 아니다. 어떤 신도 거짓말로 자수하는 사람에게까지 관용을 베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감위는 “역분식”이라는 거짓말을 해도 봐 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금감위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너무 많이 본 것은 아닐까?

“책상이 없어진 것만 발표한” 두산

혹자는 가상적인 상황을 가지고 불쌍한 금감위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두산산업개발의 주변환경을 보면 이런 논의가 “가상적인 상황”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오늘 바로 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상황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다. 두산은 지난 8월 8일 clean company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천명하면서 수천억원의 분식사실을 공시하였다. 그러면서 더 이상 어떠한 분식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바로 그 다음날 회사고위 관계자의 이자비용을 회사가 대납한 금액인 197억원이 누락되었음을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리고 회사의 내부문건에 의하면 주요 관계자들은 이미 8월 8일의 최초 발표 이전에 이 이자비용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것들도 약간씩 누락되기는 했지만 책상 없어진 것만 발표한 꼴”이 바로 이것이다. 정말 없어진 것이 이것들뿐일까? 물론 금감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산에 대해서는 분식에 관한 한 어떠한 감리계획도 없고 제재조치도 없다고 친절하게 공표하였다.

감독기능의 분할과 금감위의 축소

금감위가 자신을 신으로 생각하건 예술가로 생각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금감위가 자신을 경찰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금감위는 지난 봄에 외감규정을 개정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경찰 노릇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러나 금감위가 경찰 노릇을 포기했다고 해서 우리 나라의 기업풍토에서 경찰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 드러난 두산사태는 우리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된 경찰의 역할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는 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금감위가 정녕 경찰 노릇을 안하겠다고 하면 누군가 다른 기구가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물론 이 경우 금감위의 조직과 기능은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축소되는 것이 마땅하다.

금감위로부터 감리권한을 박탈하고 이를 새로운 기구에 부여하자는 논리는 단순히 홧김에 나온 말만은 아니다. 금감위라는 단일 감독기구의 분할은 이번 사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원론적인 의미에서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차제에 금융감독기능을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감독기능과 자본시장에 대한 시장규제기능으로 구분하여 각각 별도의 기구에 맡기는 방법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두 기능은 개념적으로도 구별되는 기능이고 그 정책목표도 다르고 규율하는 수단도 다르다. 전자의 기능은 자기자본 규제나 자산운용 규제 등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금융기관의 재무적 건전성을 제고하는 것이고, 후자의 기능은 신고나 등록, 공시, 회계감리 등의 규제수단을 이용하여 자본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시키고 그 결과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두 기능은 서로 보완적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히 금융기관의 재무적 건전성 유지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광의의 예금보험제도에 의해 담보되는 반면, 자본시장에는 그런 명시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에서도 양자는 확연히 구별된다.

Single Peak vs. Twin Peaks

실제로 다른 나라의 감독구조를 보더라도 두 기능을 하나의 조직에 통합한 영국의 예가 있는가 하면 두 기능을 분리한 미국이나 호주의 예도 있다. 이를 두고 금융감독을 다루는 이론에서는 양자를 통합한 것을 단봉 접근방식(single peak approach)이라 하고 양자를 분리한 것을 양봉 접근방식(twin peaks approach)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자는 우리 나라와 같이 은행업과 증권업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확연하고, 간접금융시장과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상황이 상이한 경우에는 현재와 같은 단봉 접근방식보다는 양봉 접근방식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양봉 접근방식을 채택할 경우 기존 금융감독구조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현재의 금감위는 금융기관의 건전성만 감독하는 기구로 축소하고 현재 금감위 산하에 있는 증선위를 분리독립시켜 가칭 “자본시장감독위원회” 같은 기구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인적 쇄신이 뒤따라야 하겠고, 각 기구의 권한뿐만 아니라 정책목표와 의무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논의는 예금보험공사와 한은, 재경부의 역할 재조정까지를 포함하는 매우 근본적인 부분을 감안하지 않고는 진행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섣불리 추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십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외감법이 위임한 감리관련 권한을 깔고 뭉개고 있는 금감위에 대해서는 당장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배지는 일 하는 사람에게 주어야

서부영화에는 종종 보안관이 나온다. 보안관은 개척마을의 질서를 수호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다. 그런데 보안관이 이 직무를 포기하려고 하면 가슴에 달고 있는 별 모양의 배지를 반납해야 한다. 물론 영화속에서는 언제나 누군가 또 다른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그 배지를 바꾸어 달고 악당을 물리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 보안관이 일을 하지 않으면 배지를 뺏어서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물색하여 그에게 배지를 맡겨야 한다. 그것도 더 많은 문제가 터지기 전에 빨리 해야 할 것 같다. (끝)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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