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장도그마’에 볼모가 된 서민경제·물가대책


‘5% 성장도그마’에 볼모가 된 서민경제·물가대책

수출대기업 실적 위한 고환율·저금리 정책이 물가관리 실패의 근본원인
근본적 처방 없는 가격통제 방식 전시성 물가대책 부작용만 키울 것


오늘(13일) 정부가 연초부터 치솟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해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물가 총괄관리를 비롯해 농산물 및 가공식품의 가격과 공공요금, 대학등록금, 석유제품 및 공산품 가격, 전세가격, 통신비 가격 등 공공요금과 시장가격을 최대한 억누르는 대책 일변이다. 물가관리의 대표적 무기인 금리와 환율을 수출대기업 주도의 고성장을 위해 묶어 놓은 채, 단기간에 사용가능한 가격억제 대책만 내놓고, 이 대책을 잘 지키는 기업과 지방정부에 세제혜택과 포상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는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저금리 정책의 변경 없는 소비품목에 대한 가격억제형 물가대책이 궁극적으로 국민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이번 물가대책은 가격억제책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전시물가행정이다.  공공요금과 시중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물가관리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지만, 가격억제책은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일 뿐이며, 금리·환율정책을 통한 물가관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번 물가대책에서 기존 정책의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성장률에 목매고 있는 청와대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본연의 역할과 책임조차 방기하는 경제부처들의 모습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더욱이 경제정책을 펼침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자원이 시장과 국민의 신뢰라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물가대책은 오히려 시장의 혼란과 불신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매우 우려스럽다.

 

정부는 집권초기부터 수출기업 위주의 고성장 정책을 채택하고, 이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펼쳐왔다. 집권 반년만에 물가가 급등하고 서민생활 피폐에 대한 원성이 자자해지자, 당시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었던 최중경 현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를 경질하는 것으로 임시적으로 여론을 무마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 세계적 금융위기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재정지출확장, 총 22조원 규모의 4대강 사업 강행, 2010년 지방선거 등으로 시중 유동성은 나날이 커져왔다. 더욱이 기준금리 정책으로 물가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 대해 지난해 초 기획재정부가 열석발언권을 행사하며 다른 목소리를 묶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중수 총재의 임명으로 사실상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은 두말할 것도 없고, 고유한 물가관리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저금리 기조와 DTI 규제까지 완화하며 가계대출을 권장해 개인과 가계 대출금액이 사상 최대치인 1000조원에 육박하며 국민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인플레 기대심리와 수요측면의 물가압력, 국제원자재 가격 및 농산물 수급 사정, 공공요금 원가부담 확대 및 서비스 요금의 원가상승과 인플레 기대심리 등이 현재의 물가급등을 초래했다고 정부는 분석하지만, 이 분석에 빠져있는 고환율·저금리 정책기조야 말로 물가급등의 주범인 것이다. 정권 출범 이후 지난 3년간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으로 고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성장지상주의의 폐해가 수입물가와 시중물가 급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경제부처들이 내놓은 물가대책이 고작 시중의 소비품목에 대한 가격억제책인 것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더욱이 정부의 가격억제책에 적극 동참한 기업과 지방정부에 세제혜택과 교부금 지원이라는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특히 올해 한시적으로 주택기금에서 사업자에 대해 2%의 저리로 자금을 지원해 전세난을 해소하겠다는 대책은 목표의 실현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로는 변형된 재벌감세, 건설기업 지원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성장률에 목매느라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청와대의 강력한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관련하여, 오늘 한국은행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적기에 기준금리 정책을 적절하게 펼침으로써 물가관리를 책임져야할 한국은행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쏟아졌던 것을 감안하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적기를 놓쳐 자산시장의 거품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물가급등에 일조했다는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5% 성장과 3% 물가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하고 있지만 5% 성장목표 달성을 위해 수출주도형 대기업경제,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부동산경제를 중심에 놓다 보니 고환율·저금리·저임금을 고집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근본적으로 고환율·저금리·저임금에 기인하는 물가 잡기는 요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민경제와 밀접한 몇 가지 상징적인 품목에 대한 가격억제 정책으로 보여주기식 전시물가행정으로는 물가가 잡힐리 만무하다. 서민경제를 희생하여 5% 성장수치를 달성한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업적이 될 수 없다. 다수의 국민 삶이 피폐해지고, 시장이 정부와 경제부처를 믿지 못하게 된 현 상황은 한국경제의 총체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농후하다. 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솔직한 진단과 그로부터 나온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제부처들이 살펴야 할 것은 청와대의 기색이 아니라 민심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정부물가대책 관련 논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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