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의무 확인한 대법원 판결, 재벌개혁의 역사적 디딤돌 될 것

불법정치자금 제공 등 불법행위는 경영판단으로 보호받지 못해

상증세법상의 평가방법 배척하고 비상장주식의 가치평가 기준 제시

배상액 80% 감액, 불출석 이사의 면책 등은 아쉬움 남아



오늘(28일), 대법원 3부(사)는 지난 1998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이 이건희 회장 등 전·현직 이사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과 관련, 190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확정하였다. 1998년 소송 제기 이후 장장 7년만의 일이다.



참여연대는 무엇보다 비자금 조성 및 불법정치자금 제공, 계열사간 부당거래 등 명백한 불법 행위는 경영상의 판단으로 존중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경영진이 회사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최종 확인된 점이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라고 평가한다. 아울러 이번 판례가 한국 기업, 특히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에 대해 1,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모두 전액 배상의 판결을 내렸다. 이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비록 관행이었고, 설사 그로 인해 기업이 이익을 얻었다 할지라도, 형법상 불법 행위는 경영판단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우리나라 정경유착의 근절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비상장주식인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저가 매각에 대해서도 상증세법상 보충적 주식가치 평가방법에 따라 매도 가격을 결정한 것은 이사로서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비상장주식의 적정가치에 대하여 최소한 순자산가치에 의하여 평가된 가액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최근 삼성그룹 뿐 아니라 SK, 현대차그룹 등 재벌그룹의 비상장 주식을 이용한 편법 상속 논란과 비상장 주식의 적정한 가치 산정 문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이천전기 인수에 대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재판부와 달리 고법과 대법원은 보다 낮은 주의의무 기준을 적용하여 이를 경영판단의 일환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사전 검토나 전문기관의 평가 없이 불과 1시간 남짓에 불과한 이사회 토의만으로 부실기업의 인수를 결정한 것이 합리적이고 충분한 정보에 따른 결정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삼성종합화학 주식 저가 매각 역시 고법과 대법원은 뚜렷한 명문 근거 없이 일반적 법원칙을 들어 이사의 책임을 제한하여 배상액을 손해액의 20% 수준으로 대폭 삭감하였다. 법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이사로서 삼성전자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손해액의 80%를 감액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이천전기 지원과 삼성종합화학 주식 매각에 대해 당시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당시 감사에게는 배상 책임을 묻지 않은 점은 총수일가와 구조조정본부가 사실상 의사 결정권을 갖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따라서 이사회 제도와 재벌그룹의 실제 경영 현실에 대해 향후 법원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요청된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삼성전자라는 개별 기업의 손실 회복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재벌개혁을 위한 역사적 디딤돌이 될 것이다. 아울러 경영진의 법률과 정관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지 않거나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법상의 선도적 판례로 남게 될 것이다.

한편, 이번 판결로 인해 최근 X-파일 사건, 금산법 위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임 판결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및 승계구도의 문제가 또 한번 확인되었다. 삼성그룹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스스로 해소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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