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경제강좌 2008-06-19   4709

[시민경제교실] 재벌체제의 대리인 문제- 삼성, 제품도 좋고 서비스도 좋은데, 뭐가 문제래?

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하여 평소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시민 씨, 국제 기름 값이 하루새 배럴당 3달러 5달러씩 고공행진을 계속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차도 없는 나와 무슨 상관이냐 했습니다. 빵이나 라면, 국수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안대리 씨도 국제 곡물가 상승이 남의 나라 일만 같았습니다. 해외여행이라곤 5년전 신혼여행때가 전부였던 전국내 씨에게 고환율 소식은 외국 놀러가는 사람들의 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지는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역난방비와 택배비, 버스요금이 오르고, 5천원짜리 한 장으로는 점심 한 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개당 1천원 안팎이던 플라스틱 그릇 하나조차 2, 300원씩 비싸지는 등 갑자기 먹고 살기가 더 팍팍해진 느낌이 큽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겼던 개별적 사건들이 왜 오늘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는 나시민, 안대리, 전국내 씨를 위해,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가 시민들을 위한 쉽게 쓴 경제칼럼 ‘시민경제교실’을 준비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나와 거리가 먼 남의 일, 전문가들이나 관심가질 일 같았지만, 어느새 나의 일이 돼버리고 나의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경제, 도대체 한국경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같이 한 번 알아봅시다.

                                                                                   –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재벌체제의 대리인 문제
– 삼성, 제품도 좋고 서비스도 좋은데, 뭐가 문제래?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개인이 적은 지분을 소유하면서도 많은 대기업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며, 이런 소유와 지배가 대물림되고 있다. 그래서 재벌체제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재벌체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이 경제력 집중이다. 몇몇 가족이 많은 대기업을 절대적으로 지배함으로써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장경제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재벌체제의 다른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에 따른 대리인 문제’가 그것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대리인 문제를 비대칭 정보와 연결해서 설명한다. 일을 맡기는 사람(본인)이 일을 맡아 하는 사람(대리인)의 행동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과 대리인의 예로 주식회사의 주주와 경영자를 들기도 한다. 주식 소유가 분산된 경우에는 경영자에 대한 주주의 감시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우며, 경영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여지가 있다. 예컨대 경영자는 기업의 수익보다는 성장에 치중하거나 과도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벌기업에는 총수 혹은 회장으로 불리는 지배주주가 존재하며, 경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배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적어도 지배주주와 경영자 사이의 대리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더 심각한 대리인 문제가 있다.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일반주주는 지배주주의 그런 행동을 막기 어렵다.

우리나라 재벌기업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대리인 문제가 심각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지배주주가 소유한 주식 지분이 적다는 데 있다. 2005년 말 현재 삼성그룹의 총수일가 지분은 4.1%에 불과하다. 삼성그룹의 59개 회사가 발행한 주식 중 4.1%만을 총수와 그의 가족 및 친인척이 소유한다. 계열사를 통한 간접 소유를 더해도 5.7%에 그친다. 삼성 외에 현대차, LG, SK를 포함한 4대 그룹의 총수일가 지분 평균은 4.9%이고, 여기에 간접 지분을 더해도 7.1%다. 총수일가 지분이 이처럼 적으므로 총수는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총수일가는 기업가치 및 주식가격 하락에 따른 손해의 일부만을 자신이 부담하고, 손해의 대부분을 일반주주들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총수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해를 끼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1995년까지 중앙일보사와 제일모직이었는데, 1996년에 삼성에버랜드가 새로 발행한 주식 125만주를 이건희 회장의 자녀가 인수하면서 62.7%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 때 이건희 회장의 자녀가 지불한 가격은 주당 7700원이었다.

반면 삼성에버랜드가 1999년에 새로 발행한 주식과 중앙일보사가 소유하던 주식을 삼성카드 등이 주당 10만원에 매입했다. 7700원이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적정 가격이라면 삼성카드 등이 손해를 입은 것이고, 그 손해만큼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이익을 얻었다. 10만원이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적정 가격이라면 제일모직 등이 손해를 입은 것이고, 그 손해만큼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이익을 얻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의 주식거래를 통한 회사 재산 빼돌리기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이재용은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에스원 등이 상장되기 직전에 주식을 헐값에 인수하여 상장 후에 매도하는 수법으로 688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부적절한 주식 거래는 삼성그룹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SK그룹에서도 있었고, LG그룹에서도 있었고, 동부그룹에서도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더 많을 것이다.

주식 거래 이외에도 총수일가가 회사 재산을 빼돌리는 방법은 많다. 정몽구 회장과 그의 아들은 2001-2002년에 50억 원을 출자해서 글로비스를 설립하고,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로 하여금 이 회사와 거래하게 하였다. 글로비스는 현대자동차 등의 물량 몰아주기에 힘입어 높은 수익과 빠른 성장을 기록했다. 2005년에 상장되면서는 액면가 500원의 주식이 6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 부자가 글로비스를 통해 거둔 이익은 그 동안의 배당금을 제외하더라도 1조4천억 원에 이르는데, 그 이익의 많은 부분은 현대자동차 등의 손실을 의미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빼돌리기는 글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정몽구 회장과 그의 자녀들은 건설회사(엠코)와 광고회사(이노션)도 소유하고 있으며, 이 두 회사의 매출은 대부분 계열사와의 거래이다. SK그룹의 빼돌리기는 SKC&C를 통한다. SKC&C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이고, SKC&C의 매출은 대부분 SK텔레콤을 비롯한 여러 계열사와의 거래다. 다른 여러 그룹에서도 총수일가의 개인회사가 그룹의 시스템통합업무를 도맡고 있는데, 이것도 빼돌리기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총수일가에 의한 회사 재산 빼돌리기의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 총수일가의 적은 지분이라면, 빼돌리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계열사 지분이다. 2005년 말 현재 4대 재벌그룹 소속회사가 발행한 주식의 27.1%를 동일 그룹의 다른 소속회사가 소유한다. 소속회사가 소유하는 자기주식도 4.1%다. 그래서 총수가 행사하는 의결권은 33.0%에 이른다. 이 정도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총수의 지배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사의 선임과 해임이 전적으로 총수의 뜻에 달려 있다. 새로운 대주주가 나타나서 이사회를 장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여러 주주가 연합하더라도 어렵다. 그래서 총수는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회사에 해를 끼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빼돌리기 등의 사익 추구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지배주주가 자신의 과오나 무능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지배력을 행사하더라도 외부주주나 다른 이해관계자가 이를 막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창업자보다는 그의 자녀가 지배하는 그룹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개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 하나는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와 지배의 괴리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것이건 시장에서 이뤄지기는 어렵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려면 계열사 지분을 줄여야 하는데, 이 경우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사익 추구가 어려워지면서 기업가치가 상승한다. 이러한 변화가 외부주주에게는 이익이고 지배주주에게는 손해이며, 이익이 손해보다 크다.

그러나 외부주주의 이익 중 일부로 지배주주의 손해를 상쇄하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계열사 지분의 축소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그러한 방안이 마련될 수 없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그대로 둔 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외부주주와 지배주주의 합의에 의해 채택되기는 어렵다. 수많은 소액주주와의 합의가 이뤄지기도 어렵고, 시행되리라는 믿음을 주기도 어렵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거나 그 부작용을 줄이는 일이 시장에서 이뤄지기 어려우므로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요하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출자총액을 제한하는데,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일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형태의 출자총액제한은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소속회사의 주식 취득과 소속회사의 사업을 위한 주식 취득을 구분하지 않고 제한할 것이므로 이를 피하기 위한 예외조항을 둘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까지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는 데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상호출자금지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회사 사이의 상호출자나 여러 회사 사이의 순환출자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만을 금지했다. 그리고 재벌그룹은 상호출자금지제도를 피해 순환출자를 늘였다. 1997년 말과 2005년 말을 비교하면, 30대 재벌그룹의 순환출자는 금액으로는 10.9배로 증가했고, 건수로는 2.4배로 늘어났다.

회사 갑이 회사 을의 주식을 소유하고, 회사 을이 회사 병의 주식을 소유하고, 회사 병이 회사 갑의 주식을 소유하면, 세 회사 사이에 순환출자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넷 혹은 더 많은 회사 사이에서도 순환출자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순환출자를 금지한다고 해서 재벌그룹 소속회사 전체의 출자총액이 크게 감소하거나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그다지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주로 핵심회사를 포함하므로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지배주주는 자신의 주식 소유를 핵심회사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지배주주가 개인회사를 설립하여 계열사와 거래함으로써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순환출자금지는 핵심회사의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유와 지배의 괴리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법에 규정된 주주의 대표소송을 확대한 다중대표소송의 도입도 소유와 지배의 괴리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 앞의 사례를 다시 인용하면, 이건희 회장의 자녀가 주당 7700원에 매입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삼성카드는 주당 10만원에 35만 주를 매입했다. 7700원이 적절한 가격이라면 삼성카드의 임원들이 삼성카드에 손해를 끼친 것이다. 그리고 삼성카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자회사이므로 삼성카드의 손해는 곧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손해이며, 두 회사의 주주의 손해이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삼성전자의 주주가 삼성카드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상법이 개정되어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어야만 가능하다.

회사기회의 편취를 상법에 적시하여 금지하는 것도 소유와 지배의 괴리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배주주가 개인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하여 소속회사와 거래하게 함으로써 소속회사의 이익을 빼돌리는 일은 지금까지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수 있다. 지금처럼 지배주주가 계열사 지분을 이용하여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물려주기도 하는 상황에서는 지배주주의 빼돌리기를 외부주주가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빼돌리기의 한 유형인 회사기회편취를 상법에 적시함으로써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판결하기 쉽게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유와 지배의 괴리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로 이어지기 쉽다.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는 기업가치의 하락을 통해 외부주주의 손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을 통해 국민경제의 효율과 성장을 저해한다. 이를 막기 위해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거나 그 부작용을 줄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선이 재벌에게는 손해가 될 수도 있으나 국민경제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보다 기업의 가치와 성장을 극대화하려는 지배주주에게는 이러한 법과 제도가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투자자의 신뢰가 높아지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김진방(인하대 경제학,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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