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만에 스스로 무너뜨린 정부의 재벌개혁정책

1인시위로 마지막 호소 불구, 재벌개혁후퇴법안 국무회의 통과

 

오전 7시 45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차량출입문앞

유리창을 아주 검게 선탠처리한 검은색 대형승용차들이 한 두대씩 정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정문을 지키는 2명의 경찰은 멋진(?) 동작으로 차량 탑승자를 향해 경례를 하였다. 하지만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으로 남겠다(1999.8.15 경축사 중)"라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던 1인 시위자는 검은색 유리안의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피켓의 글자 한 줄이라도 읽어보고 지나가기를 소망하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정부청사 앞 재벌개혁후퇴 막기 1인시위는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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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무회의에 맞춘 1인시위

재벌을 은행에 넘기고, 재벌총수가 고객의 돈으로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끔 하는 은행법과 증권투자신탁업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확정되기로 한 오늘(23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로 정부청사앞에서 1인시위를 하기로 했다. 국무회의가 열리는 시간이 오전 8시. 그래서 1인 시위자로 나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김상조 교수는 오전 7시45분부터 정부청사앞에서 아래 내용이 선명하게 적힌 큰 피켓을 들고 섰다.

 

 

 

▲ 1인시위를 하는 김상조 교수 앞을 지나가는 검은색 승용차들. 짙게 선탠이 되어 있어 누가 타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으로 남겠다"(1999.8.15 경축사 중)

"재벌의 문어발 확장과 부실계열사 지원허용(공정거래법 개악), 계열금융회사의 고객자산으로 재벌총수의 지배권 강화 허용(증권투자신탁업법 개악, 증권투자회사법 개악), 은행까지 재벌에게(은행법 개악)"

"대통령님, 재벌은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대통령님의 개혁의지는 사라진 것입니까?"

진념 재경부 장관, 신문만 보고 지나가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게 짙게 선탠처리된 차량 유리창때문에 어느 장관이 탑승한 차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근데 10여대의 고급 승용차중 1대의 차량의 뒷좌석 유리창이 반쯤 내린 채 우리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앗, 진념 재경부장관의 모습이 반쯤 열린 창 사이로 보였다. 그러나…이번 법개정안을 제출한 재경부의 수장인 진념 장관은 손에 쥐고 있던 신문만을 쳐다볼뿐, 우리의 주장이 담긴 피켓에는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정부청사 경비 경찰 2명이 1인 시위자인 김상조 소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그냥 무슨 이런저런 질문을 하려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근데, 그들이 그러면서 우리의 피켓을 가로막고 있을 때, 국무총리가 탑승한 차량이 우리 앞을 지나 정부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국무총리가 탄 차량이 사라지자, 그 두 경찰도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이런! 국무총리에게 불경(!)스런 모습을 안 보이게 하기 위해 슬쩍 우리 앞을, 우리의 주장이 담긴 피켓을 가로막았던 것이구나! 또 한 번의 허탈감.

 

 

 

 

국무총리님이 보시면 아니되옵니다

국무총리가 탑승한 차량이 지나가자 경찰이 몸으로 피켓을 가리고 있다.

 

1시간 여만에 끝난 국무회의, 그리고 정부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소식

오전 9시가 조금 지나자, 1시간 전에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안으로 들어갔던, 장관 탑승 차량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장관차량이 나오는 출구쪽으로 한달음에 뛰어가서 다시 우리의 1인시위를 계속했다. 오전에 청사안으로 들어갈때보다는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정부청사 앞에서 1인시위하는 모습을 대부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무회의에서는 은행마저 재벌이 가질 수 있게 하고, 고객이 맡긴 신탁재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도록 하는 은행법과 증권투자신탁업법의 재경부의 개정안은 원안대로 심의통과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벌개혁을 이룬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는 대통령. 하지만 그 대통령 없이 이루어진 국무회의에서는 일사천리로 재벌개혁이 실종되었다. 이제 다음 주 초에는 국회로 그 법이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던 공정거래법 정부 개정안은 다음주 화요일에 국무회의에 제출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여연대의 재벌개혁 후퇴 막기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박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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