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참여연대 공동기획] ‘3세 승계, 법 위의 삼성과 결별하라’ 5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건을 통해 정점에 접어든 상황에서,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는 ‘3세 승계, 법위의 삼성과 결별하라’라는 주제로 공동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5편에 걸친 기획기사는 삼성그룹 스스로의 경쟁력, 국민경제의 이해, 시민적 상식 그리고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 삼성이 과거 어두운 유산과 단절할 것을 요구합니다. 직업병 및 노동권 문제도 ‘법 위의 삼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주제이지만 이번 기획에서는 제외됐습니다. 5편은 재벌 소유지배구조 문제를 20년 넘게 연구해온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를 만나 이재용 3세 승계의 문제를 들었습니다.

 

“이재용, 사령관이 되려고 하지 마라”

[3세 승계, 법위의 삼성과 결별하라⑤] ‘재벌 전문가’ 김진방 인하대 교수 인터뷰

 

“운이 나빴든 실력이 나빴든 실패하고 있을 때 이재용 부회장이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겠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평가해달라는 ‘완곡한’ 질문에 ‘재벌 전문가’ 김진방(58)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바로 ‘정곡’을 찔렀다. 삼성의 미래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아니라, ‘소유’와 ‘지배’의 분리에 달렸다는 것이다. 능력이 있든 없든, 삼성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삼성물산 합병, 국민연금과 법원이 결정적 역할”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 하루 전인 지난 16일 오전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대 교정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일찌감치 ‘이재용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판돈(보상)이 똑같다면 난 합병 성사 쪽에 돈을 걸겠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이 그쪽으로 정했듯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정치적, 금전적 이유로 삼성, 아니 이재용 손을 들 거다. 공적 연기금은 국민 정서, 특히 지배층 분위기를 반영해 정서적 판단을 할 테고, 민간 기관투자자들은 삼성 계열사가 거래회사여서 주주로서 이익만 따진다거나 수탁자 의무를 지키려고 반대했다가 자칫 거래처를 잃는 ‘소탐대실’을 염려해서다. 심지어 해외 기관투자자도 (삼성과의) 암묵적인 거래나 실제적인 거래로 합병 찬성으로 돌아설 수 있다.”

 

실제 다음날 주총에선 찬성률 69.53%로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이 통과됐다. 합병 승인에 필요한 2/3(66.67%)는 넘겼지만, 2.8%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이 아니었다면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었다(관련기사: 삼성 “실망 안시키게 잘하겠다”… 엘리엇 “모든 가능성 열어놨다“).

 

김 교수는 17일 주총 결과가 나온 직후에도 “법원의 자사주 관련 판결과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이 컸다”라고 평가하면서 “거꾸로 이 두 가지는 앞으로 계속 논쟁거리로 남게 돼 삼성이 지주회사로 넘어가는 과정을 지연시키고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생명 지분 인수 과정에서) 결국 상속세를 내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날고 긴다’는 세계적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런 ‘뻔한 사실’조차 몰랐던 것일까?

 

“엘리엇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저렇게 쉽게 찬성으로 돌아서 버리고 법원 자사주 판정에서 어긋나 버렸다. 적어도 자사주 문제는 엘리엇이 낙관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자사주 매각 불법이라는 데 베팅했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5.9%에 이르는 자사주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백기사’ KCC에 넘겼다. 자사주는 주가 방어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지분이 낮은 재벌 총수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에 엘리엇도 자사주를 우호적인 제3자에게 매각한 건 불법이라며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지만 1심 법원은 기각했고 이날 2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관련기사: 엘리엇 대신 삼성 손 든 법원… 팔은 안으로 굽는다?)

 

-현행법에 자사주 매각 관련 규제 조항이 없는 탓 아닌가.
“법에 없더라도 법의 정신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 판례도 엇갈렸다. 자사주 매각을 신주 발행과 같은 거로 본다면 제3자에게 배정해선 안 된다. 자사주도 금고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새로 찍는 거나 다를 게 없다. (법리를 다투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법원 판단을 팔이 안으로 굽은 결과로 볼 수 있나.
“법원은 그동안 지배주주 편향적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법을 대단히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결정이 판례로 굳어지면 몹시 나쁜 제도가 하나 만들어지는 셈이다. 지금까지 자사주 매각은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었다. 모호했는데 이번 판결로 확실한 수단이 돼버린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한 재계에서는 오히려 외국자본의 공격에서 국내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주주 지분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 의결권’이나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싸게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주는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일종의 경영권 방어 수단)’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라고 여야 정치권을 압박했다. ‘포이즌 필’은 이미 지난 2010년에 도입하려다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미국에서 포이즌 필은 새로운 대주주가 전문 경영인을 교체하는 걸 막으려고 도입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소수 지분을 가진 대주주'(소수지분지배주주)에게 새로 등장하는 대주주를 막을 수단을 주자는 것이다. 기존 경영진이 교체될까 봐 하는 게 아니라 ‘소수지배주주’가 위태로우니까 무기를 주자는 것으로 (재벌 총수 견제를 막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국적자본 대 해외투기자본? 재벌 지배력 강화하겠다는 것”

 

엘리엇의 공격을 계기로 야당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대표적인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조차 지난 3일 이른바 ‘경영권 방어 법안’을 대표 발의했을 정도다. 김 교수는 외국인 투자 제한 사유에 ‘대한민국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를 추가하는 ‘외국인 투자촉진법’ 개정안에 부정적이었다.

 

“‘국적 자본’ 대 ‘해외투기자본’ 프레임이 일반 국민은 물론 연구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치 반공주의 탓에 빨갱이로 몰려 피해 보듯 ‘해외투기자본’ 편이냐는 공격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영선 의원 법안도 상당히 자의적이다. 재벌 지배력을 확실히 하면서 해외 자본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여 놓았다. 국내 자본, 국외 자본을 구분한다는 자체가 재벌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재벌 오너 성공 신화’가 존재한다. 정주영을 시작으로 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현대자동차그룹 계보,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계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국 재벌은 회사 지분을 50~70%씩 보유한 ‘오너’가 아니라 단 5%로도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소수지분지배주주(CMS : Controlling Minority Shareholder)’라고 구분했다. 

 

“소유한 건 적은데 지배를 많이 하는 ‘소수지분지배주주’가 존재하면 소유와 지배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서 지배력을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에게 피해를 주고 회사 가치에 손상을 주기도 한다. 삼성에버랜드가 주식을 헐값에 발행했을 때도 실제 소유주인 제일모직 등 대주주는 그 주식을 포기하고 싼값에 이재용에게 넘겨 손해를 봤다. 궁극적으로 제일모직 주주들 돈을 빼앗아 이재용에게 준 것이고, 제일모직 기업 가치에 손상을 준 것이다. 

 

‘e삼성’ 투자도 삼성 그룹 이익이 아니라 이재용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이처럼 신규 사업 진출까지 소수지분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이뤄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주식 가치를 실제보다 저평가하는 것)’를 유발하고 회사뿐 아니라 국민경제 가치까지 떨어뜨린다.”

 

김 교수는 오늘날 현대차나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도 결국 ‘오너 지배’ 결과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부정적이다. 

 

“일부 성공 사례를 들어 이른바 ‘오너 지배’, 즉 ‘소수지분지배주주’ 지배가 좋다고 하는데 그럼 진로나 한보그룹은 어떻게 봐야 하느냐. 대우그룹은 국민경제에 얼마나 큰 피해를 끼쳤나. 살아남은 재벌보다 나자빠진 재벌이 더 많다. 단지 살아남았다고 해서 좋은 거라고 판정할 수도 없다. (오너 지배가) 나쁜데도 다른 게 잘 받쳐줘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오직 ‘소수지분지배주주’ 지배체제의 장단점만 가지고 말해야 하는데 난 별로 좋은 점을 못 찾겠다.”

 

“이재용 경영 능력? 실패해도 못 바꾸는 게 문제”

 

이 대목에서 당장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3세 승계 작업’을 본격화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문제로 이야기를 좁혔다.  

 

“(그동안 많은 삼성 계열사 재편이 있었지만) 소유 구조에 손을 댄 건 삼성물산이 처음이라고 본다. (이재용 3세 승계 구도에서) 보통 삼성전자가 궁극적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너무 깊이 넘겨짚는 것이다. 삼성물산 합병은 그동안 약한 고리를 강화한 것이다.

 

삼성물산은 내부(총수 일가 등 삼성 특수관계인) 지분이 낮은 반면, 제일모직은 너무 높아 넘치는 자본을 삼성물산으로 옮겨 확실하게 지배하려는 것이다. 에버랜드에서 계열사를 몇 단계씩 거쳐 삼성전자를 지배하던 걸 좁혔다? 그건 그림으로 그릴 때 문제지, 지배 고리와 거리는 전혀 문제 안 된다. (이재용이) 이사회를 여러 번 거칠 필요 없이 삼성전자 이사에 직접 지시하면 된다.”

 

지난 2005년 8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미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경영권 승계를 비판했던 김 교수의 ‘칼날’은 1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날카로웠다. 오히려 재벌 소유지배구조 연구 경력이 20년을 넘기면서 재벌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의 현실까지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이날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밑바탕에 깔면서도 ‘그러다 같이 망한다’는 강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관련기사: “이건희 잘 했다고 이재용도 잘하란 법 있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미 ‘e삼성’에서 판정이 났다고 생각한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봐 줄 수도 있다지만 그 이후로 달리 입증한 적은 없다. 이재용의 경영 능력 판단이 문제가 아니라, 이재용이 삼성을 장악하고 경영을 맡았을 때 잘될 때도 있겠지만 잘못됐을 때 고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든다.” 

 

-리더십 문제인가?
“리더십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운이 나빴든 실력이 나빴든 실패하고 있을 때 이재용이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누가 되든 그 사람이 맡아 힘을 행사해서 안 될 때 어찌할 거냐. 새 체제로 가겠느냐.”

 

이 지점에서 질문의 각도를 살짝 바꿔봤다. 

 

-이재용 남매가 상속세를 제대로 내고 11조~12조 원으로 추정되는 이건희 회장 지분을 넘겨받는다면 ‘경영권 승계’를 비판할 근거도 사라지는 건가.
“세습 경영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그게 경영권이든 재산이든 지위든 세습은 무조건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경영권은 위험성이 높고 많은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쳐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차라리 ‘이재용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인정하고 노조 문제 등 ‘사회적 대타협’을 얻어내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이른바 ‘해외투기자본’에서 삼성과 같은 ‘국적 자본’을 지키자는 구호와 일맥상통한다.

 

“‘해외투기자본’을 막아야 한다는 쪽과 그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해진다는 주장이 있는데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해외자본들이 국내 기업에 영향력을 미치고 행사하는 것을 막을 거냐의 문제다.

 

장하준 교수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국민연금이 주식을 왕창 사서 우리 기업 편에서 표를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데 국민연금 성격상 국내 기업 주식을 사는 것은 썩 좋지 않고,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했을 때 주주 이익을 따라야 하는데 국민 이익과 다를 수도 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지배력을 대물림하는 게 국민 이익인가? 난 반대다. 국민연금이 재벌 총수 편드는 건 경제 망치는 길이다.”

 

“삼성 총수 일가는 대주주 역할에만 충실해야”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재벌의 ‘소유 구조’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기업 ‘지배 구조’를 바꾸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김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를 재벌에 포획된 포로에 비유했다. “포로를 잡고 있는 범인을 잘 못 건드리면 우리가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죽이지 말고 자수하게 하든지 회개하게 하든지 마음을 바꾸게 하든지, 행동이라도 바꾸게 해야 한다”면서 “소유 구조를 바로 건드리는 건 어려우므로 ‘지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을 깨는 아픔이 있어야 하겠지만, 충분히 도움이 된다. 오히려 지금보다 안전하다. 정몽구, 이재용 리더 아래 그룹 경영이 잘못됐을 때 누가 어떻게 바꿀 수 있나. 물론 본인이 자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본인은 여전히 잘할 수 있다,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을 때는 어쩌나. 지금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기업이 망하기 전에는 바꿀 방법이 없다. 시장에서 심판한다고 하는 것도 결국 망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다. 지배 구조는 기업이 망하기 전에 바꾸는 것이다.”

 

결국, 재벌 총수 일가에게도 기업을 ‘소유’는 하되, 실질적인 경영 참여 등 ‘지배’에서는 손을 떼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1시간 30여 분에 걸친 인터뷰 막바지. 김 교수가 삼성 총수 일가에게 전하는 ‘희망 사항’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 총수 일가에게 바라는 건 대주주 역할에 충실해 달라는 것이다.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특정 사업 결정까지 내리는 건 위험하다. 물론 전문 경영인과 검증된 사람들의 조언을 받겠지만 그래도 위험하다. 예를 들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산업 시찰 나갔다가 최신시설 갖춘 닭 공장을 보고 이거 좋은 것 같다, 이거 많이 해, 했을 때 옆에서 경제 정책 추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경제 사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상황이 있겠나.

 

(전문 경영인에게) 사업 판단과 결정, 지시를 내리게 하고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교체하고 조정하는 것과 직접 현장 뛰면서 나를 따르라, 하며 이것저것 하라는 건 다른 역할이다. 대주주 역할을 해야지 사령관 역할까지 맡으려고 해선 안 된다.”

 

오마이뉴스 기사보기>>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29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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