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4-04-16   704

[기고] 협동조합 죽이는 공정위, MB정부보다 더 후퇴

[경제 민주화 워치] 경제민주화 물타기에서 줄푸세 공세로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업경제학과 교수

 

대선 당시부터 ‘돈이 도는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더니, 의미도 불분명한 창조경제란 구호가 난무하고 있고, 온 나라가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마지못해 이루어진 몇 가지 경제민주화 법 개정 조치들은 “이 정도면 경제민주화 많이 했지”라는 한마디 위로로 조기에 종료되었다. 급기야 경제활성화론으로 경제민주화 물타기가 진행되고 있고, 줄푸세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세가 시작되는 것 같다. 
 
지난 주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제한성 규제 완화를 추진한답시고 3월부터 각 지방에서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권고한 내용을 보면 정부가 정말 제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보도 다음날 공정거래위원장이 잘못을 시인하기는 하였지만 이런 해프닝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 계획의 요지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같은 사회적 경제 영역, 중소기업, 소상공인,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경쟁제한성 규제(조례나 규칙)”을 폐지하거나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은 실제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통해서 이를 수정해 갈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계획이 지난달 20일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개혁의 공세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제 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연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이같은 권고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구나 폐지를 권고한 조례나 규칙들은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그렇고 협동조합기본법이 그렇다. 이러한 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조례를 근거로 시행되는 제도나 정책을 폐지하고 개선하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이다. 집권 여당도 마찬가지다.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나서 그 후속 작업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구체화하는 조례를 만들 당시에도 집권 여당에서는 해당 조례의 통과를 꺼렸다는 말들이 많았다. 지방의회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집권여당이 장악하고 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고, 실제로 통과되지 못한 조례들도 많았다. 협동조합은 진보적인 사람, 그들 입장에서는 ‘좌빨’들을 모이게 하고, 자금을 만들고, 그래서 차기 집권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둘째, 공정거래위원회의 폐지 권고는 사회적 경제 영역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다. 2012년에 이미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바 있고, 현재 새누리당이 주도하여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협동조합만 해도 2014년 1월 기준으로 3714개에 이르고 있고, 곧 협동조합 4000개 시대를 앞에 두고 있다. 숫자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와 같은 급격한 증가는 외환 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비정규직 및 자영업자의 급증, 청년실업 증가, 대기업 중심의 성장, 지역 경제의 침체 등 우리 사회의 총체적 양극화와 불균형이 감내할수 있는 수준을 심각하게 넘어섰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바로 잡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이번에 개선 대상에 오른 대구시의 ‘소상인 지원 및 유통업 협력조례’가 그렇고 전남의 ‘지역유망중소기업 지원’이 그렇고, 경기도의 ‘여성고용 모범 기업 지원에 관한 조례’가 그렇다. 
 
셋째, 이번 권고는 2012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경제활성화를 위한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방안”에 담긴 정신과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 개선 방안은 중소기업, 소비자 등 경제 주체들에게 부담이 되는 불필요한 틈새 규제 정비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했고, 중소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성장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방안을 발표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그런 다짐을 나몰라라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논리인가? 대선 전에 한 약속을 언제 그랬냐는 듯 폐기해버리는 대통령과 그 정부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적어도 이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더 후진적인 정부이다. 
 
지난 주말(4일) 구례에서 있었던 아이쿱생협의 친환경유기식품산업단지 개소식에 다녀온 바 있다. 친환경 유기식품 가공단지로는 국내 최초이고 시설 규모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 말고도 20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통한 펀드 조성, 지역농산물 구입, 300개 이상의 지역 내 일자리 창출, 지역 복합문화시설 제공을 통한 지역사회 기여 등은 시장이나 민간 기업들에게 맡길 경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다. 물론 이 산업 단지를 개소하는 데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등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정위의 개선 폐지안은 이러한 노력들이 경쟁을 제한한 결과이니 잘못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이 협동조합은 그동안 정부 지원이라고는 거의 받지 못하면서도 튼튼하게 성장하고 있고, 협동과 상생,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정신이나 원칙들 잘 지켜가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돕지는 못해도 그걸 막아서야 되겠는가? 공정거래위원장이 곧바로 잘못을 시인했다고 하지만 대통령부터 경제민주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 이러한 해프닝, 아니 공세는 이 정부 내내 계속될 것이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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