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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8.11.27
  • 601

삼성 분식회계로 드러난 회계법인 민낯

‘자본주의 파수꾼’ 아니라 의뢰인 이익 지키는 ‘공범’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시계를 되돌려 2014년 하반기로 가보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준비하던 삼성 내부에서 판단하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합병 조건은 어느 정도였을까.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삼성SDI 등 계열사 상장주식만 13조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업 측면에서도 건설과 상사 두 사업부가 있었는데, 두 분야 모두 각각 업계 1위를 다투는 강자였다. 계속 하락하던 건설 경기도 이제 바닥을 찍고 반등하던 시기였다.

 

반면 삼성에버랜드가 이름을 바꾼 제일모직이 보유한 상장주식은 삼성생명이 유일했는데, 3조~4조원에 불과했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초기 단계의 바이오기업으로 비상장주식회사인데다 성과를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제일모직은 패션, 레저, 건설, 급식·식자재 유통의 네 분야에서 사업을 했는데 이익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삼성물산에 비해 두드러진 점이 없었다.

 

이 상황을 종합하면 1주당 교환 비율인 합병 비율이 1 대 0.35(제일모직 1주가 삼성물산 3주와 동일)로 산출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톰 크루즈가 불가능한 일을 해낼 때, 조력자가 꼭 나온다. 삼성에도 조력자가 있었다.

 

자본잠식 감추는 심각한 분식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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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형 회계법인들과 함께 분식회계를 하려는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 한겨레

 

자본주의의 파수꾼. 흔히 회계사를 이르는 말이다.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회계사가 무엇을 지키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시스템의 파수꾼’이 아니라 ‘의뢰인의 이익만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였다.

 

분식회계란 기업의 장부를 실제 상태와 다르게 포장하는 것이다. 매출액이 100원밖에 없는데 200원으로 표시하거나, 은행 잔고가 100원밖에 없는데 200원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실제 상황을 왜곡해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 분식회계다.

 

같은 분식회계 중에서 가중처벌되는 것이 있다. 회사의 현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숫자를 왜곡하는 것이다. 보통 그해의 성과가 흑자인지 적자인지 따지는데, 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것은 기업의 상황을 속이는 일이어서, 다른 분식회계보다 엄한 처벌을 받는다.

 

이와 동일하게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에 해당하는 자기자본이 음수(-)였는데(이것을 ‘자기자본 잠식 상태’라고 한다) 양수(+)로 포장하는 것도 엄한 처벌을 받는 심각한 분식회계로 간주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 문건에서 드러난 분식회계 동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하면 자기자본 잠식 상태를 피할 수 없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안을 찾은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계약서를 소급해 수정하거나, 평가액을 자기자본 잠식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조작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준비됐다. 이러한 탈법적인 방안과 함께 논의된 것이 실제 일어난 관계회사로의 임의 변경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장 나쁜 형태의 분식회계 동기로 탈법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준비하는 데 조력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지배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의 감사인이던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이 충실한 조력자였다. 또한 가치평가 업무를 했던 안진회계법인도 긴밀히 협의한 당사자로 등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콜옵션을 보유한 바이오젠과의 계약서를 소급해 수정하는 일은 삼일·삼정회계법인과 협의해 초안까지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입맛 딱 맞는 평가액 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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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삼정·안진회계법인은 자본잠식을 탈피하기 위한 회계 처리 방안을 도출하는 데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기업의 장부를 투명하게 작성되도록 감시해 ‘시스템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회계법인이, 의뢰한 기업의 요구에 따라 물불 가리지 않고 조작에 뛰어드는 ‘의뢰인의 이익만을 지키는 파수꾼’이었음이 드러나버렸다.

 

이것만이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긴밀히 연결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안진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이 보여준 평가의 마술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국민연금이 주가에 따라 산정된 합병 비율이 적절한 범위에 있는지 따져보기 위해 작성한 자료를 보면, 삼정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이 평가한 자료가 나란히 표시돼 있다.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가치를 삼정회계법인이 8.6조원, 안진회계법인이 8.9조원으로 평가했다. 당시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약 46% 보유했기에, 제일모직의 총 가치로 환산해보면 삼정회계법인 18.5조원, 안진회계법인 19.3조원으로 평가한 것이 된다.

 

약 3개월 뒤 통합 삼성물산을 결산하기 위해 안진회계법인은 다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평가했다. 그 결과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총 기업가치 기준으로 6.9조원 수준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3분의 1 토막이 났다. 동일한 회계법인이 동일한 회사를 약 3개월의 시차를 두고 평가했는데, 평가 결과가 고무줄이었다.

 

평가 차이가 크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3개월 전 19.3조원이라는 평가액은 1 대 0.35라는 합병 비율이 합리적임을 입증하는 데 긴요하게 쓰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했더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부결되는 상황이었다. 3개월 후 6.9조원이라는 평가액은 불공정한 합병의 흔적을 가리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불공정한 합병의 결과로, 장부에 표시될 수밖에 없는 염가매수차익을 가리는 데 필요한 절묘한 숫자였다. 의뢰인이 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주었다.

 

본분 잊고 충실한 조력자 자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6.9조원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중요한 구성 요소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4.8조원으로 평가한 때문이다. 그 둘의 평가는 세트인 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4.8조원으로 평가한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평가 결과에 삼정회계법인은 적정의견을 주었다. 삼정회계법인도 몇 개월 시차를 두고 3분의 1 토막의 평가에 동의해준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에 대해 해명할 때마다 삼일·삼정·안진회계법인의 ‘검증’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회계법인들이 어떤 행위를 해왔는지 살펴보면 검증이 아니라 ‘공모’를 해왔다고 해야 맞는 말이 된다.

 

삼성의 ‘미션 임파서블’은 시스템의 파수꾼이라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충실한 조력자를 자처한 회계법인 덕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은폐돼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꼭 얻어야 하는 교훈은 감시자가 자신의 역할을 잊으면 어마어마한 불법과 탈법이 가능한다는 것,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 결정으로 철옹성같이 단단하고 빈틈없던 삼성의 행보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추어졌던 편법과 탈법 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진을 한 것이다.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나 합병 관련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이 남아 있지만, 퍼즐이 모두 맞춰지면 어디까지 가능할지 아무도 모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나아가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문제제기를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한겨레21>에 게재한 것입니다. >>>한겨레21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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