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아직 끝나지 않은 외환위기

외환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올해로 만 8년이 되고 이제 강산이 거의 다 바뀌었건만 아직도 외환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급하게 얼기설기 막아놓았던 둑이 다시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혼돈의 한가운데에 삼성이 있다. 물론 삼성이 외환위기를 전적으로 초래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은 외환위기의 발생과 처리 모두에서 도저히 몸을 뺄 수 없는 주역의 위치에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 꿈이었던 승용차 산업에의 진출이었다. 회장님은 그룹 내부 경영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성자동차에의 꿈을 불태웠고 다만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몇 차례의 단계적 전략을 입안했다. “절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여 상용차 산업에 진출한 뒤 점진적으로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거나 혹은 새로운 승용차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세운 것이다. 결국 삼성은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당당하게 일제차를 베낀 모델로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은 잠시였고 그 결과는 쓰라린 것이었다. 삼성상용차는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분식회계를 통해 사기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고도 모자라서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그 비용은 간접적으로 예보의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국민들이 떠안았다. 기아자동차 인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아자동차는 자금난에 시달리다 97년 가을에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것이 외환위기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그 처리에는 또 한 번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삼성자동차를 신설하여 경영하는 것도 철저하게 실패했다. 지반을 고르느라고 가라앉는 부산 앞바다 갯벌에다 파일만 수조원 어치를 박았으니 회사가 성할 리가 있겠는가. 문자 그대로 돈을 땅에다 뿌리고 바다에 버린 격이다.

기업이 이처럼 터무니없는 데 돈을 쓰니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 있겠는가. 우리나라 외환위기는 무엇보다도 재벌기업이 이처럼 비효율적인 투자를 일삼은 데서 비롯된 바 크다. 문제는 그 비용을 애꿎은 국민들이 떠안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희 회장도 개인적으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사재출연이 그것이다. 그러나 요새 국감장에서 그 가신들이 증언하는 모양새를 보면 이것 자체가 “회장님이 한 번 해 본 정치적 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같다. 법적 정당성 운운하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승용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이미 팽개친 마당에 사재출연 약속을 또 팽개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일까.

바로 이래서 외환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삼성자동차의 처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필자는 총수의 사재출연으로 문제를 얼렁뚱땅 해결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주는 출자지분만큼만 손해보면 그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처럼 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작정이면 삼성자동차가 조달했던 모든 자금을 샅샅이 뒤져서 그중에 계열사의 지급보증이 얼마이고 관련 이사들의 개인보증이 얼마나 되는지 다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관련자들의 지급보증을 철저히 추궁한 후 그래도 모자라는 사회적 손실에 대해서는 그것이 누구의 헛된 꿈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철저하게 역사에 기록해야 할 것이다.

내년 재정은 거의 확실히 적자재정일 것이다. 따라서 매년 2조원씩 상환하기로 한 공적자금 상환계획은 실질적으로 물 건너가고 말았다. 삼성의 가신들이 사재출연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외환위기의 비용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우리 아이들 어깨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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