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발의를 가장한 졸속 정부입법을 비판한다

‘관치금융’ 유지하는 기촉법 개정안, 업계 민원 무분별하게 수용 금융불안 불씨는 만드는 간투법 개정안 졸속 처리 반대

 

지난 11월 24일에는 김효석 의원 등 10인의 의원 명의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하 간투법) 일부개정안이, 그리고 12월 2일에는 김종률 의원 등 12인의 의원 명의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접수되었다.

그런데 이들 두개의 법률개정안은 의원입법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 실질은 재경부가 발의한 정부입법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결국 이 두개의 법률안은, 정부입법의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입법예고, 부처간 협의, 규개위 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 등)를 모두 생략한 채, 지극히 형식적인 재경위 심의를 거쳐 정기국회 마지막 날 수십개 법안에 묻혀 그냥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정부가 주도한 법률안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경우에는 조속한 입법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여 의원입법의 형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최소화되어야 할 예외이며,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될 편법이다. 문제는 간투법과 기촉법 개정안이 이러한 편법이 용인될 만큼 시급을 다투는 사안인가 또는 그 개정내용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간투법과 기촉법 개정안의 경우 이러한 편법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즉 심각한 논란을 야기할 것이 명백한 주요 법률개정에 대해 의원입법의 형식을 빌려 공론화 절차를 생략한 채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은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입법권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김종률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촉법 개정안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기촉법은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서 진행된 ‘부도유예협약’이나 ‘워크아웃’ 등 이른바 채권금융기관 중심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법제화한 것이다.

따라서 기촉법이 채권자-채무자 간의 자발적 조정에 수반되는 제반 거래비용을 줄이는 측면에서 일부 효율적인 요소가 있을지 모르나, 사적 자치의 원칙에 입각한 국민의 자발적인 권리행사를 사법부의 판단없이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모든 조항은 원론적인 의미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 기촉법의 일부 조항은 서울고등법원에 의해 직권으로 위헌 심판 제청된 상태에 있다.

더구나 원래 기촉법은 올해 말에 폐기하기로 한 한시법이다. 따라서 올해 2월에 국회를 통과하고 내년 4월부터 시행 예정인 통합도산법에 의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할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히 예상되던 터였다.

특히 통합도산법의 시행을 계기로 법원은 구조조정 기업의 구 경영진이 원칙적으로 도산절차에 편입된 이후에도 계속 경영권을 유지하는 DIP(debtor in possession) 제도를 실질적으로 도입하고, 구조조정이 끝나면 바로 회생절차를 종결하는 등 실무절차를 변경할 예정으로 있어, 과거와는 달리 법원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금감위와 재경부는 기촉법에 의한 구조조정의 회생률이 법원에 의한 회사정리절차의 회생률보다 높아서 마치 기촉법이 더 효율적인 제도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이는 기촉법이 회생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먼저 맡아서 처리한 반면 회사정리절차의 경우 부도유예협약이나 워크아웃 등의 절차에서 이미 실패한 기업들의 사례를 다수 포함한 데에서 기인하는 “선점효과”에 불과할 뿐, 두 제도의 근본적인 효율성을 측정하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지난 9월 21일 금감위는 기촉법 연장 등의 수정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재경부에 제출하기로 하였으며, 10월 24일 재경부는 기촉법 개정 방침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결국 이번에 김종률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금감위와 재경부의 요구를 그대로 담아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지난 10월 21일 현행 “기촉법 14조 1항에 의한 채권행사 유예요청은 채권금융기관을 구속하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에 역행해서, 아예 채권행사 유예 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제 행정부에 의한 권리행사 제한이나 자금지원 유도 등과 같은 관치금융적 제도는 폐기해야 한다. 설사 기촉법의 유용성을 인정하여 연장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모두 삭제하고, 채권자간의 자발적 조정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일부 조항은 유지하되, 개정안의 14조 1항과 같이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모든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장시한도 5년이 아닌 3년 정도로 최소화해야 한다.

기촉법의 연장과 같이 중요한 법률개정 사안에 대해 입법예고 등 공식적 정부입법 절차에 의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정기국회 막바지에 와서 국회의원의 이름을 빌려 졸속 통과시키려고 하는 금감위와 재경부의 작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편, 김효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간투법 개정안은 사모투자회사(PEF)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설립 후 1년 이내에 사모투자회사(PEF) 출자금액의 60% 이상을 적법한 투자대상에 의무적으로 투자하도록 한 것을 50%로 그 비율을 완화하고 또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출자금액은 의무투자비율 계산에서 제외하도록 하며, 투자목적회사(SPC)의 출자자 요건을 완화하여 사모투자회사(PEF) 출자자 외에 투자목적회사(SPC)에 신용공여한 금융기관도 출자전환 등을 통해 투자목적회사(SPC)의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등이 주요 개정내용이다.

이것은 2004.10.5 간투법 개정을 통해 경영권 참여, 사업구조⋅지배구조 개선 등의 목적으로 대상회사의 주식 또는 지분에 투자하는 사모투자회사(PEF)를 도입하였지만, 그 설립⋅운용실적이 극히 미미하자, 투자대상 및 운용상의 제약을 크게 완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외국자본에 대항하여 구조조정 기업의 경영권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M&A에 특화하는 Buyout 펀드를 주된 목적으로 하여 도입된 사모투자회사(PEF)에 대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투자 등 포트폴리오 투자를 허용하는 것이 애초의 제도 도입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의 사모투자회사(PEF) 출자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민의 재산인 연기금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투자목적회사(SPC) 출자자 자격요건 완화는 사모펀드로서의 특혜를 누리는 사모투자회사(PEF)를 공모펀드처럼 운용하게 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경영참여 목적 의무투자비율 및 포트폴리오 투자 규제, 그리고 출자자 자격 요건 규제 등은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GP(무한책임사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립된 규제 원칙들이며, 법원의 판결에 의해 보호되는 장치들이다. 그런데 산업적 기반도 비할 바 없이 취약하고 제도를 도입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가 이러한 규제 원칙들을 허문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참여연대 논평 ‘자산운용업 규제완화는 제2의 종금사카드사 사태 유발 우려’(2005.6.23) 참조)

더구나 이번에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제출된 간투법 개정안의 내용은 2005.6.17 재경부와 금감위가 경제정책조정회의 안건으로 제출한 ‘자산운용업 규제완화 방안’ 또는 2005.11.21 재경부 금융정책국이 재경부 규제개혁추진위원회 안건으로 제출한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의 관련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올해 들어 이른바 ‘수요자 중심’의 금융규제 개혁을 명분으로 하여 사실상 피감기관(업계)의 민원성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는 규제완화 방안을 마련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주로 업계에 호의적인 외부전문가들의 형식적 심의를 거쳤을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참여연대 논평 ‘금감위는 금융기관 감독기구인가 민원처리창구인가’(2005.6.21) 참조)

결국 업계에 편향된 내용의 규제완화 방안이,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의원입법 형식을 통해 그대로 법제화될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간투법상의 사모투자회사(PEF) 규제를 이처럼 졸속으로 서둘러 개정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참여연대는, 감독당국의 행정편의적 발상에 기초하여 관치금융적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기촉법 개정안과, 업계의 민원성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하여 금융불안의 불씨는 만드는 간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권을 부여받은 국회의원이 사실상 정부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이름만 빌려주어 정부입법의 모든 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방조하는 것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기촉법과 간투법 개정안이 졸속으로 처리된다면, 이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국회는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고 신중한 심의를 통해 모든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노력을 통해 입법부로서의 권위를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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