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오해

최근 일부 진보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대단한 것 같다. 예전부터 단골메뉴처럼 거론되던 단기실적주의, 장기적 안목결여, 근로자 이익 침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한국경제의 저(低)투자, 저(低)성장 현상마저도 주주자본주의에 그 원인을 돌리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경제를 다시 고(高)투자, 고(高)성장의 길로 다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재벌에 대한 각종 지배구조관련 규제를 풀어 그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도된 것은 전혀 아니겠지만 이러한 주장은 그 동안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줄기차게 비판해오던 재벌들의 이해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적과의 동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은 한발 더 나아가 또 다른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즉, 재벌들이야 말로 창업 이래 주식을 장기보유하고 있는 진정한 대주주이기 때문에 재벌체제야말로 주주자본주의에 가장 충실한 모델이고, 따라서 지배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재벌개혁은 반자본주의적인 개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나오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정리해보기로 한다.

주주자본주의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은 왜 많은 이해관계자들 중 유독 주주에게 기업의 의사결정권이 집중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손쉬운 답은 주주가 잔여재산청구권자(residual claimant)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거래기업, 근로자, 채권단 등은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주주는 기업이 이윤을 창출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윤창출 유인이 있는 주주에게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집중시켜야 기업의 이윤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에 대한 즉각적인 반론이 있다. 그것은 고객, 거래기업, 근로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보상을 줄임으로써 주주가 손쉽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주주자본주의는 ‘장기’주주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단기성과가 아닌 지속가능한 성과를 위해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까지도 챙기는 그러한 주주들에게 기업의 의사결정권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과연 그러한 주주들이 실존하는지 반문할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도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창립자가 아직도 상당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소규모 기업의 경우에는 분명 ‘장기’주주가 있다고 하겠지만 지분이 분산된 대부분의 대형기업들에서는 ‘장기’주주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지난 몇 세기 동안 발전하면서 주주들이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까지도 보호할 수 있도록 각종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에도 있는 소비자보호법, 근로기준법, 환경보호법, 파산법 등이다. ‘장기’주주가 실존하지는 않더라도 ‘장기’주주처럼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영미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장기’주주로 등장하고 있다. 즉 개별기업에 대해 상당한 지분을 장기간 보유할 뿐만 아니라 경영진에게 지배구조개선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장기’주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 21세기 자본주의를 기관투자자자본주의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혹자는 우리나라 재벌이야말로 ‘장기’주주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주식의 보유기간만을 놓고 볼 때는 분명 장기주주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재벌기업들의 소유구조를 보면 많은 경우 지배주주와 그 일가가 직접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극히 미미하다. 지분이 적은 만큼 기업의 성과에도 관심이 적다.

또 다른 문제점은 비록 재벌들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잔여재산청구권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근로자, 채권자, 정부 등 다른 이해관계자보다도 먼저 기업의 부를 배당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개혁은 바로 재벌이 갖고 있는 이러한 소유구조의 문제와 부당내부거래의 유인을 최소화함으로써 재벌이 ‘장기’주주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 이 글은 머니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김우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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