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장제도 개선 방안’은 개선이 아닌 개악 방안

재계의 대변인이 된 정부가 앞장서 자본시장의 규율을 무너뜨리는 격

정부는 투자자 보호와 기업 투명성 제고 모두를 포기하려 하는가?



정부는 지난 6월 23일 한명숙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기업공개 및 시장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 발표하였다. 자본시장의 효율화 및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라는 듣기 좋은 명분하에 투자자 보호 원칙을 모두 무시하고, 기업의 투명성 제고 과제를 정부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번 방안은 자본시장의 효율화가 아니라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심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다음의 4가지 시장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증권집단소송의 남소 우려 때문에 회계감리 결과 공시의 일부 생략

현재 외감법 및 외감규정은 금감원장으로 하여금 증선위의 모든 회계감리 지적내용 및 조치내용을 감독원 인터넷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감리결과를 모두 공시하는 경우 ‘증권관련집단소송의 남소가 우려’된다며, 부실회계처리의 규모ㆍ고의성ㆍ영향 등을 고려하여 경미한 경우에는 공시 및 관련기관 통보를 생략할 수 있도록 관련법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리결과의 경중은 정부가 아닌 시장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회계투명성이란 회계처리기준위반에 대한 공시⋅제재의 투명성까지 포함하는 것인데, 이를 축소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정보에 있어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투자자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과 다름없다. 특히 감리결과의 공시 축소는 금감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인해 필요한 회계정보가 적시에 투자자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위험을 내포하며, 감독기관과 피감기업 간의 유착을 통한 비리가 발생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주장하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남소 우려는 검증되지 않은 재계의 엄살을 정부가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주요 법률회사가 모두 기업측을 대리하는 우리나라의 법률서비스 시장구조와 증거개시제도(discovery)가 인정되지 않는 소송절차 하에서는 집단소송이 활발하게 이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이미 밝혀진 상황이다. 작년 초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 분식회계에 따른 증권집단소송을 2년간 유예하고, 금융감독당국이 법령상의 근거도 없이 자진고백시 감리를 면제하고 역분식까지 허용하더니, 이제는 아예 정보차단을 통해 증권집단소송제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언제부터 정부가 재계의 대변인이 된 것인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재벌 소속 비상장법인의 공시규정 완화

지난 4월 금감위는 기업의 공시부담 완화를 위해 상장회사에 대한 공시비율기준 완화, 누계기준 폐지 및 수시 공시사항 축소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정부는 상장사의 공시의무 완화 추세에 맞추어 비상장법인의 공시의무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누계기준의 건별기준 대체, 공시대상 거래금액 한도 상향조정 등 비상장법인의 공시의무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상장법인을 통한 부당내부거래ㆍ편법경영권승계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날로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장사를 기준으로 비상장법인의 공시의무를 완화하는 것은 정책을 거꾸로 펼치는 격이다. 현재 재벌 비상장계열사의 공시의무는 재벌의 소유구조ㆍ내부거래 등의 불투명성에 대한 거의 유일한 감시수단이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 및 두산그룹의 비리 등을 통해 공시 강화의 필요성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시의무를 완화하는 것은 정부가 재벌의 로비에 굴복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재무제표의 확정 및 공고 의결기관을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로 변경

정부는 분기배당제도 및 결산실적 수시공시제도에 따라 사실상 이사회의 의결로 재무제표가 확정됨에도 불구하고, 현 법규는 반드시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확정되는 것으로 규율하고 있어 현실과 괴리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상장법인의 재무제표 확정을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의결로 하도록 관련법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제도의 현실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총회의 권한을 이사회의 권한으로 바꾸는 것으로, 회사법의 본질적인 사항 변경에 해당한다. 기업의 이해관계만으로 회사법의 근본 틀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정책은 주주총회의 형해화를 가져와 주주총회를 무력화시키고, 주주의 권한을 축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정부의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손해배상 산정기준의 변경

정부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에서 청구권자가 ‘유가증권을 취득함에 있어 실제 지급한 금액에서 변론종결 당시의 시장가격과의 차이’를 원칙적인 배상의 기준금액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변론종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게 되어 시장상황 등 다른 많은 요인들이 주가에 반영되므로 이때의 시가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며, ‘상당한 인과관계’에 있는 손해가 배상될 수 있도록 관련법령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한 인과관계’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은 증권관련 손해배상소송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다. 이는 손해배상액 산정의 문제가 아닌 손해 여부에 대한 인과관계의 입증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으로서, 주주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시도는 투자자 보호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일부 대기업의 편의만을 봐주는 식의 무조건적 규제완화가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 체재를 갖출 수 있도록 시장을 규율하는 것이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재벌기업 관련 비리 사건을 통해 시장이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서둘러 시장 규율에 필요한 적절한 제도들을 철폐하여 시장실패를 가중시키려 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이번 시장제도 개선방안이 자본시장의 효율화는커녕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며, 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시장제도 개선방안의 철회를 촉구한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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