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알량한 상법 개정안

법무부 주최로 4일 상법(회사법) 개정 공청회가 열렸다. 상법은 거대 재벌기업부터 1인 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회사에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법이다. 올 하반기 최대의 경제 이슈 중 하나가 상법 개정인 만큼 어제 공청회에서는 쟁점마다 뜨거운 논란이 오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관련 법제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크게 달라졌다. 그 와중에 여전히 현실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경제법이 상법이다.

우리나라 상법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기업집단 문제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세계 각국의 회사법 체계는 개별기업을 독립된 법인격으로 설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개별기업이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통의 지배권(common control) 하에 있는 다수의 기업, 즉 기업집단이 경제활동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대자본주의의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재벌만이 아니라 미국의 GE, 일본의 미쓰이그룹,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도 기업집단이다. 따라서 이러한 법체계와 경제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각국 회사법의 주요 고민거리다.

미국처럼 판례를 통해 발전된 법리에 의거하는 경우도 있고, 독일처럼 성문법을 통해 기업집단(콘체른)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방식이 더 우월한지 예단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 상법이 이에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법이 기업집단의 문제에 침묵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은 의외로 심각하다. 공정거래법이나 금융관련법에 기업집단의 문제를 맡길 수밖에 없는데, 이들 법률의 특성상 자의적 기준을 적용한 사전적 규제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재계가 그토록 비판하는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대표적 예다. 물론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가장 효율적 규제수단은 아니다. 그러나 상법에 의한 사후 규율을 반대한다면 공정거래법 등에 의한 사전 규제를 수용해야 한다. 이도 저도 싫다는 것은 억지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재계의 요구가 결국은 ‘규율 없는 천민자본주의’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법무부의 이번 상법 개정안은 사후적 규율 강화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대표소송제 도입, 이사의 자기거래 규제범위 확대 등이 그것이다. 지분율 50% 초과의 모자회사 관계를 조건으로 하는 이중대표소송제도는 10대 재벌의 비상장 계열사 246개사 중 35.6%인 85개사에만 적용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삼성에버랜드, SK C&C 등 각 재벌그룹의 소유지배구조상 핵심회사는 포함되지도 않는다. 남소 우려? 기가 막힌다.

또한 자기거래(회사가 하지 않아도 될 거래를 이사 또는 지배주주를 위해 하는 것)의 규제 범위는 확대한다면서 회사기회의 편취(회사가 직접 할 수 있는 거래를 이사 또는 지배주주가 가로채는 것) 금지는 왜 언급조차 않는지 납득할 수 없다.

이처럼 상법에 의한 사후적 규율 강화는 실효성이 극히 의심되는 반면, 경영권 방어 장치로 악용될 수 있는 수단(주식종류의 다양화)을 허용하고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한도를 제한하는 등 그동안의 지배구조 개선 성과마저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런 알량한 상법 개정안을 놓고 재계와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사전적 규제를 폐기할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할 걸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정녕 참여정부의 귀결점은 ‘천민자본주의 하기 좋은 나라’인가.

*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김상조(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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