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은행법상 ‘사실상 지배’ 개념의 필요성

송호창 변호사,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



최근 금융시장의 과점화 현상과 은행 민영화 문제

2002.3.6.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금융산업 발전의 특징’이라는 자료를 보면 은행산업의 경우 상위 3대 은행의 시장점유율이 97년 36%에서 지난해 54.6%로 크게 높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일반산업에서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에서도 소수 회사에 의한 과점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의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간 합병이 추진되고, 그리고 이른바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간의 차별화 현상이 급진전된 결과로 평가된다.

물론 금융국제화를 통해 해외경쟁이 강화됨과 동시에 금융겸업화에 따라 금융업종간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이므로, 은행산업의 집중도 상승이 곧바로 독과점의 폐해를 낳을 것으로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거대 은행의 출현에 따른 경쟁 감소의 잠재적 비용을 완화하고, 나아가 개별은행의 부실이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은행의 소유지배구조의 건전화는 더욱더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은행법 개정 움직임이다. 국유은행의 조기민영화 방침을 밝힌 정부는 작년 말 동일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4%에서 10%로 상향조정하는 것은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최근 국회 재경위와 법사위는 대주주에 대한 금융감독기준을 일부 강화한 수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은행법 개정 문제는 사실상 일단락되었다.

정부와 국회는 동일인의 주식보유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대신 대주주에 대한 금융감독을 엄격하게 할 것이므로, 특정 산업자본에 의한 은행 사금고화 문제는 방지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하고 있다. 그러면, 기존 은행법 또는 개정 은행법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배에 따른 문제를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차단장치를 갖고 있는 것일까.

동부컨소시엄의 도전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동부그룹 중심의 동부컨소시엄이 서울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동부컨소시엄은 기존 은행법상의 동일인 개념이 친인척 등 혈연관계자와 공정거래법에 따른 기업집단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자신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실상 지배여부는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즉 개개의 컨소시엄 참여기업(산업자본)은 4%의 동일인 보유한도를 초과하지 않으며, 은행법상 동일인이 아닌 이들 기업이 경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담합에 의한 사실상의 지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 은행법 제15조와 시행령 3조

기존 은행법 제15조(동일인의 주식보유한도 등)는 특정인의 은행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제한하는 핵심규정이다. 이 규정은 한편으로 그 특정인이 ‘동일인’에 해당하는 경우에, 다른 한편으로 동일인이 은행을 ‘사실상 지배’하게 되는 경우 그들의 주식보유한도를 제한하는 두 가지의 방패막이를 가지고 있다.

<은행법>

제15조 (동일인의 주식보유한도 등)

① 주주 1인과 그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이하 “동일인”이라 한다)는 금융기관의 의결권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4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하거나 사실상 지배(동일인이 자기 또는 타인의 명의로 소유하거나 담합에 의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하 이 조, 제16조 및 제26조에서 “보유”라 한다)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와 제2항 내지 제4항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상사법(商社法)에서는 일반적으로 특별관계인의 과도한 지배력 행사를 막기 위한 다양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일정한 특별관계자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주식소유한도를 정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대부분의 법률에서 특별관계인의 범주는 그 제한의 취지와 목적에 적합하도록 정하여져 있다.

그런데 기존 은행법 제15조와 동법 시행령 제3조에서 ‘동일인’은 친인척 등 혈연관계자와 공정거래법상의 기업집단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적어도 문리적으로만 본다면 동부컨소시엄과 같은 새로운 지배형태에 대해 규제기능을 다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은행법에서도 증권거래법의 특별관계자와 같이 동일인의 범주를 확대하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 기존 은행법에서는 ‘사실상의 지배’에 관하여 동일인이 자기 또는 타인의 명의로 소유하거나 담합에 의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소유와 담합을 사실상 지배에 대한 하나의 태양으로 예시하고 있으며, 주식지분이나 의결권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태양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명시적인 규정만으로 다양한 현실관계를 모두 포함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문제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M&A등 회사장악과 지배 수법에 대응하여 그 규제방식을 모두 법규정에 나열할 수는 없다는 관점에서 입법기술적으로 사실상 지배의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규정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방지한다는 은행법의 입법취지를 감안할 때, ‘사실상 지배’ 개념은 보완·발전시켜야 할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존 은행법에서 사실상 지배의 주체를 동일인으로 제한하고 있는 점과 사실상 지배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동일인 보유한도를 조정하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은행지주회사법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입법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지주회사법(Bank Holding Company Act)을 통해 은행에 대한 지배를 규제하고 있는데, 이 법에서는 은행지주회사를 “은행을 지배하고 있거나 또는 이 법에 의한 은행지주회사를 지배하거나 지배하게 된 모든 회사”로 정의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 엄격한 금융감독 감독권 아래에서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은행지배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은행주식 보유비율이 유일한 결정적 기준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즉 특정회사가 은행의 의결권있는 주식을 25%이상 소유하면 원칙적으로 지배로 간주되고, 5%미만의 경우는 감독당국이 특별히 입증하지 않는 한 비지배로 간주하며, 5∼25%경우는 감독당국의 재량범위내에서 지배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입법방식이 시사하는 것은 규제와 감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규제대상 행위를 선험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의 결과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방식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개정 은행법의 문제점

이에 비추어 볼 때, 최근의 개정 은행법은 여전히 동일인 보유한도라는 사전적 기준에만 집착하고 있으며, 나아가 실질적 효력은 없었지만 그나마 기존 은행법에 존재했던 ‘사실상의 지배’라는 표현마저 삭제한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특정행위로 인해 사실상 지배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길이 더욱 약해진 것이다.

<개정 은행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8. “동일인”이라 함은 본인 및 그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이하 “특수관계인”이라 한다)를 말한다.

9. 비금융주력자라 함은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다. 증권투자회사법에 의한 증권투자회사로서 가목 또는 나목의 자가 그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4를 초과하여 주식을 보유(동일인이 자기 또는 타인의 명의로 주식을 소유하거나 계약 등에 의하여 의결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하 같다)하는 경우의 당해 증권투자회사

제15조(동일인의 주식보유한도 등) ①동일인은 금융기관의 의결권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0을 초과하여 금융기관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와 제3항 및 제16조의2제3항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결국 개정 은행법으로 인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은행을 지배할 수 있는 산업자본의 입지는 더욱 넓어졌다. 사실상 지배라는 불확정 개념을 통해 동일인의 주식보유한도를 제한하는 것은 금융감독기관의 감독권한 확대와 더불어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실을 조율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감독과 규제를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은행법은 금융시장의 안정적 성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본법으로써 다른 은행관련법규의 중심에 위치하는 법률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의 정의나 규율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지배를 막고, 양자의 분리를 원칙적으로 견지하여야 한다는 입법취지를 제대로 살리도록 규정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는 기존 은행법 또는 개정 은행법에서 산업자본의 컨소시엄 구성에 의한 은행경영이 법리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려야 하며, 다양한 우회적 수단을 통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사실상의 지배’ 개념에 기초한 은행법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송호창(동서법률사무소 변호사,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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