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성명

정부는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는 조치들을 철회하라!

우리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정부가 각종의 재벌개혁 정책들을 폐기하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의 원상회복과 더불어 개혁입법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재벌총수들과 합의하에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의 해소, 재무구조의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진의 책임 강화 등 5대 원칙에 근거한 재벌개혁과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노동자, 시민 등을 개혁주체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개혁대상으로만 설정한 구조조정 정책은 실패가 예정된 것이었으며,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고 정치논리에 좌우되어온 정부의 개혁은 원칙을 잃고 표류하다 결국 재벌의 압력에 밀려 실종되었다.

1999년 8·15 경축사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기존의 5대 원칙에 재벌의 금융지배 방지, 순환출자와 내부거래 억제, 변칙상속 근절 등을 추가한 이른바 ‘5+3’ 원칙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정부는 출자총액제한, 금융계열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및 의결권 제한 등 ‘5+3’ 원칙에 따른 핵심적인 개혁조치들을 모두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만들고 추진해온 개혁정책들을 불과 2년만에 합리적 명분 없이 스스로 폐기처분 하는 것은 재벌의 로비와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정부는 이제 완전히 개혁의지를 상실했다.

우리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최근 내놓고 있는 개혁후퇴 조치들을 규탄하며,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재벌정책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첫째,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재벌개혁 정책의 핵심으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이 제도는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 하에 한 때 폐지되었으나 그 후 재벌의 계열사간 순환출자가 급증하여 각종 폐해가 야기됨에 따라 99년도에 정부가 나서서 부활시킨 것이다. 실제 경험이 이 제도의 필요성을 강력히 입증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재벌의 로비에 밀려 핵심적인 개혁정책을 폐기처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5%이상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이를 보완하겠다고 하나, 이는 재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으로, 규제체계를 복잡하게 함으로써 규제비용을 증가시키고 그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정부는 애초의 방침대로 내년 3월말까지 25%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처분명령을 내려야 한다.

둘째, 금융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금융보험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게 되면, 실질적인 내부지분율이 증가하여 재벌총수들이 소수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폐해가 심화되고 기업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금융기관의 자산은 그 대부분이 고객의 돈인데 이를 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또한,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보유는 출자총액제한에도 포함되지 않으므로, 소유규제도 의결권규제도 작동하지 않는 규제의 사각지대가 창출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재벌의 계열금융기관을 이용한 문어발식 확장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산업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의결권 제한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셋째, 30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30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30여개의 기업·금융 관련 법률에서 준용되고 있는 재벌정책의 큰 틀로서, 이것이 변동될 경우 이와 연관된 정책들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결국 재벌정책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지정제도 자체를 손댈 것이 아니라, 지정된 결과 파생되는 규제의 실제적 내용을 검토하여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하고 꼭 필요한 규제는 유지·강화하는 방식으로 불합리한 요소를 개선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 중에서 계열회사간 상호출자금지, 신규채무보증금지, 출자총액제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 등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30대기업집단 외에도 확대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은행주식의 동일인 소유한도 상향조정은 산업자본과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로 해야 한다.

건전한 금융자본의 육성을 위해서는 산업자본과 완전히 분리된 금융전업그룹에 은행의 소유경영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정부안에 따르면, 은행주식 소유한도를 10%로 높이고 4% 이상에 대한 의결권은 제한하되, 금융주력자로의 전환계획을 내놓을 경우에는 4% 이상에 대해서도 의결권행사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의결권규제와 금융감독을 전제로 산업자본에 10%의 은행주식 보유를 허용하고, 또한 미래의 전환계획을 조건으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산업자본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확인하기 이전에는 반드시 4% 보유한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은행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대표소송을 1주만 있어도 가능하게 하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등 일반 상장법인보다 더 엄격한 지배구조 정책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시민단체와 전문가, 투자자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정부가 최근 증권관련집단소송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분식회계의 경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만 적용하게 되어 있고,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을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있는 등 제도의 실효성을 해칠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가 우리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와 국민의 개혁에 대한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즉각 개혁후퇴 조치들을 철회하고 더 진일보한 개혁정책들을 내놓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2001년 10월 23일

경실련, 대안연대회의, 민교협, 민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 함께하는시민행동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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