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위해 출자총액제한 폐지한다고요?

"이 얼마나 낯간지러운 주장입니까"

 

(편집자주)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으로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다음은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의 글입니다.

재벌개혁 연재① – 그 법 통과되면 전 보험해약할 겁니다

재벌개혁 연재② – 내년 4월 시행 앞둔 집단소송제, 재계 반발 여전

1. 우리, 객관적 자료 좀 갖고 토론합시다

"주가는 떨어지고 대학 졸업해도 취직 못하는 이 판에, 투자하겠다는 기업 막는 정신 나간 놈이 도대체 누구냐?"

출자총액 제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듣는 가장 직설적인 반론입니다. 명색이 경제학 교수인데, 어찌 그 절박한 심정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출자총액 제한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못할까요? 출자총액 제한을 풀면 주가도 올라가고 취직도 쉽게 되고,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그 누구도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문제 자체가 잘못 출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주식을 살 때도 투자한다고 말하고, 공장 짓고 기계 살 때도 투자한다고 말합니다. 전자의 주식투자와 후자의 설비투자는 같은 '투자'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전혀 별개의 개념이죠.

출자총액 제한은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한 규제가 아닙니다. 한 기업이 다른 계열사에 출자할 수 있는 총량, 즉 주식투자의 양을 규제하는 것일 뿐, 출자 받은 계열사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부채를 상환할 수도 있고, 설비투자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다른 계열사에 재출자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100만큼 출자총액 제한을 받으면 100만큼 설비투자가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이럴 때 '혹세무민'이라는 단어를 쓰던가요?

물론 출자기업에 부과된 주식투자 제한이 피출자기업의 설비투자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기는 할겁니다. 실물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무의미한 규제라면 그냥 둘 이유가 없겠지요. 저라도 당장 폐지하라고 주장할 겁니다.

문제는, 출자총액 제한이 설비투자에 미치는 효과는 복잡한 중간과정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반해,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연구를 하고 싶어도 연구할 자료가 없습니다.

먼저, 재계에 묻고 싶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와서 재계에서는 출자총액 제한이 설비투자 감소를 부채질하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큰 목소리로 외치셨는데, 어느 기업에서 어떤 설비투자가 문제가 되었나요? 기업비밀이라서 구체적으로 밝히기가 어렵다구요? 기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집계한 2차 자료 형태로나마 공개할 용의는 없는지요?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어느 경제신문에서 보도한 2가지 사례[SK그룹의 카드회사 진출 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분구조 강화를 위한 순환출자 건(현대모비스 → 현대자동차 → 기아자동차 → 현대모비스)] 뿐인데, 이 2가지가 과연 설비투자와 관련된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2가지 사례만으로는 재계 주장의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지 않나요? 출자총액 제한과 같은 중요한 경제정책의 수정을 요구하신다면, 적어도 그에 합당한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정위에도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정위가 출자총액 제한 제도의 골격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료에 관한 한 공정위도 참 인색하더군요. 예를 들어, 출자총액 제한의 기본개념인 순자산(자기자본 – 타회사 출자액)이 일반 기업회계상의 순자산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으며, 해당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동일한 방식의 수치를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공정위는 지금까지 그룹 전체의 집계자료만 발표하셨지, 개별기업 차원의 자료는 한번도 공개하신 적이 없으시죠? 업무상 취득한 자료를 공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구요?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와 기업비밀 보호 사이에 절충가능한 영역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솔직히 공정위가 그러한 노력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재벌정책의 주무부서이자 관련자료의 유일 생산처인 공정위가 건설적 논의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결국 재벌개혁 관련 논쟁이 아무 의미 없는, 아니 지극히 유해한 '색깔논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정말 경제인만큼은 정치인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객관적 자료를 갖고 건설적 토론을 하였으면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2. 세계 유일의 기업규제? 세계 유일의 재벌구조!

출자총액 제한의 완화 내지는 폐지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한결같은 주장, "자본주의하는 나라치고 이런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이 비슷한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느슨한 것이니, 세계 유일의 기업규제라는 주장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럼 왜 이런 규제를 하나요? 그 규제의 대상이 되는 재벌구조 역시 세계 유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자총액 제한이나 30대 재벌 지정과 같은 규제를 천년만년 유지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저도 이런 규제가 필요없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입니다.

규제수단과 규제대상은 한 묶음입니다. 규제수단을 통해 규제대상의 변화를 유도하고, 규제대상이 변화하면 규제수단도 그 존속 여부와 형태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출자총액 제한의 존폐 여부가 논란이 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그 대상인 재벌구조가 얼마나 변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먼저, 출자총액 제한 제도가 뭔지부터 설명드려야겠군요. 한마디로, 재벌 계열사가 순자산의 25%를 초과하여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87년에 처음 도입될 때는 40%였는데 93년에 25%로 강화되었다가, 98년에는 이른바 내국인 역차별 해소를 위해 폐지되더니, 99년 재벌개혁을 위한 '5+3 원칙'의 일환으로 부활되는 듯 했는데, 초과분 해소시한인 내년 3월말이 오기도 전에 다시 존폐위기에 선, 그야말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제도입니다. 그만큼 재벌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지난주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재벌총수가 사실은 소액주주임에도 불구하고 황제경영을 할 수 있는 기술 중의 하나가 바로 계열사 출자입니다. 계열사 돈도 똑같은 돈인데, 뭐가 문제냐구요?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그렇죠.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A계열사가 B계열사에 출자하면, 그룹 내에서 돈이 이동하는 것일 뿐이지, 그룹 밖에서 새로운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B계열사의 장부상에는 자본금이 증가하고, 이것을 재벌총수가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자금유입 없이 가공자본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생돈을 낸 외부주주의 의결권은 희석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죠. 누구는 돈 한푼 내지 않고 경영권을 획득하는데, 누구는 생돈 내고도 주주 대접 못 받는다면 문제 아닙니까?

자본주의란 원래 그런거라구요? 천민자본주의도 자본주의임에는 틀림없지만, 효율성과 형평성 양 측면에서 이보다 훨씬 우월한 자본주의도 있으니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식들 보기에 더 떳떳한 태도 아닐까요? '재벌 죽이기'가 아니라 '재벌 거듭나게 하기', 이것이 바로 재벌개혁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재벌들이 실제 계열사 출자를 어느 정도 이용하고 있을까요? 올해 4월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0대 재벌 전체로는 출자총액 비율이 순자산의 35.6%에 이릅니다. 순자산의 35.6%라…. 감 잡기가 어렵죠? 다른 방식으로 설명드려야겠군요.

순자산은 자기자본에서 계열사 출자분을 뺀 것인데, 그냥 자기자본으로 생각하면 재벌들이 자기자본의 30% 정도를 다른 회사 주식으로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재벌의 평균 부채비율을 200%로 보면, 자기자본 100에 부채 200을 더한 총자산 300 중에서 30정도가 다른 회사 주식이라는 말입니다. 즉 총자산의 10분의 1이죠. 실제 삼성그룹은 총자산 70조에 6.2조(8.9%),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현대그룹은 54조에 5.0조(9.3%), LG그룹은 52조에 7.5조(14.4%), SK그룹은 47조에 10.4조(22.1%)를 다른 회사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룹마다 경영스타일이 다르니, 출자총액 비율도 차이가 많이 나죠. 특히 삼성그룹은 출자총액 제한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삼성그룹은 지난주에 설명드렸던 계열금융기관, 특히 삼성생명의 돈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 행사 허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남의 돈'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죠.

기업을 하려면 전략적 제휴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다른 회사 주식을 보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30대 재벌 소속 800여 개의 기업 모두가 전략적 제휴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총자산의 10%에서 20%까지를 다른 회사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두 개 기업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800여 개 기업 모두가 평균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기업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귀중한 돈을 땅 사고 공장 짓고 기계 설치하는데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재벌총수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계열사들이 총자산의 10분의 1 이상을 묻어두고 있는 것, 이거야말로 기업경쟁력의 저해 요인 아닙니까?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토목분야에서는 세계최고 수준의 시공능력을 갖고 있다는 현대건설이 오늘날 왜 저 모양이 되었습니까? 계열사 지원하다가 거덜난 겁니다. 삼성자동차의 자본금 8000억 원 중 이건희 회장이 출자한 돈은 0.2%인 16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 아십니까? 나머지는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 등이 댄 건데,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가면서 모두 휴지조각 되었습니다.

옛날 얘기 아니냐구요? 지금도 이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SK글로벌이라는 회사는 외국 투자펀드가 내놓은 SK텔레콤 주식을 떠안는 데에 1조 가까운 돈을 썼습니다. 단지 최태원 회장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죠. SK그룹의 출자총액 비율이 굉장히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정몽구 회장의 취약한 지분구조를 강화하는데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현대모비스 → 현대자동차 → 기아자동차 → 현대모비스로 한바퀴 뺑 돌아가는 완벽한 순환출자는 계열사 출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비투자 활성화를 빌미로 출자총액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얼마나 낯간지러운 이야기입니까? 진정 떼돈 버는 사업이 있으면, 새로운 계열사 만들지 말고, 기존 회사의 사업부 형식으로 하면 됩니다. 왜 그렇게 안하느냐, 새로운 자금조달과정에서 재벌총수의 지분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재벌총수의 지배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열사 출자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출자총액 제한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3. 공정위, 용기를 내십시오. 재경부, 정신 차리십시오.

공정위가 잘 버텨오다가 막판에 자충수를 두었습니다. 내년 3월말까지 25%초과분을 해소하지 못하면 과징금 부과 및 주식처분 명령을 내리게 되어 있는 원래의 규제를 폐기하는 대신, 초과분에 대해서 의결권만 제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게 문젭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말했듯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사회주의적 발생이라서 문제냐구요? 천만에요. 직접적 상호출자, 자사주, 감사(위원) 선임의 경우 등에는 상법과 증권거래법에도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장원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들입니다. 계열사 출자도 주식시장의 기업경영 감시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총량을 규제하는 출자총액 제한 역시 시장원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사회주의적 발생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본주의적인 발상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 2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 아무 실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A, B 두 계열사에 각각 순자산의 20%, 10%, 도합 30%를 출자하였습니다. 결국 초과분 5%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해야 하는데, A, B 두 계열사 중 어느 쪽을 제한해야 하나요?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 공정위의 생각인데, 만약 B 계열사 쪽의 사정이 더 급하다면, A 계열사 주식을 어디다 맡기고 B 계열사 주식을 빌려오는 식의 장난을 칠 겁니다. 결국 주주총회 때마다 계열사 지분을 조정하는 일이 벌어질 거고, 기업은 기업대로 공정위는 공정위대로 고생만 했지, 규제의 효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규제하면 안돼죠.

공정위께 부탁드립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 실수하지 마시고, 애초에 정한 원칙대로 밀고 나가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그런데, 최근 재경부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3년 후에는 출자총액 제한을 폐지하겠다고 재경부 장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열불 터집니다. 지금 출자총액 제한 제도의 모습이 어떤 지 아십니까? 이번에 입법예고된 것까지 합치면 출자총액 제한의 예외로 인정되는 것이 10가지가 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죠. 거기다가 앞서 설명한 것처럼, 25%를 초과해도 실효성 있는 제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3년 후에 폐지하겠다고 하면, 어느 순진한 재벌이 이 규제를 지킵니까?

규제는 단순해야 하고, 그리고 제재와 보상의 기준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5% 규제를 지킨 재벌에게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10% 초과한 재벌과 20% 초과한 재벌 사이에 제재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3년 후에 없어질 규제를 재벌들이 성실히 따르리라고 생각하신다면, 재경부가 너무 순진한 거 아닙니까? 지금 재경부는 재벌의 위법행위를 조장하시는 겁니다. 아니면, 겉모양만 유지하고, 실질적으로는 3년 후가 아니라 지금부터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규제로 전락시킴으로써, 재벌의 요구에 굴복하신 겁니까? 출자총액 제한이 부활된 이후 지금까지 재벌들은 초과분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려왔는데, 재벌이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면 다 들어주시는 겁니까?

재경부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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