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벌에 은행마저 넘겨주겠다니

재경부는 조급증에서 벗어나라

다음은 11월 15일자 동아일보 여론마당에 “‘은행법 개정’ 신중해야”란 제목으로 게재되었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의 글입니다.

얼마 전 제일은행 호리에 행장이 사임했다.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부실채권 증가 때문에 외국인 대주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았다는 것이 항간의 소문이다. 외국 투자펀드가 국내 은행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경영실패에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를 경질하는 모습은 충격적일 만큼 신선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업료(공적자금)를 지불한 제일은행 사례로부터 우리가 배워야만 할 작지 않은 교훈일 것이다. 문제는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외국 투자펀드가 아니라, 국내 주주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은행경영을 적극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가 답안을 제출했다. 한마디로 재벌에 은행을 넘겨주겠단다.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감을 느낀다. 물론 재경부는 사금고화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10%로 올리되 대주주에 대한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금융주력자로 전환할 계획을 승인받은 경우에만 4%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추가심사를 거쳐야만 10%초과 보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 문제부터 살펴보자. 경제위기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금융감독당국의 능력(전문성)과 위상(독립성)에 대한 신뢰기반은 여전히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각종 의혹 사건들에서 금융감독당국은 불신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재벌로부터 계열분리된 금융주력자가 은행을 인수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재벌이 제2금융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금융주력자는 은행만이 아니라 증권사 투신사 보험사 등을 거느린 금융복합그룹(financial conglomerate)이 될 것이다. 금융복합그룹에 대한 통합적 감독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국제 금융감독기구 차원에서도 최근에야 논의되기 시작한 미완성의 난제다.

더군다나 지금 재경부는 금융 주력자로의 전환이 완료된 이후가 아니라, 미래에 금융주력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현재의 산업자본에도 은행 주식의 보유와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겠다는 것 아닌가. 산업과 금융이 결합된 혼합형 복합그룹(hybrid conglomerate)에 대해서도 금융감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니 믿어달라는 얘기다. 재경부가 순진한 것인가.

그러면 재경부가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행 주식을 매각해서 공적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겠다는 의도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의 증시상황에서 은행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 수는 없고, 서울은행 매각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외국 투자펀드는 엄청난 특혜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재벌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적자금 회수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은행의 건전한 소유지배구조 구축 역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다. 경영 실패에 책임을 물어 은행장을 경질하는 역할을 재벌 총수에게 맡기자는 주장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재경부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상조(한성대 교수·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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