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기업집단 지정정도 완화 관련 참여연대 입장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 완화는 재벌개혁의 후퇴

기업지배구조를 국제적 수준으로 전환하도록 제도장치를 마련하고

재벌들이 이를 실천할 경우에 자산 기준 전환을 고려해야

1. 지난 10일 정부와 여야는 경제정책협의회를 개최하여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를 기존의 ‘자산순위’에 근거하지 않고, 일정수준의 ‘자산규모’에 근거하여 지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앞으로 규제를 받을 기업집단의 규모에 대해서는 공정위 결정 사안으로 떠넘겨져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현행보다는 대상기업집단이 대폭 축소될 것이 예상되는 점에서 이번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의 완화는 재벌개혁 후퇴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정부는 지난 5월 31일, 1차로 출자총액제한 완화,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제한 해제 등의 개혁후퇴 조치를 실시하였기에 이번 합의는 이에 연이어 내놓은 개혁 역행 조치다. 또한, 정부가 개혁후퇴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해 ‘정책협의회’라는 것을 열어서 마치 국민적 여론을 수렴한 것처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런 중대한 개혁역행조치들을 시행함에 있어서 제대로 국민여론을 수렴하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

2. 현재 30대 기업집단에게 적용되는 공정거래법상의 주요 규제내용에는 계열회사간 상호출자금지, 신규 채무보증금지, 출자총액제한, 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계열사 주식소유 금지 등이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력한 재벌의 선단식 경영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들로서 여전히 그 존재필요성이 있는 규정들이다.

3. 작년의 경우, 30대 기업집단의 출자총액(50.8조원)은 전년에 비해 4.9조원 증가하였고, 순자산 대비 출자비율(35.6%) 또한 전년(32.9%)에 비해 증가하였다. 그리고 계열사수 증가(80개 증가) 및 영위업종수의 증가(0.4개)에 비추어보았을 때, 문어발식 확장 경영의 우려는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내부지분율은 작년(43.4%)에 비해 1.6% 증가한 45.0%에 이르러 총수 1인이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과다한 계열사 지배력을 행사하는 소유구조가 여전한 실정이다.

4. 이런 상황에서 계열사간 상호출자금지는 가공자본 창출을 통한 선단식 경영과 지배주주의 초과지배력 행사를 막기 위한 당연히 조치이며, 그 대상폭을 30대 그룹 이상으로 오히려 확대시켜야 할 제도이다.

또, 재벌의 순환출자 규모를 줄이고 재무 건정성을 향상시키는 등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억제하고 핵심사업에 집중토록 유도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특히, 작년의 경우 5대 재벌그룹의 경우 계열사에 대한 출자액 증가가 5.8%였음에 비해 6~30대 그룹의 경우 21.1%였다는 점을 보면, 이번 조치로 대상이 좁혀져서는 아니되고 오히려 제도를 일반화하고 일정규모이하의 기업에게는 면제를 주는 방안으로 검토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상호지급보증문제는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가공의 자본창출행위나 경영진의 배임적 보증행위를 견제할 만한 마땅한 시장의 룰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안이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제한 역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와 고객의 신탁재산으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증폭시키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유지되어야 하는 제도이며, 채무보증 금지 또한 재벌의 차입경영과 연쇄도산의 폐해를 시정하는 것으로 IMF 위기 후 상위재벌보다 하위재벌에서 더 많은 도산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 역시 해제할 것이 아니다. ‘상호출자 금지,’ ‘그룹소속 창투사의 주식소유 금지,’ 그리고 ‘그룹소속 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은 가공자본 창출의 원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대상이 확대되어야 한다. 자산순위 또는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식소유가 분산된 공개기업의 경우에는 모두 대상이 되어야 한다.

5. 재계는 대규모 기업집단지정제도를 주주에 의한 감시와 견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지배구조 개선이 정착되지 않고 주주에 의한 감시와 견제제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집단지정제도부터 완화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지정제도 폐지에 따라 상호출자가 허용되고, 창투사의 계열사 주식 주식소유가 허용되며, 계열금융회사의 의결권 행사가 허용되면 이는 곧바로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높여주고 소액주주의 힘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경우 주주에 의한 감시와 견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진정으로 시장의 힘에 의해 감시와 견제를 받고 싶다면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 현금흐름에 대한 권리와 경영통제권간의 괴리를 가져오는 부당한 거래를 모든 공개기업에 대해 일절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더구나, 대규모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를 폐지하면 시장은 어떤 경로를 통해 기업을 감시 견제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또한, 재계는 평등권 운운하는데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의 폐지야말로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상호출자 등이 허용되면 같은 돈을 투자하고도 의결권에 차이가 발생하는 정도가 심해지는데 이는 지배주주를 위해 소액주주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이라고 본다.

6. 정부는 이번 개혁후퇴의 명분으로 재벌의 투자진작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지 않는 것은 부실기업정리 등 개혁이 부진한 결과인데도 정부는 개혁은 제대로 추진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재벌폐해를 증대시키려 하고 있다.

또, 정부는 대기업집단지정제도 완화 등 재벌개혁 조치를 완화하는 대신, 증권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명분을 찾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집단소송제가 어떤 모양으로 도입될 지 알 수 없거니와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한정하고 각종 단서조항을 붙여 집단소송제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집단소송제를 실시한 이후의 효과를 봐가면서 기존 규제의 완화를 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집단소송제가 시장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는 주요 장치가 될 수 있으나 집단소송제만으로 재벌체제의 폐해가 없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규제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기업들이 제대로 하고 있다면 정부규제를 전혀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7.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들은 대부분 내부거래와 순환출자 규제 등으로 복잡하게 묶여있다. 이에 대해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는 지배구조의 획기적 개선과 시장에 의한 감시가 정착되기 전에는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의 졸속적인 개혁역행 조치는 즉각 중단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할 것이다. 개혁조치는 수개월 걸려 한 발 나갈까 말까 하면서 역행조치는 며칠만에 얼렁뚱땅 해치워서는 우리 경제는 결코 선진화할 수 없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재벌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총수의 불법.변칙 상속.증여를 엄정 단속하고, 주요 제2금융권을 재벌로부터 분리시키고,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해 시장에 의한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각종 제한조건으로 유명무실하지 않은 증권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독립적인 사외이사에 의한 내부감독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등의 법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규제를 함부로 완화하는 개혁역행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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