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뇌사상태에 빠진 출자총액제한제도

출자총액제한제 완화되자마자 이 수준이라면 앞으로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



– 공정위의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 발표에 대한 논평 –

1. 어제(7월 3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초 대폭 개편된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따른 재벌기업의 주식소유 현황을 발표하였는데, 공정위 발표자료는 재벌규제정책의 골간인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졌음을 공식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참여연대는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따른 출자현황을 발표하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점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2. 공정위의 발표를 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대상으로 올해 신규 지정된 7개 공기업집단 및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기존의 11개 재벌집단의 출자총액이 작년 39.0조원에서 올해 29.6조원으로 9.4조원 감소하였다고는 하나, 감소액의 대부분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는 무관한 요인(즉 현대중공업, 하이닉스 등 현대그룹의 계열분리, SKT의 신세기통신 합병, LG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등)에 기인한 것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더이상 재벌의 경영전략 선택에 별다른 제약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12개 재벌집단의 동일인 지분율은 작년에 비해 낮아졌으면서도(3.2%→1.7%) 계열사 지분율의 증가를 통해(36.3%→37.8%) 재벌총수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구조는 오히려 강화되었으며, 이들의 평균 영위업종 수 역시 증가(18.8개→19.2개)한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데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3. 나아가 올해 초 개정된 공정거래법에서는 동종업종 및 밀접한 관련업종에 대한 출자, 공기업 민영화 인수 참여 등에 대해 출자총액제한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사유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사실상 의미없는 규제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바로 그 결과가 이번 자료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공정위 발표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현재 12개 재벌의 출자총액 31.4조원 중 41.4%인 13.0조원(적용제외 5.9조원, 예외인정 7.1조원)이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작년 30대 재벌 전체의 출자총액 50.8조원 중 21.1%인 10.7조원이 제외되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출자금액 및 그 비율이 1년만에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4. 그런데 개정 공정거래법이 1월에 공표되고 그 시행령이 3월말에 개정되었음을 감안하면 올해 4월 1일을 기준으로 한 공정위의 발표자료는 출자총액제한제도 개악에 따른 악영향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대폭 확대된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사유를 악용한 계열사 출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며, 결국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규제대상보다 비규제대상이 더 많아짐으로써 규제의 실효성 없이 행정비용만 초래하고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5. 이러한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상기 12개 재벌의 경우 출자총액 31.4조원 중 13.0조원을 제외하고서도 순자산 대비 25%를 초과하는 법위반 출자금액이 3.4조원인 것으로 잠정집계되었는데, 그 중 61.1%에 해당하는 2.1조원이 SK그룹의 초과출자분이다. 그런데 최근 SK그룹은 KT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것을 비롯하여, 통신, 방송, 인터넷, 금융 분야에서 활발하게 기업인수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가스공사, 한전 자회사 등 공기업의 민영화에도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초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변경이 없었다면 SK그룹의 이러한 계열확장 시도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또한 순자산 대비 25% 초과출자분에 대한 주식매각 명령 조항을 삭제하고 단지 의결권만을 제한하도록 한 것, 나아가 의결권 제한대상 주식을 재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한 것이 규제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6. 한편 작년 11월 30일 이남기 공정위 위원장은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과의 대담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관련 자료를 최대한 공개함으로써 제도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출자총액제한제도 관련 현황자료를 발표하면서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출자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그룹별, 계열사별, 사유별 내역)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공정위로서는 업무상 취득한 개별기업의 영업비밀을 공개할 수 없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이와 관련된 모든 자료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공정거래당국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이미 31.4조원 중 13.0조원이나 규제대상에 제외되고 있고, 그 금액과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관련자료를 전혀 공개하지 않는 것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합리적 개선 노력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은 중요한 정부정책이 규제당국과 피규제기업 사이의 막후교섭을 통해 계속 왜곡되는 악순환의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7.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영원히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변경은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상황, 그리고 재벌기업에 대한 시장의 감시능력 수준과 보조를 맞추어 신중하게 검토했어야만 했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올해 초의 출자총액제한제도 변경은 재벌의 요구에 정부가 굴복함으로써 재벌개혁을 후퇴시킨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다시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도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제도개선에 대한 합리적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비규제대상을 최소화하고, 규제 준수 여부에 따라 확실한 보상과 제재가 주어지는 방향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전면 수정하여야 한다.끝.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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