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쏟아지는 정부의 재벌·금융개혁 후퇴 조치

출자총액제한 및 계열금융기관의 주식보유·의결권 제한 완화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

1. 정부가 출자총액한도 초과분 해소 시한 연장 등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추가로 완화하고, 재벌계열 금융보험회사들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며, 자기계열기업에 대한 주식보유한도를 확대하는 등 재벌·금융부문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부족하게나마 실시해오던 재벌·금융개혁을 경제불안 상황을 틈타 일거에 무너뜨리는 행위로서,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2.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30대 대기업집단의 출자총액 초과분(순자산의 25% 초과분)을 2002년 3월말까지 해소하도록 되어 있던 것을 2003년 3월까지 해소할 수 있도록 시한을 연장할 것과,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 예외조항의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재경부와 산업자원부 등 정부의 일부 부처에서는 출자총액제한의 한도를 기존 순자산대비 25%에서 30~40%까지 확대하는 등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틀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안까지 모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순환출자의 폐해를 시정하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억제하여 핵심사업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조치이다. 하지만 지난 5월 이후 재계와 정부의 일부 부처는 이 제도를 유명무실화하기 위해 꾸준히 제도의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해왔고, 지난 5월 31일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예외조항을 확대하고 적용유예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이 개정안에 대해서도 사실상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가 많은 상황인데도 정부는 추가완화 조치를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출자한도 초과분 해소시한을 1년 더 연장하는 것은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해 조금도 노력하지 않은 재벌들의 요구에 정부가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2000년 4월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킬 당시 정부는 전경련 등 재벌과 합의하여 2001년 4월로 제도시행시기를 늦추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한도초과 출자분에 대해서는 2002년 4월까지 해소하도록 여유기간을 줌으로써 실제 제도 시행 시기를 2년 이상 미루어주었다.

하지만 출자총액 초과분 해소시한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0대 재벌들의 출자비율은 1999년 32.5%, 2000년 32.9%, 금년 4월에는 35.2%까지 오히려 상승하였다. 즉 재벌들은 내년 4월까지 25%로 출자비율을 낮추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출자한도 초과금액 해소를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출자한도 초과분 해소를 재촉하기보다 오히려 재벌들의 장단에 맞추어 출자한도 초과분 해소시한을 더 연장하려 하고 있으니, 스스로 도입한 정책의 일관성도 지키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3. 또 정부는 30대 재벌 소속 금융보험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인 내부지분율이 증가하여 재벌총수들이 소수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폐해가 심화되고 기업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특히 금융보험회사 자산의 절대다수는 일반국민들의 저축자금인데, 이 저축자금을 재벌총수의 계열사 지배 확대에 악용되도록 정부가 방치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뿐 아니라 재경부는 올해 중으로 증권투자신탁업법, 증권투자회사법 등을 고쳐 30대 재벌 소속 금융회사의 신탁계정으로 취득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을 더욱 완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공정거래법에 이어 증권투자신탁업법 등마저 정부방침대로 개정되면 모든 금융기관에 대한 의결권 행사제한이 해제되는 것인데, 이는 금융회사의 고객 돈으로 취득한 계열사 지분을 통해 재벌총수가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4. 또한 정부는 지난 9월 18일 금융정책협의회를 열어, 증권시장의 인위적 부양을 위해 보험업법에 규정되어 있는 보험사의 자기계열사에 대한 투자한도 2%를 3%로 확대하고, 투신사의 경우에도 신탁재산의 7%로 제한하던 자기계열사에 대한 투자한도를 10%까지 확대하도록 규정을 고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보험사와 투신사의 자기계열 주식 보유 한도는 99년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제시한 재벌개혁, 금융개혁 조치의 핵심 결과물인데, 이를 되돌리는 것은 결국 현 정부가 이미 개혁을 포기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보험사의 경우, 자기계열 주식 보유한도 적용 시한을 1년간 유예하는 조치를 지난 5월 31일 이미 시행했는데, 이번에 아예 보유한도 자체를 3%로 원상복귀시키는 것은 주식시장 부양이라는 명목과는 아무 상관도 없으며 단지 특정 재벌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위와 같이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자기계열 주식 보유한도마저 완화해주는 것은, 결국 소유규제와 의결권규제 모두가 작동하지 않는 규제의 사각지대를 창출함으로써 ‘고객의 돈을 이용한 총수의 지배권 확대’라는 한국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근본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5. 정부는 또한 30대기업집단지정제도도 자산규모 5조원∼10조원 기준으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규제 대상 기업집단이 11개∼17개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불필요한 규제는 정리하고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이나 상호출자 금지와 같은 조항은 오히려 확대적용하는 등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규제대상을 축소하기 위해 30대기업집단지정제도를 완화하는 것은 재벌개혁을 후퇴시키기 위한 발상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 방침 또한 철회되어야 한다.

6. 지금 세계의 기업과 정부들은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도 이사 선임 방법으로 집중투표제 채택을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한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애초 천명해왔던 재벌개혁의 원칙을 지키고 어렵사리 도입했던 제도들을 제대로 시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시행을 연기하고 예외를 확대하는 등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중단된 재벌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을 즉각 다시 추진해야 하며, 그 출발은 애초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현행 제도를 지켜내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경제불안 상황을 틈타 쏟아내고 있는 각종 재벌·금융개혁 정책의 폐기 또는 완화 방침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끝.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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