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로드맵에 속아서는 안된다

로드맵 자체가 타협안, 이마저도 입법과정에서 후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통령직 복귀에 즈음한 대국민담화에서 경제위기를 과장하여 경제개혁을 후퇴시키고자 하는 기득권세력의 의도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진정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득권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인 경제위기론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으며, 따라서 ‘개혁을 통한 장기적 성장잠재력의 확충’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에 적극 찬동하는 바이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의지 표명과는 정반대로, 재벌금융사 의결권 제한문제나 출자총액제한 개선문제, PEF 활성화 조치문제 등 재경부나 공정위가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 재벌·금융개혁 조치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고 개혁에 역행하고 있기조차하다.

참여연대는 대통령의 개혁의지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재벌총수와의 만남 이후 현실에 굴복했다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개혁조치의 구체적인 내용과 한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참여연대는 대통령이 공정위의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2003.12.30) 그리고 재경부의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폐해방지 로드맵'(2004.1.2)이 원칙에 충실한 매우 개혁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라서 이들 로드맵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것을 ‘개혁과 성장을 결합’하는 합리적 판단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참여정부 1기가 허송세월한 것이 아니라 장기국정개혁 과제의 로드맵을 준비한 시기였으며, 참여정부 2기는 이를 현실화하는 단계라고 강조해왔다. ’42번의 국정과제회의와 5,000여번의 회의를 거쳐 작성된 105개의 주요 정책과제 로드맵이 참여정부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청와대 정책소식지 국정과제편, 2004.5.18)고까지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로드맵을 통한 개혁추진 방식은, 원래 의도와는 달리 개혁원칙의 훼손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음을 대통령은 인식하여야 한다.

로드맵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는 정부관료, 재계 인사, 시민사회단체 인사, 학계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므로 상호충돌하는 주장들에 대해 절충과 타협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이 로드맵을 통한 개혁추진 방식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드맵 작성 과정이 정부관료에 의해 주도되거나 재계측 요구가 강하게 반영되는 경우 로드맵은 개혁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라는 원래의 취지보다는 핵심개혁 사안을 회피하고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로드맵 자체가 원칙을 훼손한 타협안인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혁원칙이 상당히 훼손된 로드맵조차도 이를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후퇴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즉 로드맵을 정부 입법예고안으로 만드는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당정협의 과정에서, 그리고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계속 후퇴하고, 마지막으로 국회 심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결과는 애초 개혁의 핵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시장개혁 과제를 다룬 공정위와 재경부의 로드맵이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공정위와 재경부의 로드맵을 준비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태스크포스팀들은 결과적으로 재계의 개혁저지를 위한 로비창구의 역할만을 했을 뿐이다. 이들 로드맵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개혁원칙은 상당히 훼손되었고, 그 이후 정부내 또는 당정간 협의과정, 그리고 국회의 입법과정은 훼손된 개혁원칙을 또다시 훼손하고 있다.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잡다한 유예조항들을 축소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지금 공정위의 로드맵과 공정거래법 입법예고안은 예외조항의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예외조항의 확대를 담고 있으며(다양한 졸업조건 도입, 10대 신성장산업에 대한 출자를 적용제외 항목으로 추가, 시한만료된 예외인정 항목의 연장 등), 그나마도 개개 재벌들의 특수한 요구사항들을 들어주기 위해 계속 후퇴(외국인투자기업 인정조건 완화, 지주회사의 자회사 외 주식보유 한도 확대 등)하고 있음을 확인해 보아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그리고 인수위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계열금융사 의결권 제한,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금융회사 대주주의 자격유지 요건(dynamic fit & proper test) 도입 등을 통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실현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재경부의 로드맵에 이러한 개혁과제가 제대로 언급이나 되고 있는지(금융회사 대주주의 자격유지 요건 도입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으며), 공정거래법 입법예고안이 이 원칙에서 얼마나 후퇴했으며 거기서도 정부 최종안은 얼마나 더 후퇴했는지(재벌금융사 의결권 행사 제한은 현실적 의미가 없어졌고), 그리고 PEF 활성화를 위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안이 이 원칙을 얼마나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는지(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금지 원칙은 사실상 허물어졌음)를 확인해보아야 한다. 아니, 재경부 로드맵이 태스크포스 위원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재경부가 독단적으로 작성한 것이라는 사실부터 대통령은 확인해보아야 한다.

대통령은 공정위와 재경부의 로드맵이 대단히 개혁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아니 대단히 개혁적인 것이라고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다. 이들 로드맵이 갖는 개혁원칙의 훼손, 개혁후퇴의 본질을 확인하고 새로운 원칙과 프로그램을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미 타협한 산물인 로드맵내용마저 미루어지는 것은 용인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실패하면, 재벌개혁은 물론, 곧 사회적 이슈가 될 노사관계개혁과 분배·복지개혁도 실패의 예정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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